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고비아 vs. 레이나 소피아

by 길문

스페인 도시여행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트레킹을 위해 빌바오로 떠난다. 어제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돌아온 후 미련을 없애고자 그제 걸었던 길을 복기했다. 솔 광장부터 마요르 광장을 지나 마드리드 왕궁을 거친 후, 데보드 신전과 스페인 광장에 있는 세르반테스를 알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간이 늦어 데보드 신전은 외부에서 보고 해넘이와 그곳에서 왕궁과 대성당 방면으로 조망을 잠시 즐기던 중에 구름이 몰려오고 돌풍이 불었다.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버스킹을 하던 공간이 한순간에 난장(亂場)이 되었다. 그러니 여행을 마감한 나는 세르반테스를 뵈러 가는 건 당연히 언젠가로 연기했다. 나도 모르는 언젠가.

마요르 광장과 데보드 신전

어김없이 날이 밝았다. 오늘 갈 곳은 수도교와 알카사르로 유명한 세고비아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볼 것 없다는 마드리드라도 미술관에 관한 한 결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건 프라다, 레이나 소피아,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이 상당히 수준 높아서인데, 그중 레이나 소피아만 보기로 한 건 이유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보낼 일정이 충분하지 않아서였고, 그러니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게르니카 그 작품 하나로 그냥 결정했다. 여긴 꼭 간다. 더욱이 무료로 예약을 했다. 정말 찍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 달리, 미로와 같은 스페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다.

물을 나르는 다리?

어떻게 갈까 고민할 필요 없이 남들 따라가면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도교가 위용을 드러낸다. 도대체, 로마 때문에 먹고사는 후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게 로마가 이베리아반도에 미친 영향 또한 엄청난 것 같다. 1~2세기에 지어진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니 그랬겠지만 그 다리를 지금도 보다니. 목적은 오로지 물을 나르기 위한 것이고 1973년까지 사용되었다고. 167개의 아치라니 그걸 세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2만 400여 개의 화강암이라면 이걸 세어보는 사람이 있을까, 이건 누가 센 거지? 2층 아치형 구조로 전체 길이는 813m, 최고 높이는 20.10m로서 시내에서 17km 정도 떨어진 샘물을 끌어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다리, 단순 다리를 넘어 작품이니까 구도시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수도교. 어떻게 이렇게 다리를 맞췄을까?

광장에서 다리를 올려다보면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있다. 이것도 2000여 년 전에 모셨던 것일까? 그냥 가기가 섭섭해서 반대편으로 가보니 거기에 카피톨리노의 늑대가 있다. 로마의 건국신화하면 생각나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열심히 암늑대의 젖을 먹는 동상, 이것도 골동품인가 했더니 1984년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세고비아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그해가 다리를 만든 지 2000년이 되는 해라니. 그걸 본 후 남들처럼 전망대에 올랐다. 미~라도르 말이다. 전망대 이름이 포스티고라는 걸 모르고 갔지만, 역시나 주위 풍경과 다리가 한눈에 들어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있다. 그곳에서 다시 내려가지 않고 골목으로 빠져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세고비아 대성당과 만났다.

세고비아 대성당과 내부 모습.

어제 톨레도 대성당에서 받은 감흥 때문인지 성당 내부가 확 와닿지 않았다. 역시나 맛있는 거나 멋진 거나 먼저 먹거나 보면 안 되는데 말이다. 입장료가 싸다는 건 그만큼 성당 안에 역사적인 유물이 적다는 걸 의미하지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이런 걸 신경이나 쓸까?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으니. 그렇다고 성당이 주는 가치가 여기서 끝일까? 아니었다. 이 성당 또한 고딕 성당이며, 대성당의 귀부인으로 불린다는 건 알고 갔지만 그걸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성당 외관이 여성스럽다. 보통 고딕 양식하면 강인하고 남성적인 의미가 강한데, 이 성당은 전혀 아니었다. 성당 밖 광장에서 이리저리 살펴봐도 성당이 이슬람 양식과 섞여서 그런 건지 우아하다.

성모 마리아께서 어지럽다고 하실 것 같다. 카피톨리노의 늑대.

다음 간 곳은 당연히 알카사르이다. 아주 오래전에 로마가 요새로 사용하던 곳을 이슬람 세력이 역시 요새로 사용한 그곳에 카스티야 왕국이 재정복 하면서 궁성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그러다 수도를 이전한 후 감옥으로 사용하고 나중에는 왕실 포병학교로 사용한 곳이라는데, 통상의 알카사르와 다르게 고색창연하지 않다. 그건 알폰소 8세 시절에 성을 헐고 다시 지어 이슬람 색채가 없어졌으며, 1800년대에 큰 화재로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러서 그런 것인데, 이렇게 이슬람 색채가 빠지게 됨으로써 백설공주 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월트디즈니가 백설 공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만들면서 이 성을 참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건물 안 천정 등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 이슬람 양식을 찾아볼 수 없다.

전쟁을 하기에는 아까운 성!

