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에 못 가면 어때서

[책 여행] 루리(2020).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by 길문

처음에 이해를 못 했다. 이 책이 동화라는 것을?? 그건 아니고. 당연히 내용은 잘 몰랐지만, 브레멘(Bremen)이 무슨 의미인지. 찾아보니, 브레멘은 독일 중서부에 있는 도시다.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지방자치제가 발달한 독일의 한 도시.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열차 타고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는데, 이 도시가 왜 유명한가 봤더니 동화가 한몫했다. 동화로 유명한 도시라니.


<브레멘 음악대>가 뭔가 봤더니, 그림(Grimm) 형제가 쓴 동화의 제목이다. 흠, 그림형제라고? 그림 그리는 형제는 당연히 아니고, 그들은 그들이 쓴 동화로 유명하다. 동화라. 어릴 적 동화를 어느 정도 읽었던 것 같기는 한데, 브레멘 음악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개구리 왕자 등을 들어보면 금방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뭔가 기억 속에서 꿈틀댄다. 아, 돌아가고 싶다. 부모님의 그늘에서 그저 어린이고 싶다. 때론, 어른이라는 게 싫다.


그림형제는 동화로 유명하지만, 원래 중편 소설 작가로 유명했단다. 여기에, 두 사람 모두 언어학자이고 문헌학자라는데, 형제가 이 정도라니. 돈이 많아 유명한 형제는 부러울 것 같지 않은데, 작가와 학자로써 유명하다니, 생각이 달라진다. 위에서 언급한 동화 제목들이 어느 순간 사라질까? 아마, 애들이 지구상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그림형제라는 이름은 몰라도 동화들은 영원할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해가 잘 안돼 '브레멘 음악대'라는 동화책을 빌려봤다. 뭔 내용이었더라? 아, 내 기억에 없다. 까먹은 게 아니라 없다. 이리 생각, 저리 생각해도 이 동화를 읽었던 것 같지 않다. 어릴 때 유복하지 않아서 그랬던가? 부모님이 평범하셔서 그랬을까? 부모님의 사랑이 결코 작았던 것 같지 않은데, 이 동화는 이래저래 생각거리를 준다.


어느 농장에서 유효기간이 지나 상품가치가 사라진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 주인에게 버림받고 자유로운 땅 브레멘으로 떠난다. 브레멘? 잘 먹고 잘 살자고? 요양원 시설이 좋아서? 그곳이 황금의 땅 엘도라도도 아닌데, 그곳에 가서 음악을 하기로 한다. 아리송하지? 음악이라? 음악대? 머리가 나빠서 인과관계가 연결되지 않는데, 한자(die Hanse) 동맹을 맺은 도시가 힌트?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위키백과)으로 했다니, 잘 모르지만, 당시 브레멘이 나름 엘도라도 같은 역할도 했을 것 같기는 하다.


이 네 분(?)이 브레멘으로 가다, 갔나? 암튼, 가다가 도둑들의 은신처를 뺐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 그럼 루리가 쓴 동화 내용은? 제목이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이다. 흠, 브레멘이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원작이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서 애들한테 권해지듯이, 이 책도 결론은 기쁘지 않으나 기쁠 것을 기대하게 하니, 이를 희망이라고도 하던가, 애들한테 권해지는 것 같다.


원작이 어느 시점에서 소모품이 되는 네 동물이 처한 현실이 루리의 소설과 같은데, 누군 브레멘에 가고, 누군 현실에 머물고. 그게 큰 차이기는 하지만, 한자동맹이 맺어진 풍요로운 브레멘이 아니라, 대도시 아마, 서울 한구석에 내던져진 네 마리 동물의 처지가 확연히 달라서 마음이 아프다. 특히, 네 마리 주인공이 달동네로 추측되는 골목길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에는 짠하다. 아니, 사실 이 동화 전체가 그런 감정을 조용히 깔아준다. 그래서, 루리의 <긴긴밤>도 그렇고, 이 동화도 그렇고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처음 책을 잡으면 5분도 걸리지 않고 다 본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보면, 그래도 10분이면 다 본다. 그리고, 뭔가 마음이 불편해져 다시 보면 그건 사람마다 달라질 것 같다. 그럼에도 다시 보게 된다. 그래서 생각하면서 보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장면 장면마다 숨겨진 복선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게 이 동화의 매력이다. 이건 <긴긴밤>과 다른 여운이다. 동화 <긴긴밤>은 내용을 따라보면 맘에 짠해져 눈물 찔금 흘리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쉽게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보게 된다.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유효기간이 끊나가는 네 마리 동물이나, 도둑들이나 사회에서 주변인이기에 주변인들끼리 무슨 연대를 모색하나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첫 그림이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듯한 내용이라면, 마지막 그림은 평범한 동네 골목길에서 벌어지는 내용들인데 거긴 희망이 슬쩍 드러난다. 어떤 사회에서든, 소외되고 조연으로 밀려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지만, 그런 과정들이 비일비재하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애잔함과 슬픔으로 가슴이 찡하더라도 살아야 하기에, 오늘 집에 가다 "오늘도 멋찌개"에 들러 소주 한잔해야겠다. 섞어찌개 시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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