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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Oct 17. 2022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던, 태백 여행

태백만을 여행지로 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다가 들러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태백에 갔다. 차 안에서 본 태백은 낯설었다. 여기저기 폐허가 된 건물 때문에, 아마 석탄 관련 시설이었을 것 같은데, 이런 시설은 현대화된 철도시설까지도 도시가 정체된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누구나 석탄으로 겨울을 이겨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갱도가 무너져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으로 언론이 도배가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석탄이 이제 애물단지가 되었다. 탄소배출의 주범? 태백이 한물간 것과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시대와 많은 시차가 있음에도, 꼭 후자 때문에 석탄산업이 후퇴하고 그래서 태백의 활기가 줄어든 것처럼 느꼈다. 

태백 석탄박물관 입구

태백에 올 때 멋진 풍광을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가슴 아픈 상처처럼 마음 한편이 아리다. 예전에 정선에 왔다가 한강의 발원지라는 검룡소에 잠깐 들렀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그러다 여름 열대야가 거의 없는 지역이라는 정도가 내가 아는 태백의 전부. 아! 화가 <황재형: 회천>. 언제더라 그 전시회 갔었다. 그래서 느낀 낯섦. 그가 그린 태백의 모습이 현재 일리야 당연히 없지만, 지금도 태백의 모습이 내 생활과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이질감이 큰 것은 여전했다. 


이는 태백이란 도시에 대해 아는 게 없음을 자인하는 거지만, 연탄이나 석탄이란 소재로만 보면 뭔가 아주 익숙한 것 같은데, 석탄산업, 탄광, 광부 등과 같은 단어를 생각하면 여전히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직도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도 상당할 텐데...


▶ 추전역

서울에서 차로 움직이는 동선을 고려해서 제일 먼저 간 곳이 추전역이다. 해발 855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 가보니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1970년대에 전철화가 진행되어서 그런지 다른 역과 비슷비슷해 보였다. 그러다 역무원이 던진 한마디. 한 여름에도 밤에 추워서 난로를 켠다는 말. 그렇다. 높은 곳 맞다. 가장 지리적으로 높은 역 말이다. 


요즘은 이곳에서 여객이 타고 내리지 않는 역이 되었다. 그래서 감흥이 없나 하다가, 멀리 자리 잡고 서 있는 풍력발전기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바람개비를 닮은 풍력발전기. 그래, 여기는 강원도다. 사실, 태백에 간다고 할 때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다. 도심에선 보기 어려운 풍경을 보러 여행을 온 것이다.


▶ 검룡소

검룡소 시원

다음 장소는 검룡소(儉龍沼). 명승 73호. 한강의 발원지라는 의미가 더 커서 명승지로 지정된 것 같다. 이곳에서 514km 떨어진 곳까지 강물이 흐르다니. 시원이 맞다. 한강의 시원.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도 이곳 태백에, 삼척항으로 흐르는 오십천도 태백이 시원지라고 한다. 뭔가 강(江)하면 사람이 더불어 살고 그러다 보니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는. 세계 3대 문명도 강을 낀 지역에서 발전하지 않았던가. 나일강,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그리고 인더스강. 내용이 비약했지만. 암튼, 강을 끼고 있으면 적어도 먹고사는데 문제는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하던 찰나 그렇지. 


탄광. 이곳에서 발원한 물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살았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확실한 것은 석탄이다. 요즘 강원도는 시멘트겠지? 요즘에야 지구온난화 때문에 석탄이 찬밥이지만 생각해 보면 당시 석탄이 우리나라에서 석유보다 최고 아니었던가. 석유는 나지도 않았지만. 마치, 금이 발견되어 금광 도시가 발전되고 사람들이 물밑 듯이 몰려가던 골드러시 현상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장성동에서 처음으로 석탄이 발굴되면서, 태백이 탄광 도시로써 자리 잡았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석탄산업이 사양산업으로 자리 잡아가면서 태백시가 쇠락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그렇지 태백산. 예나 지금이나 그 산이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태백산 때문에 태백이란 이름이 퍼진 것 아니던가. 원래는 그 태백산에 오르려 했는데 태백산은 겨울 눈꽃 보러 오는 곳 아니던가. 그래서 겨울에 가기로 하고. 그래서 편하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검룡소로 정했다. 


검룡소는 태백산 줄기와 닿아있는 대덕산 자락에 있다. 태백산에 검룡소가 있었다면 더 극적이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검룡소의 가치가 줄어들진 않을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 한강이 주는 의미는 사뭇 다르지 않던가. 예를 들어 낙동강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듯이 한강은 적어도 한강 이남 남한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가치는 크다. 한강의 발원지로써 소(沼)가 어느 날 없어질 리도 없고. 그런 소를 다시 보러 가면서 느낀, 주차장에서 검룡소까지 걷는 산책길은 여전히 예뼜다. 샌들을 신고 걸어도 좋을 만큼 편하면서 말이다. 


▶ 영월 상동 이끼계곡

그러다 일행 한 명이 이끼계곡에 가자고 한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강원도만 해도 이끼 계곡이 많다. 평창 장전, 삼척 무건리 등등. 그래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가장 가까운 영월로 향했다. 그리고 헤매고 헤매다 찾은 작은 계곡. 오호! 온통 이끼 천지다. 이곳이 습한가? 온통 이끼. 그래서 알게 된 사실. 전문가들이 남긴다는 사진들이 나 같은 아마추어도 스마트 폰에서 '전문가' 모드로 바꾸면 비슷하게 전문가 흉내를 낼 수 있다는 사실. 


