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정유정(2016). 내 심장을 쏴라. 은행나무.
소설을 읽어서 좋은 점이 뭘까? 돈이 생길까? 밥이 나올까? 책을 읽으면 뭐가 달라질까? 남한테 아는 체를 해서 좋을까? 아는 체하고 싶어도 남들도 책을 읽는 분위기 라야 될 텐데... 책을 읽을 사람은 읽지 말라고 해도,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책을 읽을 거고. 읽지 않는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읽을 것도 많고 영상 시대라서 활자는 아니라고 할 테고.
책을 읽지 않아도 사람들이 지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인터넷과 더불어 생각 등을 전달하는 만화, 영화 등 대안매체들이,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서도 그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은데, 이때 책을 읽는 행위 중에서 소설이 갖는 힘이 뭘까?
올해(2022년) 1월에 발표된 문체부 2021년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0년 9월 1일부터 2021년 8월 31일까지 진행된,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이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이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8.2%와 책으로는 3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수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내가 4.5권이나 읽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이게 평균이니까.
당연히 이 수치보다 읽는 사람은 엄청 더 읽을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 년에 1권도 읽지 않을 텐데. 그 와중에 문학 독서량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2021년 말에 진행된 한국인 연간 평균 문학 독서량은 평균 2.3권(문체부 &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인데, 이게 적은 양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겠지?
결론, 성인은 전체적으로 책을 읽지도 않거니와 읽어도 문학서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행인 건 연령대가 낮거나 소득이 높을수록 책을 더 많이 읽지만, 그럼에도 대략 성인들이 1년에 4.5권을 읽고 전체적으로 문학서적은 2.3권이라면 성인이 소설 등을 읽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 그래서 드는 생각. 그 책들 대부분은 재테크 서적이 아닐까? 뭐, 재테크라도 읽으면 출판문화발전에 이바지하겠지만. 생각해 보니, 재테크 책이 날로 넘쳐나는 것은 맞아도 전자책으로 재테크 책을 많이 읽을까라는 생각까지.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재테크와 전자출판은 뭔가 궁합이 아닌 듯하다.
이런 쓸데 있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소설 때문이다. 여기에 난 성인이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판단이 서지 않지만 1년에 문학서적을 2.3권 읽는다고 해도, 아니 그 이상이라고 해도, 손에 꼽을 만한 책. 이런 작가도 있었다고 이제 알았지만, 문학에 문외한이라서 이 작가에 대해 몰랐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어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 꿸까?
2009년 출판문화협회 등에서 이 소설을 청소년 권장도서로 꼽았는데, 이 책을 다 큰 아니 더 클 수도 없고 그저 늙어갈 날들은 확실한 내가 읽은 후 뭔가 젊어진 것 같다. 뭐, 생각이야 항상 젊게 생각한다고 하고, 우리 나이에는 말이야(~라 떼는 말이야) 하고 시작하는 친구들한테 그래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나이만큼 살아라라고 하지만. 네가 느낀 너의 나이만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차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책을 읽고 말이다.
내가 아직 어린 건지? 철이 덜 든 건지? 아직, 정말 어린것인지? 그래서, 다시 질문해 본다. 소설을 도대체 왜 읽는데? 질문이 어렵다. 분명히, 소설은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은데 소설처럼 살 수도 없거니와 읽을 때 느끼는 그 감동이 뭐 사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주변에 문학인들이 많아 동지의식을 느끼지도 못하고. 그러고 보니 왜 읽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 이 글을 왜 쓰는데? 거기까지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연히 책을 읽었으니 독후감으로 쓰는 건데, 그럼 그 책을 왜 읽었는데 대한 답은 역시나 어렵다.
책에서 주인공이 승민이와 수명이고. 여기에 조연인 최기훈, 김용, 십운산선생, 만식 씨, 현선 엄마, 점박이, 한인이와 지은이 등. 무대는 수리희망병원. 무대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은유고. 주인공이야 변형된 인간들에 대한 유추일 텐데, 주는 혹은 얻는 메시지는? 정신병원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정신병원 하면 으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넘어서는, 대게의 정신병원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와 비슷하지만, 이 뭉클함은 뭐지?
미쳐서 들어왔거나 들어와서 미치거나. 확실한 것은 둘이 같을 수 없다는 아주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이수명이 어쩌다 친구인 유승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그래서 결론은 둘 다 다른 방법으로 탈출했지만. 정상인 승민은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비정상인 수명은 아주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옭아맸던 '현실'로부터 탈출한다. 여기에 그 핵심이 있는 것 같다. 왜 소설을 읽는지에 대한 핵심. 뭐지? 현실로부터의 탈출? 현실에 대한 이해?
생각해 보라. 영화를 보다 그 재미에 빠지면 머리가 잠시 현실을 망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때에 따라 짧게 혹은 약간 길게. 영화가 준 비현실이 현실이 아님을. 영화는 영화임을. 결국은 현실로 다시 돌아오지만. 영화가 그랬듯이 소설도 읽고 나서 그렇게 현실로 돌아오는 것도 같다.
이때, 영화잖아라는 의미는 소설이잖아라는 의미와 같다. 소설이잖아? 소설? 이 말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알지 않던가. 영화처럼, 소설에서 다루는 그 '허구'에 빠지다 헤어나면, 그때 그는 잠시라도 내가 아닌 것 같다. 현실을 잊거나 망각하기에. 이게 답이 될 것도 같다. 잘 쓰인 소설이 주는 감동.
더불어, 현실에 대한 이해, 그리고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구분하게 하는. 앞은 가능하지만 뒤는 궁극적으로 그럴 수 없음을 깨닫는 과정. 이게 소설을 읽어서 얻는 두 번째 힘 아닐까? 우리가 대화 중에... 야, 그건 '소설'이야가 말하는 의미. 지금 소설 속의 내용이 현실이 아니라는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소설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 나서 그 후의 뭔가 달라져 있는 나. 혹은 달라졌으면 하는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이 주는 세 번째 힘이 아닐는지. 소설을 읽음으로써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고, 그 소설 속 내용이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현실이 아님을 알게 해 주고, 이런 반복된 과정을 통해 어느 날 결과적으로 현실을 굳건히 딛게 해주는 내공을 잠시라도 느끼게 해주지 않던가. 소설을 읽고 말이다. 이런 느낌 없다고? 그럼 소설을 읽지 마시게... 시간이 아깝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