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는 피지컬 AI?

와일드 로봇. 피터 브라운(2019). 거북이북스.

by 길문

로즈는 요즘 핫한 단어로 말하면 피지컬 AI이다. 피터 브라운이 《와일드 로봇》을 쓴 2016년에는 로봇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로봇이 학습을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없지 않았으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걸 굳이 서두에 뽑은 건 야생에서 살아가는 로봇이 뭔가를 학습한다는 걸 전제하지 않으면 이 소설은 이해될 수 없어서다. 특히, 상상력이 거의 고갈된 어른들 말고 한참 싱싱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해서 말이다.


와일드 로봇이라? 지금까지 로봇이란 단어는 도시에 적합한 걸 말하는 것 같다. 방송에 나와 영상으로 접하는 피지컬 AI들은 대부분 방방 뜨더라도, 대게 중국산 로봇들이 그렇지만, 이건 단순히 태극권 등 무술에 익숙한 배경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공장에서의 로봇이야 이미 활성화된 지 오래전이다. 공장이 야생에 있던가? 공장 로봇이야 자동차 공장을 생각하면 가장 쉽다. 외향이 사람 모습을 하지 않을 뿐. 무술 하는 로봇이야 사람 형태지만, 여기에 테슬라 때문인지 자율주행 개념도 우린 이미 오래전에 텔레비전 시리즈를 통해 경험했다. 그땐 그저 드라마니까 하고 했던 것 같다.


키트(KITT) 하고 부르면 달려오는 자동차. 잘생긴 주인공 마이클 나이트가 말하면 알아듣는 그 키트에는 이미 인공지능이 탑재된 차량이었다. 드라마 제목이 〈전격 Z작전〉이었던 텔레비전 시리즈를 지금 익숙한 인공지능, 자율주행, 피지컬 AI 등에 대한 개념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대게가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보이는 모습이지만. 반대로 거친 야생에서, 황량한 나미비아 사막에서,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키트하고 부르면 달려오는 자동차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뭘 보여주려고? 야생동물이 노니는 초원에서 최첨단 차량이 등장한다니 어딘가 맞지 않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삐까 뻔쩍 피지컬 AI가 등장해야 할 것 같지 않던가.


책에선 자연을 배워나가는 로봇이 주인공이다. 누가 이렇게 적응하라고 프로그래밍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도록 설계한 것도 아닐 텐데 좌충우돌 자연에 적응해 나가는 로봇이라니. 그런 로봇에 성을 부여했다. 원래 로줌 유닛 7134이란 이름을 로즈라고 부르다니. 이건 나중에 기러기 새끼를 입양해서 키워나가는 엄마 로봇을 그리려고 그런 것인데, 이것도 참신하다. 생식을 하지 않는데 여성이고, 새끼가 있어 이를 키우는 엄마 로봇이라니. 이건 다분히 아이들을 의식한 발로였겠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문학이니, 아빠를 파는 것보다 엄마를 내세우는 게 더 나을 것 같긴 하다.


처음 소설을 읽어나갈 때 쉽게 몰입되지 않은 건 이게 말이 될까라는 어른이 갖는 상습적인 습관 때문이지만, 읽다 보니 어느덧 후속작들을 읽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는 로즈가 졸지에 야생에 남아 살아간다는 발생 자체가 작위스러워 쉽게 와닿지 못한 것도 한몫한 것이지만 굳이 분류하면 공상 소설이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한 동화에 작가가 직접 삽화를 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소설이 달라 보인다. 감정도 살짝 실어 그저 아름다운 결론으로 소설이 끝나기를 바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중간에 로즈가 회수될 뻔했기 때문이다. 로즈를 만든 회사에, 자연이 아닌 기계문명세계로 반송되어 재생되면 그건 로즈가 아닌 로줌 유닛 7134일뿐.


반복하면 로봇이 생존한다는 발상 자체가 기발하다. 배에 실려가다 폭풍우를 만나 야생의 섬에 홀로 남겨진 로봇. 전체 플롯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판박이 같은데, 그곳은 섬이고 여긴 육지 어딘가. 처음 로봇은 숲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괴물로 불리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데, 그가 처음 터득한 방법은 위장술이다. 나중엔 하다 하다 동물들처럼 소리를 내는 로봇이라니. 그러다, 사고를 내서 기러기 가족을 죽게 하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기러기 새끼 한 마리를 거둬들인다. 알에서 깬 기러기 새끼는 처음 본 사물을 엄마로 인식하는 각인효과를 보이는데, 이것 때문에 로즈를 여자라는 성으로 만든 걸까? 깨어났는데 보인 로봇을 아빠라고 인식하면 뭔가 자연을 거스르나?


그를 무서워했던 동물들이 로즈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여정이 다정스럽니다. 로봇과 자연이 이럴진대, 이런 로봇을 만들어내는 인간 세상은 어찌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소설처럼 로즈가 기러기 새끼에게 브라이트빌 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생존 기술과 비행을 가르치며 남쪽나라로 떠난 브라이트 빌 이 돌아오길 바라는 장면은 인간보다 나은 로봇이 정말 가능했으면 한다. 한편에선 AI가 가져올 무시무시한 미래를 걱정하지만, 지금까지 어른들이 보여준 광기는 인간이 만드는 그 어떤 AI보다 더 무섭다는 걸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던가.


야생동물보다 못한, 로봇보다 못한 어른 수컷들 불장난을 멈출 수만 있다면, 로즈에 달린 단추를 눌러 로즈를 데려가려는 소설 속 시도 말고 누가 진짜 그들 몸에 달린 단추를 눌러 멈출 수만 있다면. 누가 이런 소설은 안 쓰나?? 누가 누구보고 악이라 부르고 불리는 이상한 나라 지구에서 그들을 영구히 퇴출하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게 현실이면 더욱 바람직하겠지만. 그게 안된다는 걸 아는 이미 다 큰 어른이라서 이런 소설에 더 목말라하는 건 아닌지. 갈증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괴테가 무슨 말을 했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