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는 마드리드와 가깝다 보니 알사 버스가 30분 정도 간격으로 있다. 올 때처럼 예약한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에 가보니 줄이 엄청 길다. 뭔 줄인가 했더니 내가 타고 갈 버스 줄이다. 그런데 이렇게 줄이 길어? 버스 배차 간격이 짧아서인지 티켓에 좌석 번호가 없다. 그래도 내가 예약한 시간엔 타겠지 했는데, 늘어선 사람들 숫자를 대충 헤아리니 갈똥말똥했다. 불안해서 앞에 선 젊은 처자(處子)에게 말을 걸었다. 그건 그녀가 예뻐서였지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그녀가 들고 읽고 있는 소설책이었다. 그것도 영문소설. 작가가 누구였더라?
영어가 된단 얘긴데, 그렇게 시작한 대화. 줄이 긴 이유와 왜 굳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물어봤다. 좌석번호가 있었다면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을 텐데 하고 생각했었으니. 그녀 왈, 선착순이라는 것이다. 선착순? 버스가 30~40분 정도 간격으로 계속 오가기 때문에 서서 기다리면 자기 차례가 온다고. 앞에 서면 빨리 간다고. 마드리드에서 톨레도 올 때 아침이라서 그런지 줄도 지금처럼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출발시간을 직원이 확인을 했었다.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를 갈 때는 예약시간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표만 있으면 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운전사한테 직접 돈을 내고 타기도 했으니. 선착순이 맞았다.
꽤 기다려 그 버스를 타려고 했더니 운전사가 막아선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예쁜 처자가 남은 좌석수를 확인하는 거라고 했다. 그 후 다시 예쁜 처자가 그랬다. 우리 둘은 갈 수 있다고. 좌석이 두 개 남았다고. 30분 정도 기다리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서 있으려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거였는데, 이건 여행자 사정이고. 그녀가 여자 운전사한테 유창하게 물어보니, 운전사도 유창하게(?) 스페인어로 답한 내용이다. 먼저 탄 그녀가 남은 앞 좌석을 양보했다. 자긴 거의 맨 끝 자리로 갔다. 내가 마음에 들었나? 하하. 톨레도는 마드리드 근교 도시라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는데, 평일 늦은 오후에 그녀는 왜 마드리드를 가는 걸까? 궁금하니 물어봤더니, 파트너를 만나 주말을 보내러 간다고. 파트너? 남자냐고 물어봤어야 했나? 하하.
버스를 타기 전 경찰 세 명이 승강장에 들어섰는데, 그들에게 개 한 마리도 있었다. 그중 남자 경찰 한 명이 이리저리 개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녀와 내가 웃고 말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디서 본 장면이었다. 론다 버스정류장에서였다. 그때는 대여섯 명의 경찰이 역시나 개 한 마리를 끌고 들이닥쳐 가방이 큰 승객들 짐을 개로 하여금 냄새를 맡게 했는데, 여기선 훈련이 덜된 개인 건지 훈련이 덜 된 경찰이라서 그런 건지 아리송했었다. 갑자기 나타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사라진 후 그녀에게 물었을 것이다. 소설을 왜 읽냐고 했더니, 자기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덕담이랍시고, 언젠가 한강처럼 노벨문학상을 기원한다고 했더니 깔깔대고 웃었다.
오늘 여행을 끝낸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만큼 볼 것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다른 도시 보다 이슬람 세력과 가톨릭 왕국 간의 관계가 더 복잡하다. 굵직한 이슬람 왕조 사이로 토후국들이 주연으로도 등장해서 가톨릭 왕국들과 대립하기도 하고. 안달루시아 지방까지 이슬람 세력이 밀려내려갔을 땐, 이미 레콩키스타가 절정에 이르렀던 때라서 역사가 더 단순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곳 톨레도는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고, 1085년에 카스티야 왕국에 의해 재정복 당한 후에 문화가 융성했던 건 이슬람과 유대교를 포용했기 때문이며, 스페인 내전 당시 이곳에서 공화파와 파시스트 간에 치열하게 싸웠다고 한다.
톨레도 버스 종점에서 내리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소코도베르 광장으로 간다. 그곳부터 사람들은 흩어져 각자도생(?)을 하는데, 난 전망대로 향했다. 한눈에 톨레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그 멋진 미~라도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느 정도 갔을 때 같이 탄 한국인 모녀가 버스에서 내리길래 따라 내리려다 옆에 탄 사람한테 물었었다. 미~라도르? 아니란다. 긴 말이 필요 없다. 그러니 내리지 않은 나와 내린 그들 사이에 요단강이 생겼다. 당황한 듯 뻘쭘하게 버스 밖에서 쳐다보던 그들 모녀와 아니라고 안에서 손짓하는 나! 잠시 후 도착해서 전망대를 혼자 전세 낸 듯 관광버스와 소코트렌을 타고 들락거리는 사람들 모습도 한참 지켜볼 수 있었다.
