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이건 몰라서 그런 거였다. 여행을 계획할 때 전체 일정과 그에 맞는 숙소와 볼거리와 먹거리를 계획하는 정도가 전부일 것 같다. 그 선이었다. 그나마 큰 사고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건만, 놀다 온 걸 감추기에는 아는 지식이 역시나 부족하다. 그것도 여행에 대해 쓰다 보니 알게 된 거다. 여행을 코르도바 - 세비야 - 그라나다 순으로 했다면 스페인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나마 쉽게 이해했을 텐데, 짧은 지식으로 여행한 걸 쓰다 보니 정리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이베리아반도를 먼저 지배한 건 로마였다. 그 후 서고트 왕국이 차지를 했다가 711년 스페인 카디스에서 벌어진 과달레테 전투에서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서고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후 파죽지세로 북상한다. 결국 왕국의 수도 톨레도를 함락시키고, 714년이 되면 그들은 이베리아반도 중 북부 산악지역을 빼고 대부분을 점령한다. 그러다 722년 코바동가에서 서고트인들에게 일격을 당하는데, 아스투리아스라고 불리는 지역은 험한 산맥이라 쉽게 정복하지 못했다. 그곳 아스투리아스 칸카스 데 오니스가 레콩키스타가 발화된 곳으로, 피코스 데 에우로파 트레킹은 그곳에서 시작한다.
우마이야 왕조가 750년에 망한 후 후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섰다. 그들이 코르도바 아미르국, 코르도바 칼리프국으로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하다 그 후 베르베르족을 중심으로 했던 무라비트 왕조에게 그 왕조도 무너진다. 그렇게 들어선 무라비트 왕조 또한 레온-카스티야와 포르투갈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1147년 역사에서 없어진다. 그 후 그 자리를 대체한 건 아프리카에서 패권을 다투던 무와히드 왕조였다. 그 후 100여 년 정도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통치를 이어가다 이들도 1236년 코르도바가 함락되면서 사라진다. 1248년에는 세비야가 무너지고, 공국 형태로 버티던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국도 1492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아주 긴 700여 년의 이슬람 지배의 역사를 이렇게 정리했다. 끝!
이렇게라도 이해를 해야 했다. 다음 행선지가 코르도바였으니까. 그라나다와 세비야 보다 당시에 더 중요했던 도시. 지금은 코르도바 주의 주도로 평범해 보이는 도시가 8세기에서 11세기까지 후 우마이야 왕조의 수도였다. 중세 시대 초기에 서유럽 최대의 도시였으며, 안달루시아 지방의 문화적 중심지였다. 9세기에서 10세기 경엔 인구가 50만이 넘는 대도시였다는데, 그때 50만이 많은 숫자였는지 아닌지 감이 없어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는 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건 잘 몰랐던 일이지만, 메스키타가 코르도바에 있으니 그건 바로 확인할 수 있어 갔다.
코르도바 시내에 메스키타가 없으니 그곳에 어떻게 갈지 잠시 망설였다. 걸어갈까? 더웠다. 덥지 않으면 걸어갈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시간이 애매했다. 점심시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랬는데, 당연히 배고픈 게 먼저였으니 버스를 탔다. 빨리 내려 밥 먹을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 메스키타 주변에 로마시대에 지은 다리와 다리 입구에 서있는 요새 칼라오라 탑을 포함해서, 아름다운 유태인 골목과 그중에서도 가장 예쁜 꽃의 골목까지 몰려 있다. 약간 떨어져 있지만 알카사르도 갈 수 있고. 그라나다와 세비야 보다 훨씬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볼거리가 더 몰려있어서 좋았다. 여행자에겐 이런 장소가 최고다.
빨리빨리!
버스가 왔지만 걸어갈까 말까 망설인 덕분에 제일 늦게 탔다. 외지인은 카드가 되지 않는 건 알고 있어서 현금을 낼 생각이었다. 현금을 주며 혹시나 잘못 탔을까 하고 지도를 보여줬다. 메스키타란 말은 알아들었는지 뭐라고 하는데, 역시나 돌아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여행 다니면 이런 게 애로 사항이다. 내가 할 말은 어떻게든 해도. 운전사와 대화를 나누고 돈을 주고 잔돈을 받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뭐든 빨리빨리에 익숙해서 모든 과정이 더디 느껴졌다. 놀랍게도 운전사는 돈을 건네주기까지 서두르지 않았는데, 느긋함이 몸에 익숙한 듯 보였다.
더운 지방 사람들이 느긋하다는 통념이 맞을까? 여행 중 시내버스를 자주 타다 보니 유심히 지켜본 결과이다. 운전사나 손님이나 남녀노소 모두. 유모차들은 뒷문으로 타는데, 유모차가 오면 모두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어느 날 운전사가 뒷문 쪽으로 오더니 버스 바닥에서 뭔가를 들어 올려 문밖으로 펼친다. 차와 인도 사이에 정말 완만한 경사로가 만들어졌다. 뭐지? 잠시 후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에 탔다.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은 거야 당연하지만, 운전사도 그렇고 휠체어를 탄 남자도 그렇고 서로 서두르지 않아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운전사는 당연한 듯 자리로 다시 돌아가 운전을 했다. 여자 운전수였다. 그날, 코르도바 버스 정류장에서 세비야로 돌아올 때 우연히 한국청년 두 명과 만났다. 그러다 나눈 대화 중 내가 왜 이렇게 여행 중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었다.
