께딸?
이렇게 인사할 날이 오겠지? 잘 있었냐고.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다 완성되어, 누구든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날, 그땐 입장료도 공짜겠지? 현재 입장료를 거둬 성당을 짓는 데 사용한다고 하니, 완공이 다 되면 입장료 받을 일이 없어질 테니 말이다. 이것이 희망 사항인지, 성당을 다시 보는 것이 더 큰 희망인지, 둘 다면 좋겠지만. 유럽의 명품 성당들 모두 완성된 성당인데, 이 성당만큼은 공사 중이라서, 그게 내년이 될지 그 이후가 되든 뉴스에서 크게 다뤄질 테니 관심 꺼도 되겠다. 언젠가 다시 올 날을 꿈꾸는 건, 이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라나다로 말이다. 이건 계획된 일이다. 사전에 준비된 일정이라 이건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은 멈추니까. 계속되어야 하는 여행이라서. 그래야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돌아가려고 떠난 여행이니까. 결국, 이건 지리적인 여행이라 돌아가긴 돌아간다. 다른 여행도 있어서, 그것도 돌아간다고 하던데. 태어날 때 흙에서 왔는지 잘 모르지만, 돌아갈 땐 흙으로 돌아갈까? 요즘은 재로 만들어 뿌리니 그곳이 산이 될지 강물이 될지 바다가 될지 아니면 답답하게 갇히게 될지! 떠난다니 심난한가? 그렇지는 않았다. 미련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 남은 미련 그걸 어떻게 표현할까? 떠나는 마당에 두서없이 적어본다!
장면 하나: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구엘 저택
비가 너무 와서 구엘 주택에 갇힌 날이었다. 오전에 도착해서 저택 옥상에도 올라가 가우디 흔적인 굴뚝을 확인하고 나와 점심을 먹고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계획이었다. 아침에 간간이 내리던 비가 수상했다. 오늘은 카탈루냐 국경일이라서 무료입장이 되니 구엘 저택 입구에서 대기 중이었다. 뒤에 줄 선 현지인 남녀와 눈을 몇 번 마주치다 대화까지 이어졌는데, 그중 남자 말이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이런 일이 처음이라고 했다. 여기서 이런 일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걸 말하는데, 나중에 저택 안에서 기다리다 지쳐 1층에 내려가니, 그들이 아직 거기 있었다. 서로 의미심장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구엘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것이 아쉬웠다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를 뚫고 걸어야 하는데, 아무도 건물 밖에 나가지 못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길거리엔 우산만 보였다. 그날 축복받은 자 우산이 있는 자였다. 혹시나 그칠까 기다리다 몸은 지쳤고, 시간은 가버렸다. 올라가려던 옥상은 우천인 관계로 입장불가. 이런! 나중에 기다리다 지쳐, 사실은 배가 고파서 구엘 저택을 나왔다. 비가 약간 줄어들어 크로스백으로 머리만 젖지 말라는 심정으로 람블라 거리로 나왔다. 늦은 점심으로 배는 채웠는데, 머리가 좀 복잡해졌다.
진을 너무 뺐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들어가 저녁때까지 둘러보고 저녁 늦게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야경을 보러 가는 계획을 어떻게 해낼까?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가장 좋은 방안은? 결과는 고딕 지구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숙소에 들어가 잠을 잤다. 대성당은 다음에 보기로 했다. 언젠가! 그 언젠가가 언제 인지 모르는 그 언젠가.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체력이 많이 방전된다. 비행기에 시달리고 시차로 헤매면 몸이 어느덧 임계점에 이르러, 이건 내 저질 체력이 문제지만, 그래서 여기저기 둘러보다 피곤하면 자주 숙소로 돌아와 잤다.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은 이유다. 암튼, 그날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야경을 보러 갔다. 어떻게 갔다 올까 하다, 힘들어도 마지막 힘을 내서 걷기로 했다. 그럼 엄청 피곤할 텐데, 그걸 노린 거다. 정말 피곤하면 생각나는 건 잠뿐이다. 아쉬움은 슬며시 밀려날 테니.
장면 둘: 산 자우메 광장 - 같은 장소, 다른 느낌.
