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다엔 누에보가 아니어도.

by 길문

론다가 가장 좋았다.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 말이다. 세비야에서 론다를 갈 때 그저 그랬다. 그러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창밖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길도 왕복 이차선으로 줄어들었다. 버스로 가는 길이 고불고불하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다 보는 흔한 스페인 풍경이 아니다. 넓은 벌판에 수소 조형물 달랑 있는 휑한 분위기가 아니라, 제법 산길을 올라간다. 안달루시아 지방이 이렇던가? 지금까지 다른 도시를 갈 때 버스 밖 경치가 별로라서 졸리면 잤다. 굳이 눈을 부릅뜨고 잠을 쫓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론다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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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의 발상지 론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아 투우장이 나왔다. 처음 이곳에서 생긴 투우에 사람들이 얼마나 흥미를 가졌을까? 토로스 데 론다 광장이다. 그곳에 투우장이 있다. 그런가 하니 사진으로 기록하고 좀 더 걸어 미~라 도르로 갔다. 스페인을 여행할 때 잊으면 안 되는 단어. 론다 전망대다. 공원인가? 정자에서 예쁜 아줌마가 하프를 뜯고 있다. 그러다 들어온 광경. 론다가 산악지역에 있다길래 얼마나 높을까 했더니 해발 750m이다. 겨우 이 정도 높이라고? 웃자니 건방져 보여 겸손을 떨어야 하는데, 바로~ 겸손해졌다. 산악지역 맞다. 무려 해발 750m라서 이렇게(?)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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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뜯는 여인과 안달루시아 풍경.

정말 잘 왔다 싶었다. 이렇게 상쾌하고 통쾌한 풍광으로 피로가 싹 가셨을까만은. 사실, 누에보 다리 그 자체보다 매력적이다.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으니.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단 몇 초라도. 다행히도 이 장면은 론다 구시가지를 걷는 내내 까지는 아니고, 계속 눈에 담아둘 수 있다. 역시 자연이다. 자연에 사람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제 다리로 가기 위해 론다 파라도르를 지나는데 막혀있다.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자주 걸었다는 산책길을 막아놨나? 이름에도 있는 길(way)을 막다니. 투덜대고 헤밍웨이 기념상을 오른편으로 돌아가니 당연히 그곳에 120m 협곡을 잇는 다리가 있다. 그 밑에 과달레빈강이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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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노리 야마우치 산책로에서 보는 누에보 다리와 그리스도의 호로 가는 길.

엘 타호 협곡이다. 협곡과 다리가 어울려내는 경치 때문에 그걸 보러 오는 사람이 아주 많다. 하지만 다리 이름이 누에보라니. 그냥 신 다리이고, 이전에 이용하던 다리는 비에호, 구 다리라니. 협곡과 다리와 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비하면 유치하고 가소롭다.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외국인에겐 누에보라 발음으로는 그럴 듯 하긴 한데. 이 다리는 1741년에 시작해서 1793년에 완공했다. 지금 다리 말고 처음에 만든 다리는 무너져 90여 명 사상자가 난 후 다시 지은 거란다. 성수대교도 아니고. 옛날에 그랬으니 까짓것 용서하마. 그런데 사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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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전망대와 그곳에서 본 누에보 다리.

론다를 사랑한 문인으로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있는데, 헤밍웨이만 사람들 입에 오르는 건 소설 때문인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보다 먼저 겪은 편가르고 땅따먹기 싸움, 내전. 주인공이 국제 여단 편에 서서 프랑코 파시스트들과 싸우다 죽는다. 다리를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하다 그런 것인데, 그 다리가 누에보 다리였나? 와서 보니 누에보 다리를 무너뜨리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아주 튼튼해 보인다.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는 1975년까지 독재를 했다. 그사이 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전쟁터에서 100만이 죽고 민간인을 포함해서 2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그중 이곳 누에보 다리에서 공화파 지지자 500명을 떨어뜨려 죽였다니. 총알이 아까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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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호 다리와 엘 타호 협곡.

세비야, 코르도바, 론다 모두 안달루시아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이 말인즉,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거의 같은 지배를 받았다는 말이다. 우마이야, 후 우마이야, 무라비트, 무와히드 왕조라는 단어가 이제 낯설지 않다. 중요한 건 1485년에 스페인의 국왕인 페르디난트 2세에 의해 망했다는 사실. 그 후 시간이 지나 프랑스와 벌인 스페인 독립전쟁 때 론다도 피해를 많이 받았다니. 이건 나폴레옹 군대가 알람브라 알카사바에서 주둔한 후 그곳을 일부 파괴했다는 것과 같은 얘긴데, 이베리아반도에서 전화를 피한 곳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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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목욕탕과 펠리페 5세 문.

