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가는 날이다. 조금 싼 기차표를 예약했더니 오전 시간이 붕 뜬다. 조금 비싼 기차표는 더 자주 있었다. 세비야 산타 후스타 역에서 전광판을 보고 알았다. 뭘 할까? 어제 정했다. 인디아스 고문서관 가보기. 그라나다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에 있는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알현하는 동상은 산타페 협약을 맺는 걸 나타낸 건데 그 문서도 있는 곳.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새로운 땅을 발견하면 자기들 맘대로 소유를 정했던 르데시야스 조약서뿐만 아니라 대항해시대에 필수적인 지도들 8천여 점도 보관된 곳 등등. 가서 봐도 그걸 일일이 확인할 수 있었겠는가? 스페인어를 모르니.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옛날 큰소리 땅땅 칠만 할 정도로 시설도 그렇고 규모도 컸다. 세계문화유산 별거 아니었다고?
산타 후스타 역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시간대별로 사람들을 플랫폼으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마드리드에 왔다. 역시나 갈색 평야를 보다 지겨울만하니 마드리드 아토차 기차역에 도착했다. 역시나 스페인 수도다웠다. 로마 테르미니 역 정도였을까? 산타 후스타 역이 양반이다. 양반? 누가 이런 비교를 할까? 덜 번잡하면 양반이라니. 들을 상놈들 열받지 않을까? 아토차 기차역이 열받았겠다. 정신을 수습한 후 어디로 갈까 확신이 서지 않으면 무조건 질문이다. 이거 거기 가냐고? 그럼 간다고 한다. 대충 말하고 대충 알아듣고. 이러니 사는 거다. 대충~.
마드리드 시내 또한 걸을만하다. 지도를 보면 서로 짜고 모의해서 모여있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이 더 많아 보였나? 역시 여행자를 위한 배려다. 교통카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도시보다 교통 패스를 이용하면 교통 요금이 싸다. 단, 환승이 되지 않지만 마드리드 시내에서 뽕을 뽑았다. 이 말은 열심히 체력을 비축했다는 말이다. 걸어도 되는 걸 메트로를 타고 다녔으니, 정말 기특하다. 기특해!
누가 잘난 지 마주 보고 자랑하는 듯한 알무데나 성당과 마드리드 왕궁 앞은 워낙 공간이 넓어 사람이 많은지 적은 지 구분이 어렵다. 마드리드 왕궁에서 데보드 신전까지도 공원인지 정원인지 어우러져 있어 밀도로 보면 사람들이 적어 보이지만, 그곳에서 마요르 거리(C. Mayor)로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인산인해다. 좀 과장한 건데, 지금까지 거쳐왔던 도시들에 비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오늘 그랬는데, 내일도 가보니 그랬다. 그 거리가 우리로 치면 명동거리라고 할만할까? 마요르 거리를 걷다 보면 산 미겔 시장과 마요르 광장과 솔 광장까지 이어져서 그런 것 같다. 볼 것 없다고 논란이 있는 마드리드에 오니 정신이 없다. 수도라서 그런 걸까?
마드리드 왕궁을 보러 갔다. 내일은 톨레도 갈 거고, 모레는 세고비아 갔다 올 예정이라 낮에 시간을 빼기 어려웠다. 그래 갔더니 들어가지 못했다. 입구 앞에서 관계자가 끝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다 건물 안에서 나오는 것 같다. 저녁시간에 무료입장도 된다고 했다던데, 아닌가? 무료 건 유료 건 폐장시간이 늦어야 가능한 건데, 아닌가 보다. 왕궁 밖 철문 펜스부터 들어가지 못했으니. 그러니 꿩 대신 닭 말고 다른 꿩이 있었다. 이래서 플랜 B는 중요하다. 그냥 가긴 뭐해서 왕궁 주변을 서성이면서 어디가 해넘이 명당자리인지 정도 파악한 후 돌아섰다. 왕궁 맞은편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정문이 닫혀있었다. 뭔 일? 여기도 끝났을까? 의심에 의심을 품고 왼편으로 빙 돌아가니 거기 입구가 있었다.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
1561년 스페인이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겼을 때, 마드리드에는 대성당이 없었다고. 그러니 16세기부터 짓자고 했는데, 그땐 대항해시대라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1879년 본격적으로 짓자고 해서 어디다 지을지 결정한 곳이 중세 때부터 이슬람 모스크가 있던 자리였다고. 그럼 이름은 왜 알무데나 성당이냐고? 이슬람 세력이 마드리드를 침략했을 때 성모상을 숨겨둔 성벽을 아랍어로 알무데나라고 했다니. 이런 성당 역사보다 성당 내부가 독특하다. 성당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 다르다. 성당을 짓다가 내전이 일어나서 쉬었다가 다시 지으려니 시간은 어느덧 1950년대를 지나고 있었다. 그러니 내부 양식이 달라졌을 테고. 네오고딕 양식에서 팝아트 데코 양식까지 섞인 거라는데, 어디까지가 그렇다는 건지. 모르니 패스!
