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채영신(2021). <개 다섯 마리의 밤>. 은행나무
숨은 보석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기대 이상의 성과 등을 경험할 때, 혹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성 그 무엇보다 뒤지지 않거나 오히려 뛰어날 때 쓰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은 숨은 보석이라기보다 그냥 보석이었다. 물론, 이런 판단의 배경엔 적지 않은 생각이 작용했지만, 보석, 보석같이 아름답거나 가치 있는 소설인 것만은 분명했다.
왜 이 소설을 보석이라고 할까. 다독가도 아니면서, 그러니 편견을 가질 수밖에. 최근 일부 여성이 쓴 책들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가벼웠다. 장르 소설이라 불리는 소설도 있었고, 모 사이트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출판된 책들도 그랬다. 이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가벼움? 아주 소소한 것들에의 몰입. 개별적인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미시적인 디테일?
채영신이란 소설가도 잘 몰랐거니와 황산벌청년문학상이라니. 들어보지 못했으니, 더 바이어스가 꼈을 것은 자명하긴 한데. 우리 뇌는 이미 자리 잡은 생각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익숙하지 않은 문학상이라니. 이는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듯한데, 벌써 7번째 진행을 했다. 역시, 편견인 것 같지만 심사위원들 이름들은 아주 낯익다. 이런 나약한 권위의식이라니. 이런 자성도 잠시, 누가 그랬더라. 아주 묵직한 소설이 만들어졌다고. 그 말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가벼움을 넘어서 묵직한 돌직구 하나가 던져졌다.
"'이미' 충분한 고통이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어떻게 소환해야 할지..." 이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심사위원들의 소설 심사에 대한 내공을 느끼게 해 준다. 결말, 그 자체를 아주 간결하게 표현해 준다. 여성들이 자기 자식에 대해 품는 애정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어떤 '가벼움'에 포함될 소설 이건만 주제와 문장, 결론으로 치닫는 과정은 결코 여성 작가 거나 엄마기 때문에 느끼는 그런 범주를 넘어선다.
이 소설은 '폭력'을 다루는데 그 비극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분명히 작가가 다루는 언어와 플롯이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인데, 요즘에 등장하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서사를 바탕으로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여기에 결말이 어떻게 될까라는 궁금증까지 더해져, 책을 읽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알비노(백색증)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식과 그 엄마. 그 틈에 끼어든 루머 혹은 진실. 여기에 학교를 둘러싼 엄마들의 과잉 기대, 경쟁과 폭력. 더불어 언젠가 발생했던 휴거와 종말론 등이 결합된,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들. 알비노는 기본적으로 열성일 수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주류여야 한다는 압력과 갈등이 섞여서, 우린 모두 이 알비노에 취약한 것은 아닐는지.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이 비주류임을 아주 쉽게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이 정도의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폭력성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소설 속에서만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라서 슬프기도 하다.
알비노에 걸린 자기 자식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엄마 혜정이 이해가 안 가거나, 이들 모녀에 대해 집요할 정도의 관심을 가지는 안빈의 엄마도 정상을 넘어서고, 여기에 사이비 종교가 말하는 구원까지 엮여 저서 잘못하면 스토리가 산으로 갈 수도 있음에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은 것은 작가의 역량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밀어붙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잘 써진 소설이란 평이 결코 인색하지 않다.
살면서, 앞으로도 개가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에 의존해서 살아남아야 할 정도의 추위와 고통을 겪을지 잘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보여주는 개별 인물들에 몰입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개를 통해 우리는 지독히도 이미 이런 '고통'에 익숙해서 체념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그렇지만 개가 몇 마리가 되던 살아가는 과정에 겪게 되는 그 어떤 형태의 고통이라도, 각자 그것들을 잘 다독여 조금이라도 각자의 생활에서 구원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 구원이 무엇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