안달루시아 평원과 누에보 다리, 엘 타호 협곡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카즈노리 야마우치 산책로일 것 같다. 그 길이 헤밍웨이 산책로와 연결되는데, 그곳에 감옥 입구도 있다. 내전 때 사용하던 악명 높은 감옥. 투우장 쪽에서 걸어올라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 누에보 다리 바로 건너기 전 오른편 초입에 있는 장소. 내려다보니 그 밑 둘레길(?)에 사람들이 오가길래 뭐지 했었는데, 나중에 구시가지를 보고 돌아가다 보니 그곳이 누에보 다리 전망대와 그리스도의 호(Arc of Chris)로 오가는 길이었다. 잠깐, 카즈노리 야마우치가 누군가 알아보니 일본의 게임 개발자다. 그가 왜? 그가 만든 게임 배경이 론다였나 보다. 론다에서 이름까지 달아줄 정도면 그 게임이 대박 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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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다 흰색이다.

드디어 누에보를 건넜다.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서는 아니고 작은 마을 전망대(mirador de aldehuela)에 가기 위해서다. 아까 봤던 장면을 반대편에서 볼 수 있는 그곳에서 내려다보니 쿠엔카 전망대와 그 밑에 쿠엔카 공원, 그 공원 밑에 비에호 다리까지 보인다. 누에보 다리는 이쪽저쪽에서 다 봐야 하니까. 보는 맛이 확실히 다르다. 그곳 전망대는 생각보다 넓다. 광장 같다. 두 명이 버스킹도 하고, 단체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 같은데, 그곳만큼 사람들이 모일만한 공간이 다리 주변에 없다. 그들이 누에보를 올려다보러 쿠엔카 전망대까지 내려갈까? 다시 올라와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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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모카바 문과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쿠엔카 전망대에서 다리를 올려다보고 비에호 다리까지 내려갔다. 옛날에 이 다리를 거쳐 오가려면 다리 많이 굵어졌겠다고 할 정도로 누에보 다리에서 꽤 내려온다. 이거였다. 다리를 다시 지은 이유. 그사이 건축기술도 좋아졌겠고. 그러니 지었는데 무너져 사람이 죽고. 그랬기에 다리를 더 튼튼히 지었을 테고. 사실, 이곳으로 내려온 이유는 도시 끝에 있는 알모카바 문(puerta del Almocabar)을 가기 위해서이다. 누에보 다리에서 바로 대로를 따라가도 되건만, 이쪽을 택한 건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을 보고 싶었다. 그걸 보고 돌아오다 성당에 들른다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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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 성당에서 본 전경과 내부 모습.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압권이다!

비에호 다리에서 조금 걸어가면 13세기 지은 아랍 목욕탕이 있는데, 이건 밖에서 보는 것으로 대충 때웠다. 그 후 다시 올라와 펠리페 5세 문을 지났다. 문이 작아 큰 감흥은 없으나, 여기에 왜 펠리페 5세 문을 만들어놨을까? 이것도 론다로 들어가는 개선문이었을까? 그 문 앞이 갈림길이다. 위로 가면 무어 왕의 집을 거쳐 누에보 다리로 돌아가는 것이고, 직진을 하면 성벽을 따라 성문으로 갈 수 있다. 여행도 선택이라서. 인생처럼 말이다. 걷는 왼편으로 갈색 들판이 따라 걷는 것 같다. 가끔 돌아보면 하얀 집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하얀 집? 안달루시아 지방에 왜 하얀 집이 많은지 그걸 언급하는 건 새삼스러울 정도이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이라서. 그렇게 알모카바 문에 도착했다. 구도시 끝에 온 것이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여행객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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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달루시아 평원과 성벽.

다시 누에보 다리 쪽으로 걸어 올랐다. 덥지만 가야만 한다. 그래야 세비야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그렇게 가다가 들른 성당. 론다를 대표하는 이 성당이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들른 도시들에서 성당을 빼놓지 않았으니까. 입구도 작고 안으로 들어가 성당 입구 쪽 발코니에 올랐을 때 평범하게 보였다고 실망까지는 안 했지만, 그런 생각이 바뀌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성당 위에 있는 전망대 때문이었다. 다른 성당처럼 종탑에 오른 것도 아니고, 종탑에 오를 수도 없었고. 그전에 성당 내부가 상당히 화려했음을 인정해야겠다.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라는데, 역시나 문외한이라서 모른 체하더라도 충분히 볼만했다. 그리고 전망대! 올라가서 내려다본 성당 내부뿐만 아니라 성당 건물 좌우로 볼 수 있는 풍경이 역시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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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호에서 바라본 안달루시아 풍광과 누에보 다리.

흡족해서 걷다 보니 마리아 광장이 앞에 있었다. 거기였다. 누에보 다리 전망대와 그리스도의 호로 가는 입구 말이다. 카즈노리 야마우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며, 저 길이 어디로 연결될까 했던 그곳. 더운 날 마리아 광장에서 가까워 누에보 다리 전망대에 들어가려니 돈을 내야 한다. 갑자기 굳이 돈을 받아,라는 억한 심정에 패스했다. 밑에 보니 다른 공간이 있는지 사람들이 헉헉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굳이 갈까라는 미련은 전혀 들지 않았다. 트레킹을 하러 스페인에 왔는데, 이 정도? 그렇게 내려갔다. 그리스도의 호(Arc of Chris)라는 곳. 명소란 조건이 어떠해야 하는지 한방에 알려준 그곳. 앞에는 안달루시아 평원이 뒤로는 엘 타호 협곡, 그리고 누에보 다리. 무슨 말이 더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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