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보잡이 칸가스 데 오니스라고?

by 길문

듣보잡은? 칸가스 데 오니스이다. 뭔 멍멍? 711년 과달레테 전투에서 이슬람 세력이 서고트 왕국을 무너트렸다. 이후 10년도 되지 않아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집어삼킬 뻔했다. 722년 코바동가에서 이슬람 세력이 처음 패배를 맛본 후 이베리아반도에서 물러나기까지 700여 년이 걸렸다. 아프리카를 건너온 이슬람 세력이 워낙 강력했던 것인지, 이베리아반도에 살던 사람들이 물러터져서 힘들게 물리친 건지 그 시발점에 듣보잡이 있었다. 여기까진 이전 여행기에서 떠들어댄 얘기다. 누구든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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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에 도착하니 다들 저렇게 잠을 자고 있었다. 저들은 도대체 얼마나 기다린 걸까?

펠라요라는 듣보잡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을 단순히 선전선동으로 뭉치게 했을까? 거긴 가혹한 지즈야(세금)가 있었다. 이슬람 세력과 싸울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을 설득시킨 건 역시나 이슬람 세력이 아주 심하게 통치했기 때문이다. 개종을 하건 안 하건 지즈야로 억압하니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산악지역의 이점을 활용해서 펠라요가 코바동가 전투에서 승리를 한 것이다. 펠라요라는 나비가 결국 레콩키스타라는 태풍으로 이베리아 전역을 휩쓸어 버린 것이다. 아주 천천히. 태풍인데 천천히? 그리고 그곳에 남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란 국가. 그 듣보잡이 봉기를 일으킨 후 만든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바로 칸가스 데 오니스, 오니스의 계곡이란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니 듣보잡이 펠라요 = 칸가스 데 오니스라는 말씀.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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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떠난 마드리드 공항.

그 왕국은 나중에 후손들이 수도를 오비에도로 옮기고 다시 레온으로 옮기면서 레온 왕국으로 발전했다. 스페인 4개 왕국 중 하나. 이곳에 가려면 마드리드에서 빌바오까지 먼저 쓩~하고 날아가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다. 멀기도 하고. 그러니 혹시나 비행기를 놓칠까 봐 아침밥도 먹지 않고 공항에 도착했거늘, 그런데 게이트 앞에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보이긴 보여도 다들 공항에서 자빠져 자고 있었다. 아침의 나라에서 온 양반을 몰라봐도 유분수라 화가 났지만, 살면서 지금까지 성질 한번 안 낸 것처럼 살아온 듯 살아온 이를 무시한다고 화를 낼 수 없으니. 시간이 가도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 통해야 E72 게이트 앞에 가서 따져보기라도 하지. 분명히 비행기가 게이트 코앞에 왔긴 왔는데, 기체를 탑승교에 연결하지 않는 저의가 뭘까? 트레킹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 역시나 음모론이 잘 먹힌다.

20250921_130602.jpg 빌바오 공항에 착륙하기 전 모습. 숲이다!

내 앞 의자에 앉던 부부는 천하태평인데, 난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왓츠앱(WhatsApp)에선 벌써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는 문자 말이다. 영어도 딸리니 빨리 타이핑을 할 수 없고, 스페인어는 꽝이라서 게이트 앞에 가서 뭔 일이냐고 묻지도 못하겠고. 탑승 예정 시간을 한 시간이나 훌쩍 넘겼다. 그러다 기내에 들어갔는데, 어어 하다 보니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금방 날아간 시간에 비하면 속탄 가슴은 누가 알아줄까. 그렇게 도착해서 앱을 켜니 현지 가이드가 잔뜩 너 어디 있냐고 여러 번 물었었다. 바보 아냐? 어디긴 어디, 비행기 안에 있었지. 이런 오해가 벌어진 건 키가 크고 날씬한 크리스(일행 중에 두 명의 크리스가 있었다)가 나보다 먼저 마드리드에서 떠났는데, 그걸 나나 가이드나 마드리드 공항에 같이 있던 것으로 착각을 한 거다. 그 크리스는 빌바오에 도착했었으니. 가이드는 내가 그 크리스와 같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도착을 하지 않았으니 그리 질문한 거였다. 같은 공항은 맞는데 같은 비행기는 아니었다.

20250921_162242.jpg 첫날 머문 숙소.

암튼, 나만 제일 늦었다. 다행히 12:40분경에 도착해 처음 약속 시간 오후 1시에 늦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현지 가이드가 조정한 약속 시간은 12:30분이라서 늦은 건 맞긴 맞는데, 공항에서 애타게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아주 늦지 않게 도착한 것도 희한했다. 기장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너 가속페달 밟았지라고. 암튼, 늦다 보니 앱에선 벌써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한 것을 다 알아버렸다. 그 멀대같이 키가 큰 가이드가 안내해서 따라갔더니 밴(van)이 있었다. 차 안엔 나 빼고 여섯 명이 문이 열리자 일제히 나를 쏘아봤냐고? 그들 눈빛은 다행히 무시나 차별은 아닌 그렇다고 호기심도 아닌 것 같은. 어떻든 인사를 하긴 해야 해서 했더니,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 없이 I am Hungry였다. 배가 많이 고팠었다.

