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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Oct 14. 2022

역시, 여행은 좋다고 깨달았다.

순천 여행 : 와온해변, 낙안읍성, 송광사와 선암사까지

순천과 여수 여행 일정을 어떻게 정할까 하다, 정한 게 이렇게였다. 와온해변과 낙안읍성, 그리고 두 유명 사찰은 올라가는 길에 들른다고. 날씨가 좋아 어떻게든 좋았을 여행이지만,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천하무적 같다. 그저 찍고, 달리고, 도착해서 즐기면 되니까...


와온해변은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때 빠트리면 후회할 것 같았는데, 선택이 좋았다. 갯벌을 내려다보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없으니까. 입장료도 없으니까.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 외국어인 줄 알았다. 와온이라니. 그랬더니, 순천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거기에 와온해변이 있다. 와온마을에 있는 해변이라서 와온해변. 그렇게 와온마을에서 얼쩡거리다 다시 차를 탔더니, 내비게이션은 몇 백 미터 더 가라고 나온다. 어라, 여기가 아니었군. 그래서 가라는 대로 더 갔더니, 작은 언덕 주변에 주차장이 있고, 와온해변이라고 글자가 보인다. 이걸 작은 동산이라고 해야 하나.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더니, 무슨 캠핑장에 온 것 같다.


밤새 몇 팀이 이곳에서 진을 치다 빠져나갈 채비가 한창 중이다. 그렇게 더 걸어가니.. 이곳이 대단한 줄 알았더니, 대단했다. 썰물 때라서 휑하지만, 그 뻘이 아득하다. 시야에 온통 뻘이다. 와우, 감탄사가 나왔다. 저절로. 강제로 감탄사가 나올 수가 있을까마는, 시야가 솔 섬만 빼면 그냥 무한대 같다. 뻥이지만, 그 정도로 시야에 걸릴 것이 없다.  

저 멀리 솔 섬 이 보이는데, 그게 포인트다. 와온해변의 포인트. 해변이 주인인데, 주인 같지 않다. 섬이 주인공 같은데, 부창부수라고 둘 중에 하나 빠지면 안 될 것 같다. 섬이 있어 해변도, 해변도 섬이 있어 뻘이 얼마나 넓은지 더 쉽게 알게 해 준다. 저 섬이 없었으면, 그저 그런 바닷가였겠지만, 솔 섬 이 이곳 정취를 끌어올린다. 와온마을도 마을이지만, 이 작은 언덕 또한 키포인트다. 내려다보니 모든 게 시원시원하다.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 낙안읍성


와온해변에서 바다를 보며 멍 때리다, 향한 곳은 낙안읍성이었다. 첫인상, 읍성 치고는 높이가 좀 작다 싶었다. 여기서 어떻게 왜구를 막았을까라는 생각은 멀리 수원성까지 갈 필요 없었다. 이것이 다 전북에 있는 고창읍성 때문이다. 고창읍성은 뒤에 방장산을 둘러싸서 효율적으로 왜구를 막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여긴 완전히 평지다. 높이도 별로라서. 그땐 지금보다 병사들 키가 작았을 테니 없는 것보다 백배는 나았으리라. 이 성은 조선 중기 충절의 장군 임경업이 석성으로 중수했다고 하는데, 멀리 금전산 때문인지 성 주변 풍경이 제일 좋아 보인다. 조선시대 3대 읍성의 하나라는 해미읍성까지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다.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 모두 왜구를 막아내려는 목적이야 그렇다 쳐도, 낙안읍성은 평지에 성을 만들어서 그런지 여기서 왜구를, 하면서도 볼거리는 제일 많은 듯했다. 그 이유는 이 성안에 전통마을을 조성해놨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직접 지금 사람이 산다. 그것도 초가집에서. 아하, 초가집이라. 많이 불편할 텐데. 이곳 집들이 부엌, 토방, 툇마루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남부 지방의 주거양식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중 일부분을 민박집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동내, 서내, 남내로 불리는 마을 골목을 이곳저곳 돌다 보니 민박 안내 푯말이 많이 보인다. 사람들도 모여서 일하는 모습도 보이고. 마을뿐만 아니라, 거주민들 의복도 재현했으면 어땠을까? 욕심이라고? 많이 불편하긴 하겠다. 초가집도 살기에 불편해 보이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곳의 주인공이 읍성도 초가집도 아닌 듯했다. 이건 다 계절 탓이다. 이보다 좀 추웠으면 대강 봤겠지만, 적당한 날씨에 탐스럽게 열린 감이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렸다. 그래서 조선시대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했다는 사실이 와닿지가 않았다. 그냥저냥. 익어가는 탐스러운 가을 그 자체였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돌로 만든 성곽과 성안 마을이 주는, 여기에 이런저런 나무들이 주는 시각이 참 정감 어리다. 이렇게 올해도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좀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 성곽에 걸터앉아 오가는 사람들과 마을과 성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췄으면, 아니 잠시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때가 점심이다. 아침을 반드시 드시는 아버지께서 보채신다. 빨리 밥 먹자고. 그래서 부지런히 읍성을 나와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거기서야, 순천의 명물 꼬막정식을 먹을 수 있었다. 정작, 국가 정원과 순천만 습지에서 통상 먹는 꼬막을 여기서 먹은 것이다. 순천만에서 한참 들어온 지역이라 꼬막 맛이 제대로 날까 했는데 아니다. 역시, 순천은 꼬막이다. 한 움큼도 부족해 두 움큼 잔뜩 꼬막을 입안에 들이밀었는데, 슬며시 이 집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니, 여수가 순천의 이웃이면서도 불구하고, 꼬막을 찾기 어려웠다. 여수에서 말이다. 여수는 갓김치와 게장, 양념게장과 간장게장이 대표 음식이다. 순천의 대표 음식인 꼬막과 견줄만하다. 도시 여수가 항구라서 그런가? 두 지역 대표 음식이 다르다니. 그러고 보니 두 지역 대표 음식은 다 먹었으니, 이번 여행이 뿌듯했다. 먹는 것 빼면, 여행이 여행이 아니란다. 누구 왈!



