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을 기대했냐고?

[책 여행] 존 윌리엄스. <스토너>. 알에이치코리아

by 길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병상에서 몇 번이나 이 말을 내뱉는다니. 그래서 소설이지. 자기 가 살아온 지난날들을 정리하는 마당이라면 이 정도는 질문할 수 있다고? 한다고?


누구든 죽는 것만큼 평등한 것이 또 있을까? 태어날 때 부모가 누구냐는 결코 모든 사람이 같지 않다. 누군 조건이 좋아서, 누군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누군 부잣집에서 태어나거나. 당연히, 그 반대도 가정할 수 있지만, 그래서 우리 삶이 평등한지 의아스럽지만, 그래도 다 죽는다. 이것만은 평등하지 않던가. 뭐, 오래 살아도 결국 죽으니. 잘 먹고 잘 살아도 죽으니.



그런 하나뿐인, 내세를 믿더라도 사후가 증명이 되지 않으니, 이 인생이 모두에게 다 소중할 터. 한 번뿐인 삶이기에. 그런데, 누구나 죽어도 내가 죽을 때 자기 자신에게, 세상에 대해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작가는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때, 존 윌리엄스 보고 당신은 1965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묻고 싶다. 당신은 이 책을 내면서 무엇을 기대했냐고.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문학에 빠져 영문학과 교수로서 살아온 40여 년의 시간. 그 시간이 슬프고 고독했을까? 작가가 아니어도 이 책이 고독과 슬픔을 견디며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작가는 그것을 기대한 것일까? 이 소설을 쓰면서 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인 스토너가 다른 보통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는데, 그 말은 맞다. 당시, 미국도 그랬겠지만, 지금 한국도 여전히 교수가 직업으로써 좋다. 여전히 사회적인 지위도 높다. 그 상아탑에 있는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고 하겠지만. 예전엔 존경도 받았는데...


지금은? 아쉬움에 한탄을 할 것도 같은데, 과거 어느 날 시대의 '정의'라는 흐름을 좇지 않거나 못하는 교수들을 비유해서 지식기사라고 했었는데, 그때 지식인으로 분류되거나 지식인이고자 했던 사람들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무튼.



현실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교수가 된 사람들이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이 높은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직업만족도 1위에 오르지 않던가.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충족된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즐기다 보니 교수가 되었다는 상투적인 답변. 그들이 그 분야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학문을 연마했는지 별개다.


그들이 그 좁은 울타리에서 서로 얼마나 시기하고 싸우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교수 사회 또한 얼마나 정치적인지. 권력관계가 작동되는지. 여기에 자기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는 교수는 또 얼마나 될까? 딱히 머릿속에 존경할 만한 교수가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으면 부정적인 사고라고?



그래서, 정말 신기했다. 이 책이 출판된 해가 1965년. 이 책에서 묘사되는 대학 사회에서의 정치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니. 아마, 대학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교수 스토너와 보직교수들 간의 관계를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정치. 어떤 정치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기 마련이듯이, 대학교수들 사이도 달라질 것이 없다.


달라질 수가 없다. 인간이 모여서 살게되니 정치적인 거야 당연하지만. 물론, 어떤 과는 그 과 교수들이 서로 친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이런 학과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대학제도가 미국 대학제도를 그대로 따라 했지만, 그 교수들 사이의 긴장관계도 예전인 소설 속 내용과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대학이 순수학문의 장? 그럼, 작가는 이 책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주인공 스토너를 만든 것일까? 스토너의 반대편 로맥스는 악의 상징?



여기에 아내 이디스와의 관계. 그래서 필연적인 불륜? 애인 캐서린이 캠퍼스를 떠나는 것으로 그리는 작가의 심리상태를 생각해 보면 갸우뚱 해진다. 자기는 교수직을 유지하고. 여기에, 자기 아내 이디스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노력을 소설 속에서 보여주지 않는다. 했었나? 그냥 바라봄, 체념? 자기는 교수니까. 책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면 다일까?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일 수도 있는 아내와의 관계. 그는 도대체 무슨 노력이라도 한 걸까? 교수면 연구하면 이렇게 다 용인되어야 할까?



한걸음 더 자기 딸 그레이스에 대해서는 정말 무책임한 아버지의 전형 아니던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밀려 하나뿐인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방관하는 듯한 자세.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가 세상을 먼저 뜬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책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2021)"을 보면, 이런 게 정상일 듯싶은데 미국인들이라서 다르다고?


당시, 1960년대 미국 사회 분위기가 여자가 임신하면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도 신선하지만, 요즘은 유명 셀럽 결혼 험담에 반드시 등장하는 혼전임신 얘기...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아저씨, 세상이 달라졌어요!!!



어떻게 이런 소설이 탄생했는지 그 배경은 존 윌리엄스가 교수라는 원죄 때문인 것 같았다.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여 년 동안 문학과 문예 천착을 가르쳤다는 게 명확한 원인이라 생각된다.


문학 교수로서, 자기 모습이 투영된 주인공을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실제로 자기 제자와 깊은 관계를 가졌을 수도 있고, 이게 가능? 정교수가 되기 위해 무던히 애쓸 수밖에 없는 미국 풍토지만, 당시에도 그랬을까?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한테 질문을 던져야겠다. 넌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기대했나?


다른 누구보다도 큰 굴곡 없이 살았을 주인공 스토너와 작가 윌리엄스. 작가가 말하는 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살아온 삶이 슬픔과 고독을 견디면서 살아온 것이기에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일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하나는, 무척이나 잔잔하게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같다. 그런데, 그게, 작가이자 교수인 윌리엄스가 바라는 자기 모습은 아닐는지, 그럴 것 같았다. 자기 모습의 화신.


그래서 어떡해서든 이 책을 읽은 보상을 받기 위해, 혹은 책 뒤표지에 담긴 찬사에 속았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절만큼은 가슴 찡했다고 말해야겠다. 이건, 진심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p.390)."


매거진의 이전글당신도 치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