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여행] 이어령(2021).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열림원
"모든 고난과 시련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p. 315
이 구절은 작가 이어령이 한 말이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민아 목사가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구절. 개신교 목사 이전에 이 시대의 지성이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던 고 이어령 교수의 딸. 유명인의 자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 감히 느끼기 어려운 그 심정. 더욱이 딸이 아니라서 세상의 딸들이 그들의 모든 아버지한테 느끼는 감정과 회한이 무엇이지 알지 못하면서 쓰는 이 글의 무모함은 그래도 신앙 여부를 떠나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그 무엇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어령도 자기 자식인 딸을 먼저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후회와 번민이 남았기에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도 그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과 상실 또한 결과적으로 축복이었을 것으로 믿는다. 대개의 아빠는 딸이 아닌 아들에게도 그저 잘 되기를, 뭐든 다 퍼주기를 희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면, 사랑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 사랑은 정석이 내리사랑이니까. 분명 이민아 목사는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소소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평생 아쉬움이 가슴 한편에 켜켜이 쌓이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게 표현이 되었고. 아버지 또한 이를 알게 되었고.
그녀는 그런 유년기를 가슴속에 쟁여놓고 평범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스스로 인정한 "너무 어려고 철이 없을 때" 열정으로 선택한 결혼이 불행으로 치닫고, 잠시 뜨거운 사랑이 만든 첫아들이란 결실을 떠나보내는 상실감, 자기 몸에서 나타나는 암과 같은 불운들, 더불어 재혼해서 나은 둘째 아들의 병까지. 정말 보통 사람들이 겪기 어려운 어려움들을 겪는 자기 딸을 보는 아빠의 심정은 어떨까. 그 딸이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먼저 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던데, 그 심정은 모르나 그 말은 확실할 것 같다. 그런데 부활을 믿는 기독교라면 좀 기쁘게 맞이할 것도 같지만, 어찌 인간이 쉽게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이민아 목사나 이어령 교수가 그들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었을 종교적 귀의가 보통 사람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아빠들이 모두 먼저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그냥 흘려도 충분할 것이다.
어쩜 이 책은 우리 주변에 그 흔한 자식과 부모 사이, 아버지와 딸 사이에 상존하는 간격에 대한 통찰로 해석되어야 할 것도 같다. 이어령 교수처럼 그런 상실과 고통이 보통 사람들에게 일상이 아니 듯이, 그리고 이 책이 특별한 슬픔을 간직한 가족들에게 한정해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인이라는 것을 빼면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인 아빠가 그저 먼저 세상을 뜬 자기 딸에게 쓴 사모라면 종교적인 의미로 치닫는 후반부의 부족함은 결코 부족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그들 부녀가 종교적인 형태라도 서로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특히, 표현하기 어려운 자식과 부모 간에 특히 엄마와 아들보다 아빠와 딸의 사이가 더 쉽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이면 된다"라는 작가의 통찰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한테 주는 울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그 삼십 초의 순간이 너에게는 삼십 년, 아니 어쩌면 일생의 모든 날"이었기에, 그러지 말자라고 행간을 해석하는 것은 어떨는지.
이 글은 아무리 뛰어난 시대의 지성이라도 자기 딸을 먼저 보낸 그래서 그 상실만큼은 다른 아빠와 다를 것이 없이 그저 평범한 아빠가 "나와 똑같은 슬픔과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그랬냐고(p. 10)"고 절절하게 묻는, 그러면서 위안을 받으려 몸부림치는 글로 느껴진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매일 밤 사랑이란 굿나잇 키스를 보내지 못한 회환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이제 굿나잇 키스를 보내지 않겠다. 밤이 없는 빛의 천국, 너는 영원히 잠들지 않는 하늘의 신부가 되었으니까(p. 276)"라고 끝내지만, 이제는 이들 부녀가 정말 그 좋다는 천국에서 서로 안부를 나누지 않아도 될 것이란 것만큼은 정말 다행이다 싶다.
사족인데, '딸의 눈을 뜨게 해 주면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다'는 작가의 그 '진심'만큼은 진한 향기로 세상에 퍼졌으면 좋겠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니까. 그런데, '아딸' 떡볶이 체인점만큼 이런 애틋함이 느껴지지 않아 좋다. 목에 넘어가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