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스완슨(2016). 죽여 마땅한 사람들. 푸른숲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라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다. 전자는 누군가의 의지가 전제되지 않는다. 후자는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되는 것 같다. 죽어도 될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죽여야 될만한 사람들이다. The Kind Worth Killing은 죽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냥 아무나 죽이는 것이 아닌 거다. 죽을 만한 일을 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죽을 만한 일을 한 사람들인지만 규정되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죽인 이는 명분을 얻는다. 죽은 누군가는 죽을만했으니까.
처음 죽어 마땅한 사람은 챗이다. 그를 죽이는 것은 릴리다. 이 책에서 주연이 될 릴리는 챗을 죽일 때 나이 13세였다. 그런 그녀가 챗을 죽이려는 이유는 자기에 대한 정분을 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넘볼 것 같은 불쾌함. 자기에 대해 흑심을 품은 듯한 끈적끈적한 눈빛이 죽어도 싫다. 챗은 파티를 좋아하는 엄마가 화가인 그를 그녀의 집에 머물도록 한 것인데 말이다. 그는 그래서 죽는데, 이것이 죽을 이유가 될지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러니 그렇고 그런, 여기서 그렇고 그런은 '스릴러를 표방하다 마는 소설'이라는 의미이다.
시작은 비행기가 연착되면서였다. 런던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에서 릴리가 테드와 만나는데 그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이들 사이에 정분이 나면 연애소설로 빠지는데, 이들이 서로 끌리는 건 누군가가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에 동감하면서부터다. 이때 죽어 마땅한 사람은 테드의 아내 미란다이다. 테드는 돈 많은 사업가. 미란다는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자. 너무도 당연한 이 결합은 애초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돈이 좋아 테드와 결혼한 미란다는 테드와 여생을 보내려니 끔찍하다. 남편이 죽으면 재산을 독차지할 수 있으니 그를 없애고 싶어 이용한 남자가 브래드다.
브래드는 태드와 미란다가 짓는 집 건축가. 미란다는 브래드를 유혹해서 태드를 죽이도록 유도하고, 이들 불륜 현장을 목격한 태드는 내 돈을 노리고 결혼한 미란다는 죽이려 한다. 태드와 미란다는 서로 죽일 동기가 충분해진 상태에서 릴리가 개입한 것이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테드가 미란다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같이 공모해서 미란다는 죽이려는 릴리. 여기서 릴리가 쉽게 미란다를 죽이면 소설은 역시나 그렇고 그런 소설이 될 수 있는데, 작가는 이 기대를 넘어선다.
그건, 미란다와 릴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닌 연적이라는 설정이다. 학창 시절 에릭이란 남자를 둘 다 연인으로 둔 여자들이 서로에게 갖는 감정이란 것이 어땠을까? 처음부터 이 둘 사이를 서로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에릭은 죽어 마땅한 남자였다는 것이다. 죽어 마땅한 이 남자를 죽일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 건 역시 릴리. 그러니 릴리가 뭘 했을까? 당연히 죽어 마땅했으니 그 또한 죽였다. 여기까지 그럼 릴리는 두 명의 남자를 죽였다. 죽인 이유는 그들이 죽여 마땅한 인물들이니까. 앞서 챗과 에릭은 결국 릴리에게 껄떡대거나 릴리를 오직 육체적으로 탐한 남자.
그럼 다른 사람들도 다 릴리가 죽일까? 미란다는 브래드를 꼬셔 테드를 죽이려고 하는데, 브래드가 결국 테드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정리하면 미란다는 브래드를 꼬셔 테드를 죽이고 재산을 강탈하려고 했고, 릴리와 테드는 바람난 자기 아내 미란다를 같이 죽이려고 했는데, 브래드가 테드를 먼저 죽인다. 그럼 릴리는 누구던가? 아무리 봐도 사이코패스 이상은 아닐 것 같은 릴리는 테드 죽음을 캐다 미란다가 브래드를 사주한 것을 알고 브래드를 사주해서 미란다를 죽이게 한 후 나중에 브래드를 죽이면 된다고 계획한다. 이때, 미란다는 릴리가 학창 시절 연적임을 기억해서 브래드로 하여금 릴리를 죽이도록 사주를 한다. 결과는 어디가 어디를 죽였을까?
결론이 이렇게 끝나면 재미없으니, 사건을 추적하는 경찰 킴볼이 등장한다. 킴볼은 사건이 뭔가 석연치 않음을 유일하게 파악하면서 릴리의 동선을 따라잡는다. 릴리가 어떻게든 테드와 미란다의 죽임에 관련됨을 본능과 직감으로 알지만 증거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브래드는 테드와 미란다를 죽이고 사라지는데, 릴리는 챗과 앨리를 죽이니까 결국 둘 다 두 명을 죽이게 되는데, 마지막엔 릴리가 한 명 더 죽인다. 그게 누굴까? 이러니 소설 주인공은 릴리가 된다. 마지막까지 죽지 않으니. 그럼 그녀는 죽어 마땅한 여자가 아니게 되는 걸까? 아님, 죽여 마땅한 여자지만 누가 그녀를 줄일 수가 없느니.
그런 과정이 킴볼 동료에겐 킴볼이 릴리를 흠모하는 스토커처럼 여겨진다. 증거도 명확하지 않은데, 증거를 잡겠다고 릴리 주변을 서성이니까. 법이란 문턱에서 보면 릴리가 거의 선을 넘어서 최종 범죄자가 되어야 하건만 킴볼이 남긴 애정표현 메모와 그나마 열쇠를 쥐고 있는 브래드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법망을 피한다. 릴리가 죽인 챗과 브래드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않으면 누구도 릴리를 의심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스릴 넘치고 끊임없이 반전이 이어져 그렇고 그렇지 않은 스릴러 소설이 되지만, 기껏 돈과 불륜과 욕망 때문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세상에 남아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