코르도바에는 세비야 산타크루스의 유대인 지구처럼 유대인 거리가 있다. 메스키다 북쪽 작은 골목길로 이뤄진 그 골목은 개인적으로 보면 세비야의 유대인 지구보다 더 아기자기하다. 특히 그 구역 안에 있는 꽃의 거리를 보면 어떻게 골목길이 예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되는데, 여기도 세비야의 유대인 지구처럼 거리 주인공 유대인은 없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레콩키스타가 성공함으로써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개종을 당하거나 종국에 쫓겨나갈 수밖에 없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처음엔 약간의 불이익만 받다가 반유대인 봉기가 일어난 후 개종 등등의 탄압을 받은 후 코르도바에서도 밀려났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믿지 않지만, 꽃이 아름다운지는 사람만이 알 것 같다.
후 우마이야 왕조가 코르도바를 지배하는 동안 관용정책을 폈다고 한다. 유대교, 이슬람교, 가톨릭교도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했다고.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해 나가면서 그랬다고 하는데, 남의 땅을 침략하는 거라서 고도의 통치 전략일 수 있지만, 그랬기 때문인지 코르도바가 당시 '서유럽 학문의 수도'로 불렸다고. 다양한 종교, 학문과 예술, 철학이 서로 교류를 하고 발전하면서 점령자들의 수도로서 써만 기능하지 않았던 유산도 1236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한쪽에선 레콩키스타의 완성이 통합된 스페인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지만, 유대인에겐 혹독한 시련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다니.
코르도바 메스키타 Mezquita de Córdoba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물을 파괴했다!" 카를로스 5세가 했다는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메스키타라는 멋진 이슬람 사원의 가치를 가톨릭 성당이 훼손했다고 이해를 하면 정말 큰 오해이다. 메스키타 전에 이미 서고트족이 성당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성당과 사원으로 사용하던 그곳에 785년 알 라흐만 1세가 부지를 매입해서 성당을 허물고 모스크로 바꾼 후 2백여 년에 걸쳐 남북 180m, 동서 130m로 동시에 2만 5천 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거대한 모스크로 증축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스크를 짓는 동안 997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서 바실리카 문과 종들을 가져와 장식을 했다는, 지금 있는 856개의 원주들이 이슬람 양식이 아니라 이미 서고트족이 로마 건축양식을 응용해서 말발굽형 이중 아치를 도입했던 것이라는, 기둥머리를 보면 이오니아, 도리아, 코린트 등으로 통일감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기둥의 석재도 대리석, 화강암 등 들쑥날쑥 한 건 주변에 있던 그리스 양식의 건물에서 기둥을 뽑아 재활용한 것이라는, 15세기에 모스크 중앙에 성당을 만들면서 1200개였던 원주들 중 일부를 없애 지금의 메스키타가 되었다면. 이걸 슬퍼해야 할까?
현재 메스키타는 이슬람 모스크가 아니다. 스페인어로 사원을 뜻하는 이곳의 정식 명칭은 코르도바의 산타마리아 성당이다. 밖에서 보면 모스크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엄연히 가톨릭 성당이다. 이곳에서 미사가 열린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 성당이 지금 모스크로 개조되어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는 것처럼, 이곳은 그와 정반대라는 면만 다르지만, 여행자에겐 이런 것이 중요할까?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독특함, 유니크!! 한 장소에서 한 공간에서 그리스, 로마, 이슬람, 스페인 가톨릭 문화가 뒤섞인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이건 정말 독보적이다.
메스키타에서 나와 좀 걸어가면 나오는 알카사르가 나오는데, 내가 가는 줄 알고(?) 문을 닫아놓았다. 정원이라도 보려니 그 또한 닫혀있는 것 같았다.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이랬기에 메스키타 종탑에 오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계획은 알카사르에도 종탑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 코르도바를 발밑에 두고 싶었던 것인데, 구글맵에 영업하지 않는다고 뜬 걸 못 본 것이다. 알카사르는 1328년 알폰소 11세가 지은 것인데, 건물을 지으면서 무데하르 양식으로 만들라고 했다고. 세비야 알카사르처럼 이슬람 요새에 왕궁을 엎은 것이 아니라서 위로가 되었을까?
메스키타를 돌아보면 입구 쪽 벽면이 아름답다. 그걸 보다 걸으면 로마 다리 앞 승리의 광장에 이른다. 그 옆에 멋진 성 라파엘의 승리의 탑이 있고, 앞쪽에 로마교로 가는 다리 입구가 있다. 로마 다리는 기원전 1세기에 세워진 것이라는데, 기원전이란 시간대가 이해가 안 된다. 그냥 아주아주 오래된 다리? 그런데 아직도 다리로 기능한다. 걷다 보면 중간에 성 라파엘 대천사 동상이 나오는데, 다리 입구 쪽에도 성 라파엘의 승리의 탑도 있는 걸 생각해 보면, 성 라파엘이 코르도바의 수호천사여서 그런 것이다. 로마 다리 끝에 칼라오라 탑이 있다. 방어를 위한 요새였다는 그 탑.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세비야로 돌아가는데, 미련이란 놈이 시비를 건다. 해넘이 이곳에서 보지 못했다고. 세비야 해넘이 장소 중에서 과달키비르 강이 최고였는데, 이곳도 틀림없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