20250921_170426.jpg 칸가스 데 오니스 상징. 로마교.

마드리드에서 빌바오로 가면서 내려다본 스페인 북부 지역 풍경이 달랐다. 지금까진 저 멀리 언덕인가? 싶은 곳에 풍력발전기가 돌거나 올리브나무인 듯한 나무들이 주로 보이거나 나머진 그냥 갈색의 황량한 땅이었는데, 어라 그렇다고 열대우림일까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고. 나중에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내가 주로 오간 도시들 주변 색깔과 달랐다. 이건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타고 오니스 방면으로 가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거였다. 녹색 숲을 왼편에 끼고 달리는데 오른편으로 간간이 바다가 보였다. 바다? 북대서양 말이다. 경치가 아름답다. 사진을 찍어둘걸. 가다가 중간에 타파스 바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고 공항부터 3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이 바로 칸가스 데 오니스였다.

20250921_170622.jpg 이 정도는 돼야 강이라고? 세야 강.

저녁 시간까지 자유 시간이라서 시내 구경을 나섰다. 그러니 간 곳이 세야(Sella) 강이었다. 시냇물 같은 그라나다 다로 강보다는 훨씬 강 같은 강. 그 강 위에 걸터앉은 로마교(puente romano)를 보러 간 것이다. 아주 오래전 로마 시대 때부터 있던 다리. 이건 명불허전이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볼 수밖에 없고, 봐야만 하는 다리.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빌바오 공항에서 이곳에 올 때 계속 비가 오다 말다 했었다. 바르셀로나 여행 중에도 비가 자주 왔으니, 그러려니 했으나 아니었다. 여긴 기후가 달랐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온이 밤에 영상 2~3도로 내려간 건 나중에 알게 된 것이고, 여긴 안달루시아 지방이 아니었으니, 먼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오래전에 설악산 대청봉에 비를 홀딱 맞고 올라갔다 내려올 때 몸이 겪었던 체온의 변화. 뇌는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돌아와 침대에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누워 체온을 올린 뒤에야 별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던 날이었다.

20250921_193919.jpg 브리핑에 참여한 일행들. 표정이 아주 진지하다.

그 후 이틀 정도 날씨가 좋지 않다 보니 계속 심난했었다. 아침에 숙소에서 떠날 때 얇은 여름옷을 두 벌씩 입고 겉에 방수 바람막이를 걸치고, 걷는 내내 떠나는 체온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 건 나만 아는, 그걸 누구한테 말해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설령 옷을 빌려줄 리가 있다고 해도 키 큰 남자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작았으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내색하진 못한 건 아니고. 대신 그들 가방은 나보다 훨씬 무거워 보였다. 나야 여행 기간이 길어 애초에 가져갈까 말까 망설인 물품들은 모조리 가져오지 않은 덕이라서. 가벼운 배낭이 여행 내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자부심으로 다녔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 할까 싶었다. 플리스 재킷 하나 가져올 걸이란 얘기는 처음 여행기를 시작할 때 얘기했으니, 패스. 그럼 그날 저녁에 뭐 했냐고?

20250921_203846.jpg 저녁 식사 모습. 보고 싶다. 친구야!

저녁 시간 전에 잠시 전체 트레킹에 대한 브리핑을 가이드들이 진행할 때 난 그냥 멀뚱멀뚱 고개만 끄덕였다.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산악 대장 카를로스의 영어는 내 수준이라서 영어를 못하는 스페인 사람의 발음을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그 자리에 모인 트레킹 멤버들 모두 영어가 모국어니까 훨씬 유창한 발음이라서 역시나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게 싫어 뻔뻔하게 난 다 알아듣는 척했다. 정말, 다행인 건 그들이 내게 되묻지 않았다는. 휴~~. 되묻는 그 말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 같긴 하지만.

20250921_214838.jpg 로마교 야경.

생각해 보니 그들은 모두 영국에서 온 이들이라고 그날은 그렇게 믿었다. 그 영화 있잖은가? 〈킹스맨〉. 거기에 나오는 대화 manners make the man처럼 그들은 매너를 지켰으니 다들 젠틀해 보였다. 아니, 젠틀했다. 트레킹 내내. 특히, 날씬한 크리스 말꼬 뚱뚱한 크리스가 처음 다 같이 저녁을 먹을 때 내 옆에 앉아 정말 친절히 알아듣게 천천히 영어로 묻고 들어줘서 고마웠다. 생각해 보라. 16명이 식탁에 앉았는데, 나 혼잣말 없이 밥 먹는 그 어색함. 그걸 밥 먹는 내내 깨준 뚱뚱한 크리스. 보고 싶다, 친구야! 하려니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암튼, 트레킹을 끝내고 빌바오 공항에서 서로 헤어날 때 그는 런던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날, 그와 나눈 뜨거운 허깅. 그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백허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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