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치매인가요라고 물으면, 당신은 치매인가요라고 묻는 것보다 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치매인데, 당신도 치매니 서로 안심이 되니까.
헐, 무슨 엉뚱한 소리? 치매라니. 치매. 뭔가 끔찍하고 무서운 병. 뇌 기능이 저하돼서 점차 인지 기능이 낮아지는 것을 치매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인지저하의 원인이 알츠하이머이면 알츠하이머 치매라고 한다. 대략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매라고 부른다.
전체 치매환자의 60%가 알츠하이머가 원인이라고 하니... 의학적 지식을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게 참 불편하다. 그런데, 치매환자는 일반인보다 일상생활에서 더 불편할까?
암, 뇌졸중, 치매. 난치병 3남매? 세 자매 혹은 세 형제 하면 성차별 같아서, 삼 남매 하자. 그래도 재미없다. 생각하기도 싫다. 암의 경우 말기 암이 아니면, 어느 암이건 치료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뇌졸중? 암보다 뇌졸중이 더 고통스러운가? 뇌졸중에 걸려 사지가 마비되면 그 고통은 누가 담당하더라? 암도 그렇지만 이 병 또한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환자 보호자들을 정신적, 물질적 힘들게 한다. 경제력이 좋으면 그나마 괜찮지만, 그래도 치매보다 괜찮을 것도 같다.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럼, 치매는? 비극적인 면에서 보자면 치매가 암과 뇌졸중보다도 더 할 것도 같은데, 환자 당사자는 아닐 것 같다. 기억에 없는데, 고통이 있을까? 당장 느끼거나 느꼈던 고통으로 다가오던가. 그래서, 치매는 환자 보호자나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병인데, 그냥 못난이 삼 남매인 것 같다.
생각하기도 싫고, 직접 부딪히자니 정말 꺼려지는 병들. 대게, 다른 병들도 마찬가지지만. 생로병사. 그러고 보니, 생은 한 글자인데 로병사는 3글자이다. 결국, 태어난 후부터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 같다. 갑자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가 82만 명을 넘어서, 비율로 이 연령대의 10.2%에 달한다고 한다. 80세 이상으로 하면 189만여 명 중에서 28.3%인 53만여 명이 치매 환자라고 한다. 2050년이 되면 노인 치매환자는 302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추정 노인 인구수 대비 무려 비율이 15.9%라고 한다. 이렇게 어두운 얘기를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파코 로카가 쓴, 아니 그린 만화 <주름> 때문이다. 피부에 난 주름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삶에서 '주름'이 돼버린, 치매.
만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아주 익숙한 내용들이다. 만화 내용이 특별히 슬프거나 보기가 힘들지도 않다. 아주 평범하게, 별나지 않은 내용들로 구성된 만화, 주름. 작가가 자기 친구 디에고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얘기가 시발이 되어 노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지내는 노인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병원들을 돌아다닌 후 그 기억들을 만화로 남긴 것이 이 책이다.
만화. 글쎄, 만화를 본 기억이 언제든가. 자주 지하철을 타다 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휴대폰으로 만화, 웹툰을 보는 것이 일상인 듯하다. 당연히,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일상보다 웹툰을 보는 사람들의 일상이 아주 보기 좋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이제 이런 내용이 이제 흔하게 되었다. 다들,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일까?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게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다가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구절을 생각하면 죽음은 여전히, 앞으로도 불편한 게 아니라 마주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치매 얘기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죽음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이 만화를 그린 작가 파코 로카는 스페인 사람이고, 이 만화로 2007년 바르셀로나 만화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타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는데, 만화 분야를 잘 모르니. 만화는 스페인 만화니까 대화는 스페인어일 텐데, 만화에 나오는 대화는 다 한글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게 궁금했던 이유는 그림의 각 컷에 어떻게 한글을 집어넣었는지 잘 몰라서 궁금하다.
전체 내용은 주인공 에밀리오 시선을 따라가는데, 정말 현실에서 일어나는 내용을 만화로 표현한 것이라 정말 느낌이 생생하다.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죽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기억과 생각이 사라지는데, 사는 것 같지는 않고. 살아지는 것이다. 만화 속에선 치매로 인한 절망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주 담담히 그려진다. 치매 걸린 환자와 그 환경이 말이다.
그런데, 만화 속 미겔은 치매 환자가 아니던가? 어디건 이런 사람이 꼭 있지 않던가. 기억이 없어지는 사람들한테 돈을 뜯거나 물건을 훔치는, 그래도 전체적인 내용으로 인해 미워 보이지 않는다. 왜냐고? 그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지 않기에.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암이나 뇌졸중 환자보다 치매환자가 당사자한테 더 좋은 것이 아닐까.
환자라는 단어는 같지만,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치매. 우리가 일상에서 간혹 물건 둔 곳을 잊거나, 잠시 자기가 한 일을 망각할 때 치매 걸렸구나,라고 자주 말하는데 이 만화를 본 후 조심스러워졌다. 멀지 않아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보다, 머릿속에서 기억이 사라지는 게, 좋지 않은 기억만 사라진다면 몰라도, 다 사라지는 게 더 나쁜 일인지는 아직도 모르지만 말이다. 기억에 없으면,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기억에 없으면, 삶은 어떻게 되는 건지? 다 생각 속에서 저장되는 게 그래서 간혹 까먹어도 그것 우려먹는 게 우리 인생인데... 기쁨도 슬픔도 말이다.
그나저나 로사리아 부인은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타고 이스탄불에는 도착했는지... 이스탄불 가는 것도 기억에 없어지면 어쩌려나... 갑자기 아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