예전에 베트남에 갔던 기억이 난 건 9월 11일 때문이었다. 9월 2일은 그 나라 최고의 국경일이다. 약 100년간의 프랑스 지배로부터 해방을 이뤄 낸 날이니까. 길거리가 온통 빨간 국기로 흩날리던 경험, 그만큼은 아니지만, 9월 11일 하루도 특별했다. 카탈루냐가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스페인 펠리페 5세에게 패한 날이라서. 전쟁에서 패했는데 기념을 한다고? 우린 진 건 기억에서 없애지 않나? 전쟁에 졌으니 카탈루냐의 독립과 정체성을 더욱 잊지 말자는 의미라는데, '라 디아라(La Diada)'로 불리는 이날은 공휴일이다.
자우메 광장은 여행객이라면 여러 번 가는 곳이다. 그건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에 있어서다. 그곳엔 바르셀로나 시청과 카탈루냐 정부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그날 알록달록 복장을 한 사람들이 설치고(?) 있었다.
그러니 며칠 전에 왔던 같은 장소가 다르게 보였다. 앞쪽 골목엔 학생들이 꽉 차서 무슨 행사를 위해 대기 중인가? 더 지켜보려다, 나그네는 길에서 멈추지 않아야 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 많은 람블라(La Rambla) 거리로. 어찌 보면 아주 특별할 것 없는 이곳 거리가 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지금 한쪽 차로가 공사 중이었다. 사람들이 오가는데 공사까지 더하니 정말 분주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에서 단위 면적당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거리 같다. 거리 자체가 고딕 지구와 연결이 되어 있다. 그러니 걷다 보면 우연히 이 거리로 빠지기도 한다. 유명한 보케리아 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로이기도 하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로등을 보러 레이알 광장을 가거나, 바다를 보러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가는 사람들도 이 도로를 통한다. 전체 도로 중간쯤에 호안 미로의 모자이크 작품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밟고 지나가는 것이 호안 미로 작품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바닥에 신경을 쓰며 걷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장면 셋: 산 펠립 네리 광장
스페인 내전 당시 이곳에 폭탄이 떨어져 많은 아이들이 희생을 당한 곳이다. 벽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전쟁이란 어떻게든 상흔을 남긴다고 느꼈을까? 폭탄이 떨어졌는데 유독 아이들이 희생을 많이 당한 이유도 가보면 알게 된다. 그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사방이 거의 막혀있는 아늑한 공간에 독재자 프랑코가 민간인 48명을 학살한 곳도 이곳이라는 생각이 미치면 뭔가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은데, 가보니 전혀 아니었다. 시골 장날 장터 같았다.
어른들 말 잘 듣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치면서 놀고 있었고, 수업이 끝났는지 부모들은 자기 애들 찾느라 분주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일부 어른들은 서로 얼마나 친한지 증명하듯 수다가 한창이다. 누가 학부모이고 누가 학교 선생인지 내 눈엔 구분이 될까만은. 바르셀로나에서 생기가 가장 팍팍 튀는 곳 같다. 한때 전쟁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역사적 장소라는 의미는 그저 여행객에만 해당되는 것 같다. 그곳 14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작은 성당에 가우디가 1926년 6월 7일 미사를 드리러 오다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것조차 나그네에게만 의미가 있겠지?
장면 넷: 개선문과 시우타데야 공원
바르셀로나에서 가보지 않은 이곳저곳을 그저 남겨두려고 했다. 꼭 채울 생각은 애초 없었지만, 그런 대상 중에 개선문과 시우타데야 공원도 있었다. 지도를 보니 지리적으로 멀게 느껴져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구엘 저택을 가는 날 숙소에서 나오면서 구글맵을 껐다. 대강 시내가 머릿속에 들어와 보지 않아도 걸어갈 것 같았다. 열심히 걷다 보니 사람 많은 그라시아 거리가 평범해졌다. 어, 이상한데? 그러다 좀 걸어가니 정말 멋진 조형물이 나왔다. 나중에 알아보니 바르토메우 로버트 박사 기념비이고, 그곳 광장이 테투안(Tetuan) 광장이라던데, 이건 스페인들도 알까 말까 한 역사 아닐까? 확실한 건 가야 하는 람블라 거리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것. 그럼 어떻게 하겠어?
