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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Aug 12. 2024

치베타 안녕!

17.

떠난다. 죽는 건 아니고. 죽는다는 감정은 정말 어떨까?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안녕! 만날 때 반가워서 하는 인사가 아니다. 떠날 때 하는 안녕인데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안도감? 누가 들으면 무슨 애인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다니. 치베타는 산(Monte)이다. 높이 3220미터 높이의 산. 역시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산을 중심으로 전체 산군으로 이뤄졌다. 이 산 정상을 오른 것도 아니다. 어제부터 그냥 지나갔다. 산을 왼편으로 두고 걸어왔고, 역시나 그 큰 산군을 두고 내려간다. 어제 돌로미티 여정을 마무리한 곳은 마리오 바졸레르(Mario Vazzoler) 산장이었다. 이 산장은 그저께 잠을 잔 산장 꼴다이(Coldai)보다 여건이 훨씬 좋았다. 그것뿐이랴.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성모 마리아께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돌로미티 산장들은 거의 어김없이 작은 기도처를 만들어 놓았다.

먼저 도착한 순서로 방을 배정해서 잠을 잔 후 아침을 맞이하니, 떠나는 날이다. 마지막 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다니. 시간은 양보다 결국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단순함을 느끼면서 발길을 최대한 마음을 담아 걸었다. 벌써 여행을 시작한 지 18일이 지나고 있다. 이제 트레킹이란 이름으로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일이 마지막이라고 하니, 눈물이 핑 돌까는 아니고, 가장 마음을 담아 '안녕'을 말하고 싶었다.

이런 모습이 이제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다.

산장을 나와 걸을 때만 해도 임도(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는 줄 알았다. 이렇게 걸어서 5시간 정도 걸린다고? 이상한데? 이렇게 편한 길에다 내려가는데 그렇게 많이 시간이 걸린다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평탄한 길을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야영객들을 만났다. 텐트를 치고 어제 여기서 잤나 보다. 젊어 보이는 그들. 역시나 젊다는 것은 부러운 것이다. 좀 더 나아가니, 이번엔 양 떼 들이다. 그렇지. 여긴 알프스다. 목동도 당연히 있고.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이라는 것만 다를 뿐. 이색적인 풍경에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왼편을 보니 역시나 늠름하게 치베타 산군이 지켜주고 있다.

평화로운 어느날 오전!

그럼 그렇지. 알타 비아 1 이정표가 왼편을 가리킨다.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돌로미티가 이렇게 끝나면 아쉽지 했었다. 지금부터 십자가가 서있는 곳까지 계속 오르막이라고 한다. 그곳을 지나면 내리막이라고 했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치베타 산군 제일 마지막 부분에 중간에 쉬기로 한 산장 까레스티아토(B. Carestiato)가 있었는데, 거기까지도 역시나 오르막이었다. 사실, 몸은 어느 정도 산행에 적응을 했지만 그건 적응일 뿐 몸이 힘들다고 아주 조용히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러다 마신 맥주 한 잔. 일행 중 선배 한 분이 혼자 마시기 많다고 반을 주셨는데 꿀맛이었다.

걷는 사람들이나 바위에 매달린 사람들이나 멋지다!

잠시 맥주 얘기를 하면, 산행을 하다 군데군데 있는 산장을 지나치다 보면 맥주의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다. 그때 와인이 땅기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산장을 지나친 배경은 따로 있었다. 계속된 산행으로 몸이 힘들었던지라 낮에 맥주 한 잔을 하고 걸으면 몸이 무거워 더 힘들었다. 여기에 대략 산장에 도착할 즘이면 갈증이 거의 최고조인데, 산장 밖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면 정말 거짓말같이 맥주 생각이 싹 사라졌다.

돌로미티에서 십자가를 만나면 당신은 길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끝까지 함께 해준 배낭.

다시 시작된 산행. 누군가 여기서 얼마 안 가서 우리의 목적지인 산 세바스티아노 산장이 나온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야지. 그렇게 믿고 걸으며 보니 이정표가 다시 나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끝나가는 것이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아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호젓하게 산길을 걷는 것도 이제 마지막인가 생각하니 잠시 마음을 흔들었다. 끝나가는 산행에 대한 감사함은 그곳에 길 잃은 산객들을 위로하듯 서있는 십자가 상에 인사를 드리고 다시 하산을 최대한 늦추면서 걸었다. 트레킹 내내 사실은 오늘뿐만 아니라 거의 항상 앞에 서거나 가급적 뒤에서 걸었다.

도착해보니 작은 기도처(오른쪽)가 있었는데, 마치 길가 이정표 같았다.

그건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가슴에 담고 싶었다. 그것이 사진이건 마음이건. 언제 또다시 올까. 오더라도 그것이 알타 비아 1은 아닐 테니. 그렇게 걷다 보니 저 아래 최종 목적지 세바스티아노 산장이 보인다. 이렇게 트레킹이 끝나나 했는데, 저 밑에서 당나귀 세 마리와 말 한 마리가 반긴다. 수고했다고. 원래 알타 비아 1도 제대로 걷는 것만 한 10일 정도 걷는데,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이 정도 선에서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그랬다. 난 알타 비아 1 트레킹을 끝냈기에, 치베타 안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때 안녕은 다음에 또 보자는 안녕인 것 같다.  

이놈들이 여기 있다니! 다시 시작되는 여행?

치베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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