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 수도원에 가서 배운 것.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만났으니 남은 건? 몬세라트 수도원에 가는 거였다. 수도원? 베네딕토 수도회가 운영하는 곳인데, 가보니 어제 본 페드랄베스 수도원(박물관)과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이곳 바실리카 대성당에서 검은 성모마리아 상을 보거나 유럽 최초 소년 합창단 에스콜라니아(Escolania)가 부르는 성가를 듣기 위해서 간다. 하나 더 꼽자면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가 있다. 이건 대부분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이들 보다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상행 푸니쿨라를 타고 산 중턱에서 내려 산 호안(San Joan) 하이킹을 한 후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를 거쳐 수도원으로 온다. 이들 보다 아주 체력이 좋은 사람들과 오직 산에 오를 사람들은 몬세라트에서 가장 높은 산 헤로니(San Jeroni, 1,237m) 정상까지 갔다 오겠지?
남들 정도 체력이라서 산 호안 트레킹을 하고 검은 성모마리아를 보고 에스콜라니아가 부르는 성가를 들으려 했다. 이 계획이 틀어진 건 잠시 망설여서였다. 1시(에만 있는) 공연과 3시 30분 성당(공연을 보면 이 시간에만 들어가야 한다)에 입장하면 언제 트레킹을 할까 생각했었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에 있는 버스터미널에서 9시 15분 줄리아 버스를 타면 1시간 정도 걸려서 이곳에 도착한 이후 계획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오전에 트레킹을 해야 하는데 그걸 끝내고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그래서 잠시 멈칫했다. 트레킹을 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지 못했다. 밤 11시에 합창단 공연이 가능한 날짜를 확인한 후 잠을 잤다. 다음 날 깨니 마감이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할까? 할 수 있는 최선은 빨리 포기. 미련 없이.
줄리아 버스를 타면서 이름이 왜 줄리아(Julia)? 물어볼걸. 아니, 율리아인가? 경치를 보기 위해 왼쪽 자리가 좋을 것 같았다. 성수기가 아닌 듯해서 자리는 여유 있었다. 몬세라트에 다 와서 서서히 올라가는 길이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았다. 몸이 이리저리 쏠리는데 재미가 있었다. 이건 나중에 돌아올 때 탄 산악열차가 주는 묘미와 달랐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교통편이 다르니. 웬만해서 멀미를 하지 않는데, 거의 그 단계까지 가니 버스가 도착했다. 그리고 놀랐다. 버스들이 많아서. 우리나라 가을철 단풍관광객들처럼 버스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여기가 국민관광지인가?
여기는 가톨릭 성지이다. 스페인 3대 성지 중 하나. 사실, 모든 시발은 이거였다.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화는 서기 880년 이곳 톱니 모양(세라트)의 산(몬)에서 어린 목동들이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을 했기에 시작되었다. 그 기적이 빠르게 전파되어, 마을 수도사들이 동굴에 예배당을 짓고 그 후 1025년에 수도원이 들어섰는데, 올해가 몇 년이더라? 그럼 지금까지 수도원은 몇 년 되었는지 계산이 된다. 1881년에는 이곳이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성지로 인정받았는데, 이건 12~13세기 수도사들이 나무를 깎아 성모상을 만들었고, 이것이 치유의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유럽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지로 정해진 건 신화가 시작된 해부터 1001년이 지난 후였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은 사람은 앞날 소망을 위해, 지금까지 많이 살아온 사람은 지난날 회한과 아쉬움에 더해 미진했던 소원을 위해 방문하겠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살면서 받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검은 성모마리아 손에 있는 구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 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도 모르면서. 앞에 앉은 아기 예수가 왼손엔 솔방울을 오른손을 편 그 뜻도 모르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핵심일 것 같다. 뭔가를 아는 일보다 그저 믿는 것. 구가 무엇을 상징하고 솔방울이 무엇을 상징하건 그건 아는 차원의 일이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겐 이걸 아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마음을 더 다지려는 사람들은 성당을 나오면서 하나, 둘 촛불을 밝혔다.
누군 이곳 산봉우리 숫자가 6만 개라는데, 금강산은 1만 2천 봉 아니던가. 놀랍다. 이곳 한 곳에 그렇게 집중되어 있다니. 이러니 산의 기운이 모이고 모였겠지? 그러니 가우디가 몬세라트 정기를 받아 그 멋진 성당을 짓기 시작했을 테고, 혹여나 정기를 팍팍 받으려 트레킹을 하려고 했던 나 같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니. 그런데 산 호안 푸니쿨라 정거장에 오니, 상행 가격이 11유로였다. 이런 바가지가 있나? 왕복으로 타면 좀 싸지만, 그러려고 온 것도 아니고, 그럴 나이도 아니고. 한국말로 따져볼까? 정작 내려보니 목표로 한 산 호안 예배당은 더 위로 걸어가야 했다.