그런데 말이다. 너무 인위적이라서 싫다. 휴대폰 카메라가 발달해서 눈이 인지하지 못하는 효과를 내는 것까지는 좋으나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그냥 아마추어 모드 사진이 좋다. 이게 내 눈이 인식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그냥 여기까지가 좋다.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사진도 더 이상 기교가 필요 없는 상태가 좋다. 태백 여행에 영월이라. 태백 여행인데 영월이라니. 땅이 스스로 경계를 만들었겠는가. 영월이면 어떠랴... 


 ▶ 황지연못

몰랐다. 앞에서 말한 낙동강 발원지가 이곳 황지(黃池) 연못이란 것을. 그래서 들렀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도시 한 목판에 연못이라니. 이곳에서 흐른 물이 경상남북도를 거쳐 부산광역시 을숙도에서 남해로 흐른다는데 그 길이가 510.36km. 한강보다 짧은데!  그나저나 어떻게 이곳에서 하루 5천 톤의 물이 나올까? 태백시 인근에 있는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의 물줄기가 지하로 연결되어 이곳 연못에 모인 것이라는데 보기에 그냥 마셔도 될 듯 깨끗하게 보였다. 


한때 상수원으로 쓰였으니. 연못이 상지, 중지, 하지로 구성된 것도 신기했다. 황지와 관련된 황부자 전설이야 그냥 넘겨야겠다. 전설은 전설일 뿐. 그런 전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곳 태백이 한반도 지질박물관이라고 부를 만큼 오래된 지형이라는 게 더 중요하다. 고생대 화석이 발견된 곳이라니. 그것도 고생대? 통상 약 5억 7천만 년 전부터 2억 5백만 년 전까지라는데 그냥 여기까지다. 뭐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등등 외우기도 어렵다. 지질학자도 아니고.  삼엽충만 빼고. 이 단어는 자주 들었다.  


▶ 구문소 자개문


그래서 망설임 없이 구문소로 향했다. 시간이 여유 있었으면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에 들러보련만. 앞에서 언급한 황지연못의 물이 철암천과 만난 곳에 있는 소(沼). 황지천이 작은 산을 뚫고 지나가며 돌문(石門)을 만들고 깊은 소(沼)를 이룬 곳. 그래서 구문소(求門沼). 이곳 지역이 석회암 지대라서 물로 인해 당연히 침식이 되었을 거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 물이 산을 뚫었다는 것과 이 지역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대 지질과 그 당시 생성된 석회암 중에 나타나는 다양한 퇴적구조와 삼엽충 등의 화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곳은 구문소 입구보다 반대쪽 계곡을 반드시 봐야 한다. 사실 삼형제폭포니, 닭 볏 바위니, 마당소 등이 구문 팔경이라는데 이를 일일이 세지는 못하겠고 정말 특이한 그래서 반드시 봐야만 하는 곳이다. 태백 여행의 화룡점정! 구문소 반대편도 머스트 시(must see)다. 그곳은 구문소 앞에서 만난 해설사분이 꼭 가보라고 해서 간 것이다. 아주 감사하다. 그냥 스쳐갈 뻔했다.

그런데 말이다. 구문소도 구문소지만 그 옆 인위적으로 뚫은 굴이 인상적이다. 거기 굴 위에 '우혈모기'라는 글자가 있다는데 확인은 못했고 일본인들이 이 굴을 파면서 중국 하나라 우왕이 뚧은  석굴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적었다는데,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일본인들이 장성에서 석탄이 발견되고 광산이 개발되면서 먼 길을 돌아서 석탄을 나르는 게 불편해서 5m 정도 석벽을 뚫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유가 어떠하든 굴을 정교하게 참 잘 뚫었다. 역시 기술은 일본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기 이전에 지금은 구문소를 더 구문소 답게 하는 장식품처럼 보인다. 구문소야 자연이 만들어 놓은 신기이지만 굴은 인위적이지 않던가. 아이러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오래 머물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지만 좀 더 세밀하게 바위 곳곳에 남겨진 고생대의 흔적을 직접 찾아보지 못한 아쉬움은 숙제로 남겨야겠다. 

구문소 반대편 모습

그런데 자개문(子開門)은 뭐지? 구문소를 구문소 자개문이라고 하던데. 왜 그런고 하니 구문소에 적혀있는 오복동천자개문(五福洞天子開門) 때문이다. '자시에 스스로 열리는 문'? 이때 들어가면 몸에 좋다고 정감록에 나와있다고 하는데 정감록이라? 혹시 이곳이 그 책에서 말한 이상향? 여기가 아닐 텐데?


뭐, 정감록을 읽어봤어야 알지. 읽지 않았으니 모르겠고. 그냥 이곳을 넘어서면 좋은 곳이라고 믿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여기서 하나 더. 이곳에 흐르는 개천 이름이 뚜르내다. 뚜르내?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르는 개천. 우리말이 예쁘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17호라 한다.  



이제 떠나려는데 태백에 대한 생각이 복잡해졌다. 탄광도시라서 번영을 누리다 이제 퇴락한 도시라고 표현하려니 그러면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은? 여기에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발원지로써 태백은? 더불어 이곳이 한반도의 지질박물관이란다. 그것도 고생대에 형성된 곳? 더불어, 태백 인근이 아주 옛날에는 바닷가였다고 한다. 


석탄, 탄광 이런 단어만 생각하면 태백은 낙후되고 쇄락한 도시처럼 생각 들다가도, 이런 생각 대부분이 화가 황재형의 그림으로부터 소환된 과거지만, 현재는 나 같은 관광개들이 찾아오는, 그래서 감탄하는 도시. 과거와 같은 영화가 다시 올진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태백이 어느 한순간 쇄락할 것 같지도 않게 느껴졌다. 그래서 권하게 된다. 들러보시라고. 이것도 여행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SzyB2xBqkps&ab_channel=%EC%9E%A5%EA%B8%B0%ED%95%98%28ChangKiha%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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