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유이(2025).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리프
책에 대한 느낌을 적으려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이러니였다. 누가 누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란 광고 문구. 출판사나 서점에선 이렇게 해야 좀 더 책이 팔릴 테니 당연함에도 뭔가 이상했다. 책 제목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건 지식인 체하면서 괴테를 팔면 대강 다 넘어가는 걸 상징하는 것 같은데, 유명한 누가 누가 추천한 책이라면 그 권위에 묻어 그 책이 좋은지 아닌지를 떠나 대충 넘어가는 것 또한 같은 것 아니던가? 괴테를 팔거나 유명 인플루언서를 팔거나 그게 그거 아닌가? 권위에 묻어가는 것 말이다. 자연스럽게 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란 문구도 그렇고.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란 문장을 진짜 괴테가 말했는지 아닌지 찾는 것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지만, 이 말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을 말하는 것일까? 아님, 남녀 간에 몸을 섞는 그것까지 말하는 걸까? 이게 불경스럽다면 육체적인 욕망을 배제하고 정신적인 교감과 순수한 영혼에 초점을 맞추는 플라토닉 러브를 말하는 거라고? 혹시 주인공이 대학교수라서 사제 간에 나누는 동지애에 기초한 그걸 말하는 건지? 이런 사랑에 대한 논의를 모두 넘어서는 사랑이 있는데, 그건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전제 자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사랑이란 정의는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뭘 혼연일체로 만든다는 걸까?
소설 주인공 도이치 히로바는 위에 언급한 문장을 진짜 괴테가 한 말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많다. 그건 작가 스즈키 유이가 대학원생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그가 지닌 사고 체계는 학문이란 공간이 될 테니 이건 자연스러운 거지만, 이런 내용의 책이 정말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는지 좀 의아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라는 말도 마케팅을 넘어 진짜 팔린 양을 말하는 것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책이 말하는 바 그 주제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아니 이해를 한다고 해도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낀다고? 이렇게 말하면 내가 세상을 너무 삐딱하게 보는 거라고 누가 지적할 수도 있겠다.
어느 날 우연히 괴테 전문가 도이치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홍차를 마시려다 그 티백에 적힌 문장을 발견한다. 괴테가 썼다는 그 문장이 바로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이다. 분명히 거기에 괴테라고 썼으니 정말 괴테가 썼을까 하고 의문을 갖는 건 그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게 괴테였으니까. 보통 사람들은 그냥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고 그냥 믿었을 텐데, 평생 괴테를 연구한 대학교수가 자기가 모르는 문장이었으니 궁금했을 것 같다. 그러니 그가 정말 이런 말을 했는지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도이치가 뭔가를 깨닫게 되는 소설이다.
암튼, 도이치 히로바는 아내 아키코와 딸 노리카 그리고 딸의 남자 친구 스즈키와 함께 독일로 여행을 한다. 진짜 괴테가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차 예나, 바이마르, 라이프니츠를 방문한다. 특히, 예나에서 예전에 같이 공부했던 요한을 만나 그가 가진 모든 의문점이 해결된 것은 좋았는데, 그 과정을 통해 그가 살아오면서 느끼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부터 티백에 적힌 문장이 요한과 관련되어 있다는 건 충격이면서도 그가 지탱해 온 학문적 자산이 흔들리는 걸 경험한다. 예를 들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문장도 요한이 괴테에 매몰되어 있는 도이치를 놀리기 위한 농담으로 시작되었다는. 결국,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그 자체가 괴테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와 연결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전체 줄거리는 대략 이런데, 이 소설이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란 건 괴테가 실제로 한 말이 아님에도 그가 실제로 그렇게 믿는 현상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그 유명한 시뮬라크르(simulacre)와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는 개념. 실제로 괴테가 하지 않은 말을 진짜 한 것처럼 말하는 게 시뮬라크르이고, 가짜가 진짜처럼 받아들여짐으로써 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는 현상은 시뮬라시옹이라서 말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더해서, "이 소설은 학자가 어떤 문장의 출처를 '알아내는' 것과 그 문장의 깊은 뜻을 '살아내는' 것은 별개라는 지혜를 노련하게 설파하면서 멋지게 그 일을 해낸다"라고 상찬을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작가가 일본에서 아주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쿠다카와 상을 받지 않았겠는가. 작가는 이런 점을 소설로 써서, 우리에게 이를 깨닫게 했으니 그는 진정 세상을 '살아냄으로써 소설이 주는 가치를 충분히 웅변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재미있었는지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 작가는 소설 제목을 왜 이렇게 붙인 것일까? 멋지게 표현된 어떤 문장을, 이건 괴테가 말한 거야라고 말하면 우린 그 진위 여부를 가리지 않고 덥석 문다. 우리 또한 이런 권위에 금방 무장이 해제되지 않던가? 정말 그랬어?라는 사람도 적거니와 그걸 굳이 밝혀내는 이 또한 거의 없으며, 그런 말들을 학자들이 지금까지 가려왔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그런 말을 진짜 누가 했건 아니건 각자 그런 문장을 자기 삶의 윤활유로 활용하면 될 것도 같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진위 여부가 꼭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권위에 익숙하고 약했기에 가슴 한쪽이 찔려오지 않던가.
실제로 괴테가 그런 말을 했는지를 떠나서, 괴테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하니 그걸 그대로 괴테가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현상, 주인공 도이치가 평생 괴테를 팔며 살아왔지만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믿으며 살아온 것 같은 학자로서의 자기 삶을 마지막 부분에서 깨닫게 되는 건 정말 백미이다. 이건 소설의 핵심이 되지만, 한 번 더 딴지를 걸자면 지금까지 만나온 교수 중에서 진정 자기의 전공 분야에 대해 도이치만큼 확신을 가진 학자들이 있었는지, 지금까지 일본에서 30명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스즈키 유이 같은 작가가 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우리만이 쉽게 생각하는 일본이란 나라가 보여준 학문적 깊이와 문학적 성취까지 생각하게 만든 소설!
소설은 괴테가 말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한 그 문장이 결국 괴테가 결코 그런 문장을 쓰지 않았음을, 그럼에도 그가 쓴 것처럼 받아들여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그 현상을 소설로 드러낸 뛰어난 소설임에도, 사는 그 자체에 허덕이는 필부필부들에겐 괴테가 썼건 아니건 그걸 따지는 게 배부른 이들끼리 서로 노닥거리는 것처럼 비쳐 보이기도 해서, 소설은 그래도 소설이라면 재미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딴지를 걸어야 속히 편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