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광장에 다시 간 날이다. 알카사르를 지나며 과달키비르 강을 따라갈까, 전처럼 산 페르난도 길을 통해 갈까 생각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조금 덜 걷기 위해서다. 발바닥에 피로가 몰린 것 같다. 머리를 굴려야 한다. 피곤하니까. 호텔 알폰소 13세 호텔을 지나면 세비야 대학이다. 그 앞을 걸어 지나가는데, 앞에 희한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무슨 행사가 있었나? 축제인가? 남녀 불문 모두 흰 상의에 물감 범벅이다. 장난으로 서로에게 물감을 푼 물을 뿌린 듯한 모습니다. 머리카락까지 컬러풀하고. 브래지어를 찬 남자까지. 여자들은 짧은 반바지에 팬티를 걸치고 당연한 듯 브래지어까지 입고 있다. 무슨 일이지?
이들이 갑작스레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건 아닐 테고. 분명 어디선가, 아마도 대학 건물에서 나왔다는 생각이 합리적일 것 같은데, 아닐 수도 있다. 대학 안에서 이런 기행을 했을까? 지금까지 뭘 하다 어딜 가는 거지? 나야 스페인 광장으로 향하니 잠시 건널목까지 같이 걸었고, 그곳 신호등에 걸려 같이 있었는데, 숫기가 부족한 나라서 감히 물어보지를 못했다. 티셔츠와 반바지 밖으로 브래지어와 팬티를 걸치다니. 대대 세세 양반집 조상을 이어받은 귀한 집 자식인 내가 눈을 들 수가 없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고. 그러다 든 생각, 세비야는 젊다.
그라나다에서 세비야에 올 때 세운 계획에 대학교를 넣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랬고 그라나다에서도 그랬다. 그건 동선이 따라주지 않아서인데, 세비야는 아니었다. 스페인 광장을 안 보고 갈 거면 그럴 수 있으나, 그곳은 워낙 유명하고 아름다운 광장이라서 그러기 쉽지 않다. 어떤 여배우가 광장에서 탱고를 추는 광고로 우리에게 더 알려진 그곳? 그 광장을 품은 마리아 루이사 공원은 상당히 크다. 대성당 주변을 도는 마차 상품뿐만 아니라 이 공원을 가로질러 스페인 광장 앞까지 둘러보는 마차 상품도 있다. 1928년 엑스포를 위해 만든 광장이라고 하는데 상당히 운치 있다. 1889년 파리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에펠탑도 파리 엑스포를 위해 만든 거라서, 옛날엔 엑스포가 미친 영향이 엄청났었나 보다.
스페인 광장 안에는 인공운하를 만들어 놔서 배를 탈 수 있다. 운하가 있으니 그걸 건너려면 다리가 있어야 하는데, 옛날 스페인의 4개 왕국(아라곤, 카스티야, 나바라, 레온)을 상징해서 4개의 다리로 운하를 건너게 해 놨다. 광장을 중심으로 보면 왼쪽과 오른쪽 끝에 탑을 세워놨다. 대칭으로 해놨으니 쌍둥이 탑 아닐까? 광장은 반원 형태로 해놨고, 건축은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문외한이라서 정확히 구분할 수 없지만, 상당히 고풍스러운 건 인정한다. 지금 이 건물은 안달루시아 주청사와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라는데, 2층에 올라가니 입구가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검문검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물이 반원 형태라는 건 광장 모양도 그렇다는 것인데, 자칫 밋밋할 수 있는 그 벽면에 스페인 48개 주를 상징하는 각 도시를 타일로 모자이크를 해서 만들어놨다. 각각의 그림을 의미 있게 찾아보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나그네는 길에서는 쉬지 않으니 그 앞 의자에서나 앉아 쉴까? 딱딱해서 오래 앉기는 그렇지만 지치고 힘들 때는 요긴하다. 아쉽게 탱고를 추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 가서 그런 것 같다. 저녁에는 당연히 야경을 보러 가는 곳인데, 환상적이지 않지만 설치한 조명의 색깔이 달라지면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인상적이다. 역시나 이곳은 사람 구경하는 곳이다. 오가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로 비눗방울이 방울방울 거린다. 그걸 멍하니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사위가 어둡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학로인 산 페르난도 길은 탁 틔어있다. 그건 그 길이 트램도 같이 지나는 길이라서 그런 것인데, 넓은 도로라서 시원시원하다. 그 길 따라 상가가 쭉 늘어서 있다. 세비야 대학을 마주 보고 말이다. 이곳을 오가며 대성당 주변 상권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학로라서 그런지 길가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떠는 사람들이 다 젊다. 외국인은 거의 보이지 않고, 음식도 거창한 음식을 파는 것 같지 않다. 걷다 보니 이발소와 화랑도 눈에 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는데, 손님들 또한 학생들로 보였다. 나만 빼고. 세계 어디서나 학생들 주머니는 가벼운 걸까? 대체로 이곳 음식점들 가격이 싸다고 했던 것 같다. 배고파 먹은 보카딜로와 카페 콘 레체가 맛있던 건 아마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1505년에 개설한 세비야 대학에 들어간 건 즉흥적이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언제 대학교에 들어가 볼까라는 생각을 하자 마자 바로 들어갔다. 스페인 광장에서 오다 그런 것인데, 이 대학이 규모가 얼마나 크고 학문적인 성취가 얼마나 높은지 그걸 알아보러 갔을까? 역시나 대학 건물 안엔 학생들로 가득했다. 건물 안 복도를 오가는 그들과 함께 한다는, 궁금해서 카페테리아에서 학생들이 뭘 시키는지, 강의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다, 이곳에 6개월 정도 교환학생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여기서 뭘 공부할 거냐고? 그게 중요할까? 학교 안이라 그런지 공기마저 싱그럽게 느껴졌다면 과장일지라도,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그곳에 있으니 나도 잠시 젊어진 것 같아 좋았다. 그러니 세비아는 젊은 곳이다.
