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레가가 짝사랑하던 여인이 있다. 글쎄, 그녀는 타레가의 제자이면서 유부녀였다. 기타를 가르치며 연정을 품었나 보다. 어느 날 사랑을 고백했는데 차였다. 그러니 그 아픔을 어떻게든 이기려 여행을 갔다. 간 곳이 알람브라(Alhambra)였다. 그곳에서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를 돌다 아세키아 정원에 들어섰다. 작은 물줄기들이 줄지어 올라오는데, 그건 아픔이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그러니 영감을 받아 곡하나 썼는데, 죽어서도 남들이 알아주는 명곡이 되었다는 전설?
이게 맞는다면, 그녀가 유부녀가 아니었다면 타레가를 받아들일 확률이 높았을 거고. 그녀가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명곡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런 유치한듯한 얘기를 꺼낸 이유는 타레가가 만든 그 곡이 누구에게든 알람브라를 알게 해 준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설령 그 곡이 없었어도 알람브라 궁전은 앞으로도 아름다움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이슬람 건축물임은 자명할 것 같다. 그렇다고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명곡이 안될 리는 없었을 테니.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다.
알람브라는 하나의 건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라나다 시내를 흐르는 시냇물 같은 다로 강에서 올려다보면 앞쪽에 알카사바가 있다. 전망이 가장 좋으니 요새로써 적합하다. 해발 740m의 높이에 자리 잡고 있어, 그곳 벨라의 탑에서 내려다보면 대성당부터 그라나다 시내뿐만 아니라, 주변 산악지대와 시에라 네바다 산맥까지 시야가 넓어진다. 탑에 걸린 종은 평상시에 주변의 관개수로를 관리하는 용도라는데, 어떻게 활용했다는 건지? 알카사바는 알람브라에서 가장 먼저 9세기에 건설되기 시작해서 13세기에 걸쳐 완공되었고, 한때 24개의 망루와 군인 숙소, 창고, 목욕탕까지 있었다고.
나스리 궁전이 14세기에 완성되고 1492년에 나스리 왕국이 무너진 걸 감안하면, 나스리 궁전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영화를 누리지 못한 건 같다. 철옹성 같은 나스리 왕국이 이사벨 여왕에 의해 함락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당시 술탄의 아들 보압딜(나중에 무함마드 12세)에 의한 내란이 있었다고. 18세기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이곳에 주둔을 하였기에 알카사바가 훼손되었다는. 왕국이 붕괴된 후 지속적으로 방치되던 이곳을 미국의 작가이면서 외교관이었던 워싱턴 어빙이 1829년 《알람브라 이야기》를 씀으로 해서 세상에 알려졌다는. 그래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다르게 들렸을까?
알카사바 옆쪽에 위치한 나스르 궁전은 크게 네 개의 궁을 이뤄졌다. 알람브라도 궁전이라고 하고 나스르도 궁전이라고 하고, 헤네랄리페도 여름 궁전이라고 하고. 궁자가 여기저기 붙다 보니, 헷갈린다. 이건 번역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같지만. 우선, 메수아르의 궁은 왕의 집무실이자 외교 공간이다. 벽과 천장은 아라비아 문양의 타일로 되어 있고 천장은 목재로 만들었다. 나스르 왕조를 상징하는 국호는 '알라만이 승리자"라는 뜻이라는데, 이곳에서 알라는 승리자였을까? 그중 대표적인 황금의 방은 이슬람 법정의 관리들이 술탄의 형량을 기록하고 집행한 공간으로 세 개의 아치로 이뤄져 있다.
코마레스 궁은 왕이 거주하는 공간이다. 그중에서 아라야네스 중정은 길이 35m, 너비 7m의 직사각형 연못으로, 물에 비치도록 한 모습이 인도 타지마할에 영향을 미쳤다고 할 정도다. 연못 뒤의 탑이 코마레스 탑이다. 이 궁은 왕이 외국 사절들을 접견하거나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으로, 벽면에 가득 채운 아랍문자는 코란의 문구. 코마레스 탑을 누르는 형태가 바로 카를로스 5세 궁전이다. 이걸 짓기 위해 코마레스 궁을 훼손하였다고. 이곳에 흐르는 물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서 끌어온 곳이라고 하니, 전체 알람브라에도 해당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알람브라의 백미는 건물과 물과 조경이 함께 내는 하모니 같다.
사자의 궁을 굳이 나스르의 정수라고 한다면 그건 천장 장식 때문이다. 사자의 중정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왕의 방을 남쪽에는 아벤세라헤스의 방, 북쪽에는 두 자매의 방을 배치했다. 이곳이 가장 화려하게 느껴지는 건 각각의 천장이 상징하는 모양이 다른 걸 떠나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생각하게 된다. 왕의 방이 아라베스크와 모카라베의 절제된 양식이라면, 아벤세라헤스의 방 천장의 모카라베는 석회동굴의 종유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벌집 형태이다. 두 자매의 방은 기하학적일 수밖에 없는 꽃 모양이다. 이름 때문에 이설이 있는 두 자매의 방은 좌우 양쪽에 똑같은 두 개의 방 때문이란 것이 정설 같다.
파르탈 궁은 사자의 궁을 지나 두 자매의 방에서 보이는 린다하라 정원을 지나야 나온다. 다른 궁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면 파르탈 궁은 따로 떨어져 있다. 다른 궁들에 비해 미적으로는 가장 뒤진다는데, 정원과 함께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나스르 왕조의 무함마드 3세가 지었다니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궁으로, 남아 있던 다섯 개의 아치를 중심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래 파르탈의 의미도 기둥이 있는 현관이라서, 그걸 알고 보면 파르탈 궁이 다르게 보인다. 그 앞에 물을 배치해서 반영된 모습은 역시나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이름도 귀부인의 탑?
