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55 게이트

그라나다로 이끈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by 길문

나는 타레가를 몰랐던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를 알았더라면 오늘날의 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 안드레스 세고비아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árrega). 나를 그라나다로 이끈 사람이다. 마치, 아는 사람처럼 말하지만 그는 세상에 없다. 그가 남긴 300개의 곡 중에서 오직 한 곡만 제대로 안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 언젠가 이곡을 들었을 때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라나다 말이다. 음악만으로 누군가 그곳에 가보게 싶게 만든 이 곡은 낮에 들으나 밤에 들으나, 기분이 꿀꿀할 때 들으나 즐거울 때 들으나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만든다. 왜 그럴까?

나를 그라나다로 이끌 B55 게이트. 칵핏(cockpit)을 열어두나?

처음 곡을 들었을 때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조가 이슬람 나스르 왕조였다는 것도, 이들을 물리친 이들이 가톨릭 카스티야 왕국이라는 것도, 한쪽에선 치욕과 회한으로 남는 패배가 누군가에겐 레콩키스타(Reconquista)로, 이베리아반도를 회복함으로써 칭송과 찬양을 받는 일이란 것도, 더해서 타레가가 어릴 때 맡겨진 이웃집에서 밤에 오줌을 자주 싸 그를 수로에 버렸는데, 그로 인해 세균감염으로 시력이 손상되었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었다. 그저 음악이 좋았고, 언젠가 갔으면 했던 그곳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이목을 끈 차광막.

스마트폰 안에 티켓이 두 종류가 있었다. QR코드와 바코드. 바코드는 항공사에서 직접 표를 살 때 이메일로 날아왔던 것이고, QR은 홈페이지에서 체크인을 하고 다운로드한 거였다. 공항에 도착해 QR코드로 항공사 키오스크에 접촉하니 반응이 없다. 항공사 직원이 어여뻐, 이 이유만으로, 안된다고 말하면서 얼굴 한번 쓱 보면서 난감한 듯 바코드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바로 공항에 들어가란다. 그래서 개찰구에 갖다 대니 문이 열렸다. QR이 안 돼? 그렇게 들어간 공항에서 남들처럼 보안검사를 거쳐 게이트가 뜨길 기다렸다. 그러다 뜬 B55 게이트.

그라나다 대성당.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광장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그라나다 공항은 작았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는 시간은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것보다 더 걸렸다. 공항버스를 타고 본 풍경이 어딘가 익숙했다. 주변 건물들과 풍경이 주로 갈색 계통으로 기억한다. 아마 미국의 뉴멕시코 주가 비슷하지 않을까 한 건 오로지 소설 때문이었다. 루시아 벌린. 가장 좋아하는 여성 소설가. 실제로 뉴멕시코에서 거주했다고도 하고, 단편 어디선가 그곳을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도심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들이 대부분 흰색 계통이다. 잘못 기억하는 걸까? 게다가 도로 중앙에 차광막이 쳐있다. 그것도 흰색 계통. 도로를 보호하려고? 도로에 차광막? 설마 차를 위해서겠어? 더워서 그런 건데, 여긴 안달루시아 지방이다.

누에바 광장과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

도시가 작은 것이 여행자들에게 좋다면 반드시 꼽힐 도시 같다. 시내 한 곳에 타파스 골목과 대성당과 옆에 알카이세리아라는 아랍 시장까지 몰려있다. 우선, 배가 고파 점심은 타파스 골목 식당 한 곳에서 메뉴 델 디아로 때우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먼저 한때 이슬람이 지배했던 곳이 아니랄까 봐 아랍 시장인가 했다가 언제부터 있던 시장이지, 설마 나스르 왕조부터? 어딜 가든 쇼핑 기피증이 있어서 무시하고 옆으로 빠지니 성당이 나왔다. 이게 대성당일까? 했으나 아니었다. 대성당은 옆이고, 어떻게 성당이 서로 붙어있지,라는 생각에 더해 이 성당 대성당과 비교돼서 쫄지 않을까? 그런데, 여긴 공짜다. 공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랍시장. 언제 만들어졌지? 저 문을 지나면 알바이신 지구로 갈까?

알람브라 궁전은 내일 보기로 했으니, 그럼 오늘 일정은 정해졌다. 크게 시내 탐방과 산 니콜라스 전망대 가기. 시내? 시내라고 하기엔 작아서, 그래도 여긴 그라나다 주정부 소재지이다. 있을 건 다 있다. 오다 보니 시청도 봤고, 좀 지나서 눈에 확 띄는 동상도 있다.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에 있는 항복 기념비(monumento a las Capitulaciones). 누가 누구한테 항복을? 누군가에겐 비참한 역사라니. 콜럼버스가 무릎을 꿇고 있어서 그가 항복하는 건 아니고. 세비야 대성당에 가면 그의 무덤이 붕 떠있는데,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 좀 걸어가니 누에바 광장이 나온다. 이것이 광장? 작다고 무시 마라. 그 앞에 법원도 있다. 이런 선입견은 다로 강까지 이어진다.