세비야에 와서 젊은이들을 보니 여행은 과거로 떠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처럼 도시별로 볼 것이 많은 곳을 돌아보면, 주로 보게 되는 것이 지난 과거의 흔적들이다. 세비야에서도 대성당에 들어가 한때 세비야가 얼마나 번성한 도시였으며, 호위무사처럼 서있는 히랄다 탑과 관련된 역사와 바로 옆에 있는 알카사르에 들어가 왕족들이 어떻게 호화롭게 권좌를 누렸는지를 확인하는 것조차 다 지난 걸 보는 것이다. 여기에 산타페 협정 같은 문서를 직접 볼 수 있는 인디아스 고문서관 같은 경우 정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확인하는 곳 아니던가?
온고지신. 여행이 전하는 이 말을 세비야에서 들은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그 자체가 젊은것이니까. 그걸 세비야가 알려주니, 세비야는 젊다.
세비야는 언제 망했을까? 도시 세비야가 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곳을 지배한 세력이 그리된 것일 텐데. 처음엔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하나의 이슬람 왕국이 지배했는 줄 알았다. 이곳은 세비야 타이파국을 세운 압바드 왕조라고 한다. 대략 로마에 의해 지배를 받다가, 다음엔 반달족이 침략했고, 그 이후엔 서고트 왕국이 이베리아반도의 주인이었다가, 700년대 초부터 무어인들인 우마이야 왕조가 이들을 물리치고 이베리아 전체를 지배함으로써 이슬람 왕국으로 만들 뻔했다. 722년 그들이 코바동가 전쟁에서 패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밀려나기 시작한 이슬람 왕조 중 압바스 왕조는 1248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세비야에서 사라졌다.
누군가 알카사바의 추억과 같은 명곡을 남겼다면 혹시 알람브라에 대해 느낀 애잔함이 남아있으련만 세비야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비야의 사랑이라고 곡을 만들었다면 그럴듯한데, 그래도 타레가의 명곡이 주는 느낌은 없을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가 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반면에 그라나다와 세비아는 비슷한 면이 많다. 크게는 이곳을 지배했던 세력이 이슬람 왕조였고, 그들이 레콩키스타로 몰락해 간 과정이 유사하다. 워낙 이슬람 세력이 오래 지배했기에 그들로부터 받은 영향도 비슷하다. 각 도시의 대성당이 그랬고, 세비야에선 히랄다 탑으로 특히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어딘가 익숙함!
알카사르는 성이다. 처음 이슬람 왕조가 지은 줄 알았더니 그전에 서고트 왕국이 지었던 바실리카를 개축해서 무와히드 왕조 때부터 궁전으로 사용했다. 알카사르 이전 이름인 이곳 알 무바라크 궁전을 가톨릭 왕국이 세비야를 정복을 하고 그걸 자기들의 왕궁으로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양식이 섞여 무데하르 건축물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알람브라는 규모가 이곳보다 훨씬 커서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나스르 궁전 등으로 구분되지만, 이곳 알카사르는 궁전과 정원이 같이 붙어있는 구조에다 건물 안 대사의 방 등과 같이 알람브라 나스리 궁전에서 본모습들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신선함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곳만의 독특함이 없었을까?
우선 확실한 하이브리드이다. 이걸 짬뽕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주로 이슬람 양식으로 된 성안에 들어가면 가톨릭 왕국이 지배를 했으니 그때 왕들이 쓰던 방들이 나오다, 다시 이슬람 양식의 방들이 나오고 그러게 돌다 보면 어느덧 2층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 왕실 예배당이 있다. 그런 건물 옆이 바로 정원이다. 카를로스 5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었다는데, 정원은 헤네랄리페만큼 아름답지는 않아도 이 정도 수준으로 정원을 유지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위세가 대단했을지 가름하게 한다. 특이한 건 정원 뒤편에 목욕탕이 있었는데, 알람브라의 경우도 목욕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