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얇다. 사는 것도 그래야겠다.

[책 여행] 올리버 색스(2016). 고맙습니다. 알마.

by 길문

책이 얇다. 전부 62 페이지다. 이런 판형을 뭐라 하지? 회사 수첩보다는 약간 크다. 책 내용은? 죽음에 관한 것인데, 고맙다고 한다. 영어로 gratitude이다. 비슷한 단어로 thanksfulness, thanks가 있다.


다 비슷하게 번역할 텐데, 우리가 느끼는 그 차이가 같을까? 우리 주변에서 감사합니다 와 고맙습니다를 구분해서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맙습니다가 감사합니다 보다 더 감사할 때 쓰는 말일까? 살면서 그냥 고마우면 감사한다고 썼던 것 같고, 정말 고마우면 고맙다고 썼던 것 같다.


얼핏 느끼기에 감사합니다는 좀 비즈니스적인 혹은 좀 형식적인 표현 같다. 책 제목을 감사한다고 했으면 올리버 색스가 정말 감사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죽음을 앞두고 자기 삶을 정리하는 사람이 형식적인 태도를 갖는다면 이 책이 주는 감흥이 살았을까? 작가는 남의 감흥을 살펴서 이 책을 썼을 것 같지 않다. 내가 머지않아 죽는데, 자기 삶을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만은, 책을 읽고 느낀 소회는 작가가 정말 고마워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2015년 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설령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쓴 신경정신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라고 해도 그날이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 강아지가 2022년 9월 10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게 나한테 더 중요하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타인이면 설령 유명 인사라도 그저 그렇다. 죽었군이다.


그런데, 내 반려견이 죽으니 그저 죽었군이 아니다. 주인을 잘못 만나서 일찍 죽은 것부터 해서, 의사는 자책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다. 그런데, 그래도 '죽음'은 결국 같다. 사람이나 개나 죽는다는 '사실'이 같다.


그럼 죽음이 슬픈 그 '정체'는 뭘까? 상실감 아닐까. 뭐가 내 삶 속에서 소중한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그 불변의 진실이 슬프게 하는 것이다. 다시 볼 수 없다. 이게 핵심일 것 같은데, 올리버 색스는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자각한 후 4편의 글을 썼다. 남이 자기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남을 볼 수 없다는 슬픔을 넘어 느낀 '고마움'을 글로 표현했다. 어차피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손님이기에 작가는 진작에 알았을 것이다. 시기가 이른 지 늦은 지 그 차이만 있을 뿐.


그래서 그는 "나는 지금 죽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땐 그랬을 것이다. 여기까진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작가가.


오히려, "두렵지 않은 척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 나는 읽고, 여행하고, 생각하고, 썼다. 세상과의 교제를 즐겼다"라고 말할 때 비로소 작가가 고마워하는 그 이유를 알았다.


의사이기에 의학적 경험을 나눌 수 있지만, 부럽게도 문학적인 재능이 뛰어나서 관련 책을 10권 이상 출간하고 대중의 사랑까지 받은 작가. 오직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만 읽은 독자지만, 책에서 그는 단순히 의사라는 직업을 넘어섰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남한테 감동을 선사했을 것이다. 아툴 가완디가 표현한 것처럼, "인간을 다양한 형태로 보고 싶어 했다"라는, 삶이 결국 다 죽는다는 그 평범성을 넘어서 인간이 그렇게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좋은 작가였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에 사람 나이를 주기율표로 치환하니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특정 시점의 나이라는 게 그저 표상에서 차지하는 한 공간의 원소로 표현하니,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순간.


그러고 보니, 우리 강아지가 주인이 자기를 사랑했음을 떠나 살아줘서 고마워했다는 것도 알았을까? 말을 못 했으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다. 우리 강아지 원소는 탄소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혹은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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