괘도를 수정하고 방향을 틀어 앞으로 가니, 그때 아리따운 문이 하나 보였다. 이렇게 얘기하니 작은 문 같지만 아니다. 이문은 1888년 바르셀로나에서 만국박람회를 열었는데, 문을 주 출입문으로 사용했다는 그 개선문(Arc de Triomf)이다. 아마, 만국박람회를 기념해서 지은 건물 같았는데, 문이 주는 색감이 오늘처럼 비가 올락 말락 끄물끄물한 날씨와 딱 맞는다. 로마에 흔한 개선문들처럼 심오한 역사를 지니지 않았지만, 눈 높은(?) 내 눈에 딱 맞는다. 그 앞을 지나니 넓은 광장이 연결되어 있고 왼편에 호텔인 것 같은 건물이 서 있는데, 세 쌍둥이인가? 미적으로 주변과 조화롭다. 그곳을 좀 더 걸어가니 공원 입구가 나왔다.
이거구나. 시우타데야 공원. 사람들이 여기저기 산보와 조깅을 즐긴다. 아침이라서 그런가? 개선문 앞부터 이곳 입구까지 무슨 축제를 하려는 건지, 벼룩시장이 열리는 건지 몇몇 사람들이 분주하게 텐트를 치고 있었다. 그곳을 둘러보자니 너무 커서 보려다 포기하고, 새들과 노닥거리는 여성들을 잠깐 지켜보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실은 내가 다가가니 새들 몇 마리가 날아갔는데, 외국인이라고 깔본 건지, 남자라고 놀란 건지. 새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걷고 또 걸으니 람블라 거리가 나왔다는 말씀.
장면 다섯: 고딕 지구(Gothic Quater)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를 빼고 볼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딕 지구만을 보려고 바르셀로나에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은, 이 고딕 지구 상당히 매력적이다. 굳이 시대를 거스르면 로마시대까지 연결된다. 크지는 않지만 로마시대 성벽이 남아있고, 그 앞에 수도교 일부도 볼 수 있다. 수도교 하면 생각나는 곳이 세고비아 지만, 로마가 당시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유럽에 말이다.
그런 고색 찬연함 근처엔 노골적으로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키스의 벽이 있다. 이름도 그렇듯이 묘한 망상을 하다 다가가면, 모자이크다. 그것도 정말 많은 사진으로 만든 모자이크.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자유의 순간이란 주제로 찍은 사진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키스하고 뭔 상관이냐고?
근처엔 피카소 벽화도 있다. 그림을 저 벽에다 직접 그렸다는 건지 어떻게 했다는 건지. 내용은 카탈루냐 전통인형인 거인인형과 라 메르세 축제에 등장하는 인간탑 쌓기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대가가 그리니 향기가 절로 날까? 이러니 유명하긴 유명해져야 한다. 그건 그렇고, 역시나 고딕 지구 터줏대감은 대성당이다. 성당 앞은 항상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곳에서 버스킹도 하고, 추억도 카메라로 열심히 만들고. 성당을 정면으로 왼편 골목으로 가면 성당 뒤편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성당 뒷모습이 앞모습보다 더 좋다. 성당 정면이 전형적인 고딕양식이라서 그런 것 같다. 많이 본듯한 모습이라서 그럴 것이다. 오른편 골목으로 돌아가면 비스베 다리가 나온다. 베네치아 탄식의 다리와 비슷한 이 다리를 사랑의 다리라는데 왜? 이곳을 걷다 보면 콜럼버스가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여왕을 만났다는 왕의 광장과도 연결된다. 이리저리 스토리텔링 거리가 많은 곳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람블라 거리에서 중간에 골목으로 빠져 왕의 광장 쪽으로 오면 페란 거리를 거쳐 아비뇽 거리와도 만나게 되는데, 아비뇽이 프랑스에 있는 줄 알았다. 아니다. 프랑스에도 아비뇽이 있다. 이름이 같은 것이다. 그 아비뇽은 아비뇽의 유수할 때 그 아비뇽이다. 14세기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신성로마제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강제로 이주시킨 사건 말이다. 고딕 지구 아비뇽은 많이 다르다. 피카소 작품 중에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작품.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이곳 아비뇽 거리가 예전에 홍등가였다니 좀 생각이 달라지지 않던가! 그러니 살짝 궁금한...... 피카소는 거기 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