성당에서 나와 마요르 거리를 찾아 헤매다, 역시나 묻고 물어서 가보니, 무슨 부티크처럼 철과 전면 유리로 된 곳에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다. 와우! 시장이 이렇게 세련되었다고? 그럼 그렇지. 1916년부터 있던 시장이 이렇게 모던할 수가 있나 했더니, 2009년에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놀랄 놀 자다. 연도로 보면 전통시장이 맞는데,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시장 중에서 최고다 최고. 이런 멋진 시장이 또 있었나? 이건 전통시장이 아니라 현대 시장이다. 광장 시장과 비교 한번 해볼까? 시장 안에서 파는 물건들이 대부분 먹거리들이라서 먹고 마시고, 여기저기서 먹고 마시고. 안에 상점이 30개 정도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럼 규모가 큰 건 아니지만 시장 안과 밖이 남다르다. 남달라! 시장 이름은 산 미겔.
마요르 광장은 사방이 뻥 뚫린 곳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사각형의 붉은색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가우디의 가로등으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레이알 광장과 비슷하다. 이번만 그럴까만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까치발을 들어도 볼 수가 없다. 광장 중앙에서 무슨 공연을 하나 보다. 도대체 누가 왔던 것일까? 궁금해서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왔더니 아예 광장 안으로 발을 들이밀지도 못했다. 입구부터 막아놨기 때문이다. 그저 유명가수가 와서 공연했구나 정도. 이 광장은 1619년에 가로 90m, 세로 109m로 만들어졌으며, 특별한 날엔 투우라든가 공개처형이라던가 왕가의 결혼식 같은 이벤트에 활용되었다고. 그럼 평상시에는 광장 건물 안이 카페와 상점으로 들어차있으니 시장이었겠다.
배를 채웠으니, 급할게 없어졌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사람에 휩쓸려 걸어가니 솔 광장이 나왔다. 태양의 문으로 번역되는 광장. 16세기까지 태양이 그려진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이 내가 알고 있는 광장이다. 사통팔달이다. 여기저기 도로가 뻥뻥 뚫려있고, 메트로 입구가 여기저기 보이니 교통의 중심지이다. 이곳에서 전국으로 퍼지는 국도의 출발지라고 하니, 그걸 상징하는 것이 Km.O 발판이다. 이곳엔 확실히 사람이 많다 많아. 그러니 이곳에서 시위도 벌이고. 하기야, 남이 봐야 시위도 하는 거다. 정치 시위도 자주 벌어지는 곳이라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분위기가 심각했던 것 같은데 제대로 알 수가 있어야지!
그건 그렇고 광장이 아니랄까 봐 누가 말을 타고 있다. 스페인이 기마의 민족인가? 말을 탄 이는 카를로스 3세라는데, 그이보다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으니. 곰이다. 곰. 곰꼬리가 맨질맨질하는 것 보니 뭔가 이야기가 있나 보다. 꼬리를 만지면 마드리드에 돌아온다던가. 아니면, 곰이 웅녀가 된다던가. 그걸 만지려는 사람들로 인해 줄이 꽤 길다. 꼬리 한번 쓰담쓰담하려고 말이다. 이걸 만든 이유야 당연히 관광목적이겠지만, 거긴 사연이 있다고 한다. 원래 마드리드에 곰이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산딸기나무(마드로뇨)까지 동상으로 만든 건, 이것이 마드리드의 문장이라고 한다. 문장(紋章).
그런데 50 ANOS EN SOL은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