푸니쿨라에서 내린 곳 이름이 몬세라트 전망대였는데 이름값을 했다. 이름이 그랬듯이 수도원 방향도 내려다보고, 반대쪽 방향도 둘러볼 수 있다. 그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배가 고파 그곳에 빨리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산 이베리코 보카디오를 먹으려는 심산이었다. 뭐가 이베리코인 줄 몰라 앞에 섰던 현지인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줬던 것인데, 메뉴표를 봐도 알 수가 없었으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다 용서되지 않던가. 산 호안 예배당 앞에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에 뒤로 가니, 맛있는 경치까지 있었다. 금상첨화였다.
트레킹 보다 중요한 밥을 해결했으니,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몬세라트 신령님께서 나를 붙잡으셨다. 그냥 가지 말라고.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뒤로 돌아보니 사람들이 난간 같은 곳에서 왔다 갔다 했다. 뭐지? 급히 구글 지도를 보니 Cami de San Joan으로 되어 있다. 어라? 같은 이름이다. 산 호안 예배당하고 말이다. 그러니 궁금해졌다. 갈까 말까 잠시 머리가 혼란스럽다가 배운 대로 실천했다. 뭘 할까 망설일 땐 하고 나서 후회를 하자. 이런 지침으로 올라갔다. 가서 보니 암벽 틈으로 사람들이 거주한 유적지 같기도 하고, 지도에는 산 조안 은둔처라고 되어 있기는 했다. 은둔처? 성당이 보이지 않을 뿐 이곳 경치도 넓은 평원을 내려보는 곳이라 좋았는데, 머릿속은 산 호안 이름이 맴돌고 있었다. 산 호안? 산 조안? 아니면 주안? 앞에 산(San)이 있으니 성인?
내가 푸니쿨라를 탔던 곳도 산 호안이었다. 이걸 못하는 영어로 굳이 말하면 세인트 존으로 될 것 같은데, 이걸 다시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 요한. 아, 아, 이거였다. 스페인 말로 산 호안, 산 호안 해서 뭔 말인지 이해를 못 했던 것인데 머리가 잠시 맑아졌다. 그러고 보니, 푸니쿨라를 타고 걸어서 성 요한 예배당에 온 거였고, 사람들이 얼쩡거려 궁금해서 바위틈에 올라오니, 거기가 성 요한 은둔처였던 것이다. 성 요한이 이곳에서 은둔을 했다고? 성 요한과 스페인이 무슨?? 거기까지였다. 호기심은. 내려가야 했다. 가다 성 미켈 십자가 전망대도 들러야 하고, 성당에 가서 검은 성모마리아도 봬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내려가다, 길이 맞는지 헷갈렸다. 길이 성당과 반대편으로 나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최선이라 사방을 둘러보니, 다섯 명이 있었는데, 모두 나와 피부색이 같았다. 현지인이 아닌 것 같아서, 패스! 그때 누가 개를 끌고 올라오는데, 딱 봐도 현지인이었다. 관광객이 이곳에 개까지 끌고 올까? 그러니 물었다. 이 길이 산 미켈 십자가 가는 길이냐고. 어라? 세상에 그가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너 스페인 사람 맞냐고 물으니, 맞다고. 이곳에 사는데 자주 산에 온다고 했었다. 그런데 모르겠다고? 잠시 허탈해하려던 찰나, 누가 옆에서 맞다고 했다. 같은 동양인이라 뭘 알까 하던 사람 들 중 홍콩에서 온 중년의 여성. 그러고 보니 같이 푸니쿨라를 타고 왔던 것이 기억났다. 아니, 내가 위에서 동분서주할 동안 이분들은 도대체 여기서 뭘 한 거지? 그건 그렇고,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홍콩이라고 해서 알았던 것인데, 그녀는 왜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묻지 않았지? 아마, 내가 한국에서 온 걸 알았겠지? 한국인처럼 생겼으니 말이다.
맞다고 하니, 믿어야 해서 믿는 것이 뭔지 알아보려 몬세라트 왔으니, 내려왔다. 산 미켈 십자가 전망대까지. 누가 사진을 찍어도 몬세라트 대표 사진이 될 수 있는 그곳 말이다. 정말 이런 곳이야 말로 미~라도르(mirador, 전망대)이다. 이곳저곳 구경 다니다 보면 가장 많이 접하는 이 단어. 이 단어를 알아 나중에 톨레도에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제대로 목적지에 갔던 기억이 있다. 버스 안에서 길을 물었는데, 그들은 오직 미~라도르만 알아들었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몬세라트 사진 명당 중에 최고의 사진 명당이었다. 아쉬운 건 누구나 아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라 아쉬움?? 그럴 리가. 중요한 건 이러니 몬세라트에 와야 했다는 것이다. 이 경치 하나만으로도. 나중에 이곳을 성당 앞 광장에서 봤을 때, 그 또한 멋진 풍경이 되었다. 그나저나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배운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