▶ 조계산 송광사와 선암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두 사찰을 다 둘러보기로 한 것은 그냥 산 하나에 사찰이 있어서 마치 다 봐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있었다. 송광사와 선암사는 산을 거처 서로 오가도록 산길이 서로 맞닿아 있지만, 오늘은 무리다.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고 두 절을 다 보기로 했다. 미련이 덜 남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두 절의 대표 선수들만 중심으로 보기로 했다. 그게 뭐냐고?


그런데, 조계산이 명산인가 보다. 마치, 엄마처럼 오른손으론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인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왼손으론 태고종의 수행 총림을 안고 있다. 반대로 보면 반대지만, 그게 그거다. 여행객이라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일타 상피. 그렇다고 송광사 바로 옆이 선암사는 아니다. 말 그대로 삥 돌아가야 한다. 산 넘어갈 수는 있는데, 걸어서 가야 한다. 암튼,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그게 그거다. 여유롭게 국도를 이용하는 게 좋을 텐데, 이 두 절은 각 종파의 상징적인 절을 떠나서 공통점도 유명하다.

승선교

그건 다리다. 선암사는 승선교라 불리고, 송광사는 삼청교 혹은 능허교라고도 불린다. 둘 다 다리인데, 승선교 위엔 누각이 없다. 삼청교는 위에 우화각이 있다. 대신, 승선교는 다리 밑에서 보면 멀리 강선루가 보인다. 삼청교 위의 우화각도 가을이면 승선교 못지않다. 승선교 쪽은 정말 만추에 어울리고, 우화각은 모든 계절에 다 어울릴 것 같다. 그럼, 우화각이 우세승?

우화각과 능허교, 아직, 가을이 덜 익었다

둘 다, 그 유명한 사진 포인트. 어느 게 더 멋있을까?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승선교는 다리만 덜렁 있어 좀 쓸쓸해 보이기는 하다. 대신, 우화각은 밑에 제짝인 삼청교가 튼튼하게 받치고 있으면서 법당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나온다고 한다. 다리가? 영화를 봤어야지. 그래도 좀 생각해 보면, 누각까지 깔 맞춤한 능허교가 더 조화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다. 그래, 그건 시간이다. 너무 일찍 온 것이다. 승선교는 정말 늦가을이나 초겨울, 나뭇잎이 더 이상 나무에 남아있기 싫어서 몸부림칠 때 와야 제멋이고, 우화각도 누각 앞에 늘어선 나무가 '나, 돌아갈래'하고 외칠 때 돼야 풍취가 제대로인데, 아쉽다. 그것도 많이.

결과적으로, 송광사가 좀 더 나았을까? 이런 분별심을 갖지 말라고 불교가 그렇게 가르쳤거늘. 머리가 나쁘니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송광사는 약간 우군도 있긴 있었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 그 스님 하면 대표적인 게 '무소유.' 무소유라? 소유하지 않음인지, 소유할 게 없도록 하는 것인지, 소유할 수 없는 것인지... 이렇게라도 세속에 찌든, 끊임없이 끌어 오르는 번뇌라도 털고 가고 싶은데, 그게 되냐고. 그것도 쉽게 말이다. 그건 신에 대한 믿음처럼 바로 얻어지는 게 아닌 것과도 같다. 그럼 돈오점수인데!


돈오돈수인지 돈오점수인지... 법정 스님은 돈오점수라고 했는데, 수행을 얼마나 해야 돈오돈수가 될는지. 성철 스님급 돼야 돈오돈수가 되는 것 아닐까? 그저 미천한 중생은 오늘 그냥 왔다 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만큼은 돈오돈수이다. 그냥 깨닫고 가니. 두 절다 좋다고 깨닫고 가니 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4xYwt5iw5I&list=RDL4xYwt5iw5I&start_radio=1&ab_channel=RealMusic%EB%A6%AC%EC%96%BC%EB%AE%A4%EC%A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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