이게 강? 시냇물이 아니라고?

다로 강(Rio Darro). 이걸 강이라고 해야 할까 싶지만 강이다. 왜냐고? Rio가 강이다. 작고 좁아서, 시냇물 같아서 그렇지 아주 먼 곳까지 흐른다나 뭐라나. 그런데, 강인지 아닌지를 떠나 강을 중심으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 건 지리적으로 중요하다. 강이야 이슬람 왕국 시절 식수로 사용되었기에 중요했고, 오른쪽 높게 솟은 계곡은 요새로도 안성맞춤이다. 이곳에 알람브라 궁전을 세운 이유가 이해가 된다. 궁전 바로 앞에, 다로 강에서 올려다보면 맨 앞쪽에 알카사바, 요새를 세운 것이다.

오른쪽 깃발 날리는 곳이 알카사바.

그럼 맞은편은? 다로 강을 기준으로 왼편은 높이가 궁전과 비슷하다. 그곳에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있다. 누에바 광장에서 전망대, 미~라도르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다로 강을 걷다 보면 길이 왼편으로 꺾이는데 그때부터 언덕을 오르면 된다. 그곳에 표지판이 보이면 다 온 것이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왜 미~라도르 인지 알 수 있다. 알람브라 궁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눈 맞춤 높이다. 서로 대등하게 볼 수 있다. 이건 내일 알람브라 궁전에서 바라본 높이와 비슷했다. 알람브라 궁전을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소다. 볼 만큼 봤으니 옮겨야 할까? 다음 장소 크리스토발 전망대로 향하려는데, 사람이 부실하니 구글맵도 버벅거린다. 이로 인해 고생한 건 나중에 서술하고. 길을 모르면 물어봐야 해서 뒤편에 서있던 경찰 두 명에게 물었다.


경쾌한 음악이 울려 뭐지 했던, 결혼식 같기도 했고. 산 니콜라스 전망대 오후 모습.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데, 그러니 무차스 그라시아스라고 헤어졌지만, 솔직히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도 알아들은 척하며 발걸음을 옮겼는데, 맵이 있었지만, 마음이 급한 건지 골목에서 계속 헤맸다. 골목이 좁고 복잡해서 구글맵이 신통치 않았는데, 그건 내가 어디 있는지 자꾸 헤맸기 때문이다. 골목에 갇혀 방향감각을 상실하니, 맵이 먹통이 된 것 같았다.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거지만, 그러니 물어봤지만, 그들이 알려주는 방향이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오로지 입에선 크리스토발, 크리스토발 했는데, 그걸 그들이 알아들었다. 암튼, 어찌어찌해서 크리스토발 미~라도르로 오긴 왔다.

산 크리스토발 전망대에서 본 해넘이.

이곳에 온건, 해넘이를 보러다. 그라나다에서 일출 얘기는 없는데, 일몰 얘기가 많은 이유가 있었다. 잠시 멍 때려서 좋았다. 길을 찾느라, 시간을 넘겨 해넘이를 보지 못할까 봐 급했던 마음이 쏙 사그라들 수밖에. 그러면서 든 생각, 인종불문 국적불문 해맞이나 해넘이는 누구든 보고 싶어 한다. 왜 그렇지? 그렇게 왔다는 도장 머리에 꽉 찍고 돌아가기로 했다. 어디로?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아니, 그렇게 헤매놓고 또 거길 간다고? 당연하다. 한번 왔으니 돌아가는 건 당연히 쉽다. 돌아가면서 어디서 헤맸는지, 어디서 동네 강아지가 짖어댔는지 알 수 있으니. 사실, 오다가 개 한 마리 때문에 애를 먹었다. 분명히 똥개였을 그놈이 텃세를 부리려 컹컹 짖으며 쫓아왔는데, 이를 말리는 동네 아줌마들 외치는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니콜라스 전망대 가기 전 모습
야경?

알바이신 지구에서 해넘이를 보려면 산 미구엘 전망대로 가거나, 크리스토발 전망대로 오거나 해야 한다. 그쪽으로 안 간 건 거리가 멀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해서였다. 해넘이 시간에 쫓겼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마음이 급했고, 그래서 헤맨 건 맞는데 그래도 소중히 배운 건 구글맵도 골목에서, 내가 방향 감각을 잃으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온 산 니콜라스 전망대. 사람들이 야경을 보려는 이유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야경이든 그 야경이란 것이 결국 화장발이 아니라 조명발이지만. 이게 핵심 아니던가? 살면서 볼 것만 보라는. 더불어,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ycYC2pCDkhU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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