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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행, 낭만은 역시 밤바다에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여수 여행 2 : 언제 또 오겠냐?

by 길문

여수 밤바다가 좋다는데 가자. 아버지 말씀. 아버지께서 가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시작된 여행. 이럴 때 생각나는 책이 있다. 미스(Miss) 노마. 나이 아흔에 자식까지 있는, 말기 암 환자 할머니. 그들 여행기를 다룬 드라이빙 미스 노마(2018)는 단순한 여행기를 떠나 어떻게 잘 죽을까를 생각하게도 하는 책이다. 이 책처럼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을 먼 훗날 추억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후회할까 봐. 더 늦기 전에.


여행지로 여수를 선택한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였다. 가고 싶으시다고. 여수 밤바다가 좋다고 누구한테 들으셨다. 바닷가에서 밥도 먹고 밤에 케이블카도 타자고. 이때까지 아버지는 낭만포차라는 단어를 모르셨다.

여행이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 체력. 나도 그렇고.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 최고의 선물은 아버지로부터 나왔다. 걸을 때 힘들어하시는 것만 빼면, 힘들면 쉬엄쉬엄이라도 잘 버티셨다. 다행이었다. 그래서 여수 낮 여행을 멈추고 숙소로 돌아간 것이다. 잠시 눈도 붙이고, 모든 것이 그렇듯이 후반전이 더 중요하니까 체력 비축도 할 겸. 좋다는 여수 밤바다 즐기러 갈 거니까.



역시나, 밤바다 하면 여수인 것 같다. 부산 가면 부산 밤바다가 최고라고도 하려나? 암튼, 지금은 여수니까 여수한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차를 몰고 나가는데, 가보니 장날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이 여수 이순신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가는 좁은 골목 내내 차들이 꽉 들어찼다. 좀 멀지만 행사 관계자가 여수중학교 쪽으로 유도한다. 당연히 따라야지!

낭만포차. 검색해 보니 여수 종화동이다. 종화동 방파제에 있는 등대가 하멜 등대인데, 이곳에서 보면 해안가에 음식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이곳을 낭만포차라고 하는지,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그런데, 이곳 지명이 낭만이라. 낭만적이라도 낭만이란 단어를 뻔뻔하게 쓰다니. 그 낭만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했었는데, 실종되었던 '낭만'을 여수 종화동에서 찾았다. '낭만'이 뭐였더라 잊힐 때, 이날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낭만이라고.

연휴라서 그런지 바닷가가 인산인해다. 좀 전에 있었던 축제의 여파도 같이 실렸겠지만, 그래서 낭만포차에 들어가지 않고 올라갔다. 대부분의 포차가 1층에 있었는데, 포차 99번은 2층에 있었다. 그래서 더 친절했던 것 같은데. 왜 여기냐고? 그냥,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더 좋을 듯해서.


그곳에서 먹은 음식이 그 유명한 돌문어 삼합. 이것 먹으러 낭만포차 온다고 해도 틀림없는 별미였다. 인정한다. 맛있다. 홍어가 기본인 삼합과 다른 맛. 홍어삼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맛만큼은 남녀노소가 피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곳의 대표 음식. 가격도 다 같은데, 맛과 서비스 그리고 양은 좀 다를 듯하다. 여기에 딱새우까지.

위치가 등대 앞이면서 이층이라서 더 운치 있게 느껴졌다. 저녁이 되어 서서히 어두워지자 이곳이 본색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보이는 돌산대교와 케이블카를 보면서, 종화도란 지명보다 낭만포차로 불리는 게 더 '낭만'스러웠다. 여기에 케이블카에 조명을 달아놨는데, 이게 무슨 SF 영화에서 나오는 차량 같다. 밤이라 케이블도 보이지 않으니. 낮 말고 밤에 보니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았다. LED 조명이 '껌벅껌벅,' 뭔가 벌레처럼 날아다닌다. 그게 케이블카다.

낮에 덥게 느껴지던 더위가 저녁에는 시원해져서 그런지 남들이 왜 그렇게 여수 밤바다를 외쳐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더울 땐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해안가라 바람이 불지 않던가. 그래서 느낀, 이 맛이다. 딱 이 맛이다. 음식점을 나와 걷는 밤바다를 느끼며, 예전에 왔을 때는 오동도 주변이 더 멋있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바글바글 대는 낭만포차를 뒤로하고 케이블카를 타러 자산공원으로 향했다. 가까워서. 돌산공원보다 거리가 말이다.


여수 밤바다를 케이블카를 왕복으로 끊고 화룡점정으로 즐기려 했는데, 뭔가 이상하기 시작했다. 자산 주차타워에서 시작된 줄이 긴 거야 어쩔 수 없고, 나이 든 노인이라고 양보해서 앞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검표원이 한소리 한다. 표 번호 따오라고. 이게, 뭔 소린가 봤더니 여수 아쿠아리움처럼 예약한 번호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 정류장에서 이 번호로 예약을 확인하면서 새로 부여되는 번호를 받아야 했다. 대기번호. 이 번호대로 입장한 것이다.

결국, 연휴라 사람이 많으니 찾아낸 현명함이겠지만 여긴 경로 우대나 몸이 약한 어린이를 배려하는 어떤 제도도 없었다. 공평하기는 한데, 그래서 뭐라 할 수도 없지만,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표를 물릴 수도 없고. 받은 번호가 결국 대기번호고 쉴 새 없이 케이블카가 사람을 날라도 한 40~50분 정도 기다려야 탈 수 있었다. 타는데, 검표원 왈, 돌아올 때 대기 없을 거란다. 자산공원에서 돌산공원 방향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말인데, 역으로 돌산공원에서 갈 때 사람이 적어도 올 때 자산공원에 사람이 많으니 그게 그거였다.

이런! 결국, 이날의 피로가 며칠 아버지에겐 후유증으로 작용했지만, 후회는 없다가 아니라 후회해도 뭐 하겠어, 라는 심정이었다. 노인에게 무리였을 수도. 그렇다고, 아쉬워하셨을까? 전혀 아니다. 아버지야 언제 또 오겠냐는 말로 모든 걸 표현하셨다. 왜 그렇게 마음이 짠하던지...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여수 해양공원 일대와 낭만포차 거리. 언젠가 그곳에 가면, 그게 언제라도, 같이 또 갔으면 좋겠다. 어버자와 험께.


https://www.youtube.com/watch?v=mlTRGzoruOA&list=PLC_v4Xyk5s4CaZs1Sq9pHwOV2p9bpdupQ&ab_channel=DJ%ED%8B%B0%EB%B9%84%EC%94%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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