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첫 여수 여행 행선지로 만성리 검은 해변에 갔다. 가보니 해수욕장인지는 알겠는데, 뭔가 아닌 듯했다. 철이 지났다고 이 모양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바다, 그 바다였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그 바다가 그 바다이다. 감정이 메말랐는지 잠시 생각했지만, 굳이 문제라면 문제는 내 정신 상태가 몽롱했다는 것이다. 왠고 하니, 더위 때문이다. 차를 운전할 때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날씨. 바닷가는 썰물 때처럼 썰렁하고. 날씨는 더워서 해변을 걷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말이 검은 해변이었는데 정말 모래사장이 검은 해변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머리로는 검은 해변이 아니라고 외쳐대는데, 통상 알고 있는 해수욕장과 달랐던 정도로만 타협을 해야겠다. 거기까지 간 노고를 생각한다면 이 정도 눈감아줄 만했다. 누굴 위해? 이런 느낌을 보상해 줄 경치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그때 몰랐다. 드디어 이를 보상해 줄 멋진 경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카이타워. 대단해 보이지 않는가? 하늘로 가는 타워라고 해석하고 싶지만, 말만 그렇지. 그런데 경치는 아니었다. 사용하지 않는 시멘트 사일로 2개로 만든 전망대. 여수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를 위해 만들었던 스카이타워.
경치는 그렇다 치고, 입장료가 2천 원이다. 싸다. 거기에 주차료도 포함되어 있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차 한 잔, 아니 쑥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내려오면 된다. 여기서는 여수엑스포 여객터미널, 오동도, 여수엑스포 공원, 케이블카 터미널이 있는 자산공원 등을 내려다 불 수 있다. 그 경치가 시원시원하다. 이 일대를 여수엑스포 해양공원이라 불리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게 중요한 것 같지도 않고,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경치가 좋았다.
시멘트 사일로
원래 계획은 이곳을 둘러본 후 돌산도로 가는 거였다. 가서 철 지난 바닷가가 주는 쓸쓸함을 느끼려다, 더워서 계획을 급 수정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다, 여수 아쿠아 플라넷에 가기로 했다. 즉흥 결정이지만, 탁월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단, 하나만 빼면 말이다. 그건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연휴라서 그런 것도 있고 대부분 나같이 짱구를 굴렸으리라. 밤에 놀기로 하고, 낮엔 시원한 실내에서 지내자. 뭐 이렇게. 그게 답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싫었을까?
우리나라 엄마 아빠들이 얼마나 자기 자식에 헌신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너도나도 자식들한테 그사이 못한 부모 노릇 하려는 건지. 사람에 치이긴 했으나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다. 뭐든 하나라도 자기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그 분위기.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여기에, 오랜만에 보는 수중생물들을 보는 게 여전히 즐거웠다. 그들이 날 알아볼 리는 없을 테고.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제주에 있던 수족관보다 좀 작았던 듯했다. 그땐 부모님과 함께 했었는데,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했다. 아쉬움! 어쩌랴. 이게 사는 것인걸. 이런 애잔함이 흰돌고래 벨루가에 꽂혔다. 벨루가.
연민이 왜 돌고래로 전이됐냐고? 그 벨루가가 혼자였다. 처음엔 암컷인지 수컷인지 몰랐으나, 후에 알아보니 수컷이 폐사했다고 한다. 이런, 무척 외로워 보였는데 그건 어디까지 인간인 내 감성일까? 그런데 얼굴은 웃는 얼굴이다. 흠, 돌고래가 웃을 수 있다고?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나라에 또 어디 수족관에 벨루가가 있더라? 이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수 아쿠아 플라넷의 화룡점정은 벨루가라고 하고 싶다.
어디건 수족관에 가면 좋기는 한데, 그저 그 안에 갇힌 어류는 잘 모르겠지만, 포유류는 고통스러울 것 같다. 내가 포유류라서 그런가? 좁은 수족 안에서의 생활이란. 그러고 보니 인간도 같은 포유류인데, 그러고 보니 나도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누군 밖에서 바라보고... 아, 어려워진다. 이제 수족관이 인간이 일방적으로 보는 관람에서 벗어나 공존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대안이 명확할까? 그러면서 난 거기 있었고...
그렇게 대략 수족관 관람을 끝내는데, 이렇게 든 잠시의 생각은 역시나 확 날려버려 졌다. 뭐가 그랬냐고? 미술관 때문이었다. 아쿠아리움에 웬 미술관? 와우, 인간의 창의력이란. 이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들어갈 때 같이 패키지 상품으로 묶여있어, 이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나가려다 들러본 미술 전시회. 이럴 때 쓸 수 있는 단어. 와우, 대박이다. 여전히 아직도 미술을 잘 모르는, 그저 가서 보고 나왔기에 만족하는 정도의 자족감이라도 눈이 신났다. 이런 작품들이라니. 눈이 호사를 누렸다. 날씨뿐만 아니라 그림도 그것도 밝은 그림과 색깔이 주는 감흥이 이렇게 클 줄이야.
알아보니, 이 전시회는 여수에서만 열렸던 것이 아니었지만 어떠랴. 아마, 같은 회사에서는 이 전시회를 여기저기에서 했었던 것 같은데, 미술이 역시 미술은 색깔을 전제하지 않으면, 빛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아니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여수는 낮에도 할 게 많았다. 벨루가도 보고, 내가 포유류란 것도 다시 생각해 보고. 색깔이 주는 마법 같은 세상도 생각해 보고 말이다. 그럼, 밤은? 그 여수 밤바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