나스르 궁전 옆에 있으면서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뭔가 이질적인 건물이 카를로스 5세 궁전이다. 나스리를 오가며 거쳐야 하는 이곳에 겨울 궁전이 있었다는데, 그걸 허물고 지은 건물이라서 그런지 수상쩍다. 겨울 궁전이 있었다면 여름 궁전과 비교되었을 텐데 아쉽지만, 알람브라가 이나마 살아남은 것도 다행이다.
1527년에 착공해서 1930년에 들어서야 겨우 완공된 카를로스 궁전은 그간 겪은 풍파를 드러내듯 내부가 휑하다. 건물 안은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사용되니 그나마 다행인데, 이 건물은 정말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겉에서 보면 정사각형 건물이 안으로 들어오면 원형으로 되어 있다. 1층 기둥들은 도리아식 2층 기둥들은 이오니아식이다.
아침에 들어간 헤네랄리페(Generalife)는 아침에 봐서, 덥지 않았으니, 주변이 다 그린그린해서 마음이 붕 떴다. 멀리 보이는 궁전들이 붉은 건물들이어서 그랬는지 녹색과 대비되는 색감이 아름다웠다. 결과적으로 아침에 일찍 둘러보기 잘했다는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밖에서 노닐다 아세키아 정원으로 들어가 한참을 머무려고 했다. 줄지어 올라오는 물줄기를 보며, 시간과 공간이 함께 멈춘 것 같은 그 느낌을 즐기고 있었는데, 사람들 소리가 요란했다. 단체관광객들이 온 것이다.
스페인에서 성당의 가치는 입장료에 따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그라나다 대성당 입장료는 비싸지 않다. 이 말이 틀리지 않는 게, 세고비아 대성당 입장료도 비싸지 않았다. 그러니 세간의 평가는? 성당은 옛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새워졌다. 무어인들이 이 땅에서 물러가면서 1523년 건축이 시작되어 1703년에 완공되었다는데, 유럽에서 창궐한 흑사병 때문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건축양식은 고딕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건축에 무데하르와 바로크 양식까지 볼 수 있다는데 이걸 논하는 건 능력 밖이다. 그저 첫인상이 놀랍도록 깔끔했다는 것과 도시 전체가 주는 흰색 계통과 맞물린 것 같아 보였다.
대성당 뒤편에 자리 잡은 왕실 예배당은 왕실과 관련된 사람들만 예배를 볼 수 있어서 이름이 그런 것이겠지? 그라나다 대성당보다 작은 이 성당이 더 끌린 건 무덤 때문이었다. 보통 성당 지하에 성인과 교황의 무덤이 있어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왕가의 무덤만을 따로 보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없었다면, 레콩키스타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스페인은. 난공불락 같은 알람브라가 무너진 것이 무함마드 12세의 반란으로 쇠약해진 덕분이 아니라도, 결국 이사벨 여왕이 선포한 산타페(성스러운 신앙)로 성전을 선포함으로써 나스리 왕국을 무너뜨리긴 했을 것 같다.
왕실 예배당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의 무덤뿐만 아니라 딸 하우나 1세, 사위 필립 1세, 손자 미겔 다 파스가 함께 안치되어 있다. 당시 교황이 이들 부부를 가톨릭 부부왕이라고 명명할 정도니 이들에게 드리워진 영예는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이름이 왕실 예배당이라서 그런지 내부가 더 화려하게 느껴진 건 나만 그랬을까? 이사벨 여왕이 소장했다는 그림 등을 보면서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예술품들을 소장했던 것이 결국 권력의 힘 때문에 가능했을 텐데, 그랬기에 이런 예술품들이 보호된 것도 그 힘 때문인 것 같아서 말이다.
결혼식이다. 사그라리오 성당이다. 바로 옆에 그라나다 대성당을 친구로 둔 성당 말이다. 알론소 카노 광장을 지나는데, 가장 먼저 고색창연한 차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도 모여있고. 차는 벤츠 170 S. 뭔 일인가 봤더니 신부 아버지가 신부와 함께 성당에 입장 중이다. 슬쩍 들어가 보려다 포기했다. 티가 확 날 것 같았다. 신랑 신부 측에서 날 초대했을 리 만무하고. 늘어선 구경꾼들이 다들 박수로 축하한다. 어제는 니콜라스 전망대에 오르다 결혼식 피로연도 본 것 같은데, 이러니 세상은 멈추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없어도 말이다.
이슬람 왕국이 무너졌기 때문에 슬픔과 회한을 느꼈을까? 스페인에서 레콩기스타는 722년 펠라요가 이끄는 가톨릭군이 우마이야 군을 격파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럼 그때까지 이슬람 군대가 이베리아반도 북부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스페인 북부 산악지대 아스투리아스에서 겨우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으니......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무어인들의 역정뿐만 아니라 이를 막아내기 위해 무려 7백여 년을 싸워온 가톨릭 왕국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예정된 트레킹을 위해 아스투리아스에 갔었을 때 날씨가 좋지 않아 바뀐 일정. 그래서 방문한 코바동가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연결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타레가의 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들으면서 느꼈던 그 애잔함 말이다. 사는 게, 살아내는 게 이런 것(?) 같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