그런데 역시나 내겐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당연히 고지대에서 내려보니 시원시원하지만, 카스티야 지방이 워낙 메마르고 건조한 지역인데 유독 세고비아가 과다라마 산맥에 가까이 있어 숲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건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고. 그냥 내려다보는 경치가 론다에서 봤던 안달루시아 지방만큼은 아니지만 좋았다. 뭐든 내려다보는 것 좋지 않던가. 그러니 기어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는 거겠지? 산이던 출세를 위해서든...... 낮은 곳으로 임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오다 성 앞 광장에 있는 조형물을 다시 보러 갔다.

고지대에서 내려보는 풍경이 시원하다.
도스 데 마요를 상징하는 동상과 알카사르 원경.

다오이즈와 벨라르데라는 이름의 기념비. 1808년 5월 2일 프랑스 군대에 대항해서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봉기에 포병장교들이 참여를 한다. 그건 스페인 독립운동의 서막인 건 좋은데, 그다음 날 5월 3일 마드리드에서 프랑스 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한다. 이걸 계기로 시민들과 군대까지 똘똘 뭉쳐 저항전투를 벌였다고. 이런 내용을 1814년에 그린 것이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이다. 프랑스는 1813년 퇴각을 하고. 이 그림은 프라다 미술관에 걸려있는데, 거길 갔으면 틀림없이 봤을 그림이다. 스페인에서 도스 데 마요(Dos de Mayo, 5월 2일)는 우리의 3월 1일에 해당된다고 할까? 네이버에서 이걸 검색하면 세비야에서 유명한 소꼬리찜을 파는 맛집이 주로 나온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 출처: 구글

알카사르가 고지대에 위치하다 보니 마드리드로 돌아가기 위해서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갔다. 혹여나 보지 못한 것 있나 보면서 그렇게 버스 타고 도착한 곳은 기대하고 기대하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예약 날짜가 다가오면 친절하게 메일이 오고, 보고 나면 나중에 잘 봤냐는 메일을 보내주는 미술관. 정성스러운 미술관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곳을 정문에서 바라보면 4층 건물에 돌출형 엘리베이터 두 대가 불쑥 튀어 난 형태이다. 이곳으로는 예약하지 않고 현장 대기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고, 예약한 입장객들은 반대편 한층 아래 난 미술관이야라고 도드라지게 외치는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건물이 독특한 건 병원을 개조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입구 모습. 계단에서 맨발로 색소폰을 부는 여성.

데보드 신전에서 바라본 왕궁과 알무데나 성당이 전망으로 좋다면, 마드리드 3대 미술관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이곳은 아토차역과 왕립식물원, 정부기관, 국립 인류학 박물관, 왕립 천문대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에 레트로 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어서 좋다. 그저 여행자 눈으로 일견 하면 지금까지 가본 다른 도시보다 마드리드가 매력적이었는데, 그건 미술관 앞 계단에서 맨발로 색소폰을 멋지게 불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가 틀림없이 한몫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다 보니 입장시간이 되었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거의 모든 사람이 2층으로 몰려드는 느낌이다. 그라운드층을 감안하면 3층인 그곳에 피카소, 달리, 앙헬레스 산토스, 마리아 블랑샤르, 호안 미로 등의 작품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앙헬레스 산토스와 마리아 블랑샤르.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피카소가 그린 게르니카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는. 1937년 4월 26일 프랑코 파시스트 편에 섰던 독일이 바스크 지방의 교통 요충지 게르니카를 폭격해서 민간인 사상자 2천여 명을 낳은 만행을 고발한 작품. 시대의 바람둥이가 이런 작품이라도 그려야 후대에 평판이 좋을지 예견을 했겠지? 시간차 때문인가 보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그 작품 앞으로 서둘러 가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게 웬 떡일까? 열심히 사진을 찍고 한숨을 돌리니 그때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마, 예약을 하지 않은 관람객들을 그때 들여보낸 것 같았다.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작품들을 보고 나서 다시 가보니 역시 그 앞이 인산인해였다. 호사를 제대로 누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도슨트로부터 뭔가를 열심히 듣는 사람들. 게르니카 앞은 항상 이렇다고 한다.

게르니카만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꽤 진지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어떤 작품은 도슨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뭔가를 설명하는데,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꼽사리를 끼련만. 이곳에 있는 작품들을 보고 또 보고 그림을 보러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또 보니 엉뚱하게도 오가는 사람들이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이들이 없다면. 아마, 대가들의 작품에 취한 것이 틀림없다. 술에 취한 것보다 얼마나 좋던가.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고.


그럼, 이 많은 작품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게르니카 빼고 뭐가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앙헬레스 산토스가 그린 하나의 세계(Un Mundo)라는 작품이 뭔지 모르게 확 끌렸다. 초현실주의 작가라고 하던데. 마치 미래를 그린 것 같다. 다른 하나는 마리아 블랑샤르였다. 큐비즘이라?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고, 그렇게 본 여러 시점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화법'이란 걸 몰랐어도, 불행한 그녀의 삶이 여러 면으로 드러난 것 같아 감정이입이 된 것일까? 슬픔과 운명은 누구에게나 오고 겪지만, 예술가는 그걸 작품으로 승화시킨다고 말하려니 진부하다. 진부해!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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