도시 주변을 타호강이 휘감고 흐르는 모습을 보니, 로마시대부터 왜 이곳을 탐냈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그렇게 고상한 척 앉아있는데, 모녀가 도착했다. 웃을 수도 없어 눈치를 살피니, 어디서 내렸냐고 모녀 중 엄마가 먼저 물었다. 어디긴 바로 여기라고 했더니,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걸어오는데 더웠다고. 그녀에게 같은 듯 다른 장소인 계곡 전망대를 알려준 후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 간 곳은 당연히 톨레도 대성당이었다. 스페인의 3대 고딕 성당 중에서 이렇게 파격적인 고딕 성당이 또 있을까 싶다. 그건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nte) 때문이다. 성당 천장에 어떻게 창을 낼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고딕 성당에. 그러니 옆으로 창을 냈겠지만. 마리아와 예수, 구약성서 속 인물들과 대천사 등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그곳을 빛이 비친다면 그 경외감이 어떨까 싶다. 나르시소 토메와 그의 네 아들이 만든 바르크 양식 제단. 두 개의 엄지손가락이 자동으로 올라갔다.
성물실 안에 있는 천장은 루카 조르다노가 그렸는데, 로마에 있는 로욜라 성당과 비슷한 감흥을 주었다. 성모님이 성 일데폰소 주교한테 제의를 주는 장면이라는데, 의미를 잘 모르지만 그림만은 대단했다. 두 성당 중 어느 것이 더 좋았냐고? 예술 작품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건 인간만이 하는 짓 같아서, 무엄하다! 그리고 역시나 빠질 수 없는 대성당의 성체현시대. 누군 이걸 톨레도 대성당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함 그 자체다. 말이 어렵지만, 미사 때 성체를 보관하는 현시대(monstrance)는 얼마나 무거우면 4명의 대천사들이 떠받치고 있어야 할까? 금은보석을 더해서 만든 높이 2.5m 무게 180kg. 너무 화려해 하느님이 성을 내실까 걱정된다.
톨레도 대성당의 또 다른 명물은 성가석이다. 의자? 신부님들이 모여 찬양을 하는 곳으로, 의자 하나하나에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장면을 새겨 넣은 발상도 기발하지만, 의자가 아름다워 어떻게든 앉아보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걸 눈치채시고 성가대 앞쪽 성모님이 웃고 계신다. 웃는 성모님이라고? 그러고 보니 성모가 웃는 성모상이 있던가? 모든 어머니들은 다 웃으실 것 같긴 하다. 험한 인생이란 고비를 넘으면서도 웃으시지 않던가! 또 다른 명물인 크리스토퍼 얘기도 해야 하는데, 내가 여행자이니 당연히 여행자의 수호성인 크리스토퍼를 유심히 볼 필요도 없이 벽에 아주 크게 그려놨다. 하나 더 엘 그레코. 그가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까지 보다 보면 성당을 짓는데 걸린 260여 년이 눈앞에서 후다닥 지나갔다.
엘 그레코 뜻이 그리스인이란 걸 보면 그는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데, 그가 스페인을 사랑했는지 스페인이 그를 사랑했는지 확신은 없지만. 엘 그레코가 그린 성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왜, 어떻게, 그가 남긴 의미가 뭔지를 알면서 보면 아주 당연히 세계 3대 성화 중 하나임을 틀림없이 인정하게 된다. 남들이 정한 기준이 뭔지 몰라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이미 봤고, 최후의 만찬을 보러 밀라노에 갈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이곳 산토 토메 성당이 눈앞에 있는데 이걸 보지 않을 순 없지 않을까? 쫄래쫄래 다가가 표를 사니, 매표원이 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아마, 혼자 오는 이들이 드물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곳도 사람들이 떼로 몰려오는 곳이다.
이미 그의 제단화인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을 본 상태라서 화풍이 별나구나, 정도가 내 수준이었다. 눈앞에 걸린 그림 딱 한 점. 이걸 보러 돈을 내고 들어오다니. 그럴만한, 맙소사였다. 아주 작은 성당이 그림 한 점만으로도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다른 무엇보다 천지창조처럼 천장에 그린 것이 아니라서 목이 아프지 않아 좋았다. 입구 바로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맘껏 그림을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미술 전문가들이 말한 내용을 가이드 삼아 하나하나 짚어보면, 역시나 하는. 내가 이걸 직접 보다니. 맙소사!
그렇게 톨레도와 즐겁게 데이트를 끝내는 줄 알았다.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갈 때 보니 올라올 때 그 길이 아니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니 내려갔더니 글쎄 멋진 비사그라 누에바 성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문이 잘생긴 건 밖으로 나가서 확인한 거고, 나야 성안에서 나가는 거라서 뒷모습을 먼저 봤지만. 성문 또한 하이브리드라고 한다. 로마와 이슬람과 카스티야 왕국이 서로 열심히 돌을 쌓아 만든 문. 그럼 몇 년 동안 만들었다는 건지? 몇백 년 된 문이 아직도 튼튼하게 굳세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이문은 톨레도 성의 북문이면서 정문이다. 그런데, 문에 새겨놓은 바로크 양식으된 펠리페 5세의 문장이 여긴 내 거야 하는 것 같다. 넘보지 말라는, 성문 파사트도 멋있다는 걸 알게 된 오늘 톨레도만큼은 정말 내 거가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