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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문 Oct 17. 2022

늙을수록 진한 화장이 좋다.

강원 묵호 논골담길 : 묵호 여행

갑자기 웬 화장? 그것도 진한 화장이라니. 나이 들수록 원색 옷과 진한 화장을 즐겨한다,라고 말하면 틀릴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럼 진한 화장을 하는 젊은이들은? 아마 젊은 사람들이 진한 화장을 하면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될 텐데, 이는 굳이 화장을 심하게 하지 않아도 멋지고 예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건 바로 젊기 때문이다. 젊음이 바로 가장 좋은 화장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마음은 잘 모르지만, 몸은 표현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젊은 친구들은 무슨 옷을 걸쳐도 젊게 보인다. 노화가 달리 노화겠는가? 그런 차이점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드러나기 때문에 나이 든다는 그 자체가 그리 반가울 것 같지 않다. 물론, 이처럼 공평한 게 어디 있던가? 다 늙으니까. 심지어 오늘 태어난 아기도 하루하루 시간을 더해가니. 산만큼 살아온 그 시간만큼 똑같이 살았으니 신은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시간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한 건데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까?  화장을 자주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빨간 루주를 바르시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포인트다.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해도 젊어지지 않으니, 화장이 늙음을 대체할 수 있을까? 없으니 포인트가 맞을 것 같다. 화장 얘기로 묵호항과 논골담길을 얘기하는 것은 감춰진 속살 혹은 아무리 예쁘게 가꾸고 단장해도 지난 흔적을 달리 완전히 지울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게 뭐라도.

이곳처럼 감성을 느끼게 하는 곳이 여기만이 아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흰여울 문화마을 말고 울산, 수원 등등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점차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아서 잠시 보류하고 다시 논골담으로 돌아오자. 지금 묵호의 논골담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거쳐가서 인터넷에 올려놨으니 참고하면 될 텐데 그렇다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새로운 얘깃거리도 없는 것 같다.


 묵호가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나던 지역이기도 하고 인근 태백과 삼척에서 나는 지하자원을 일제강점기에는 물자를 빼내는 산업항으로써 묵호항이 그 역할을 한때 톡톡히 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묵호가 인근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요구도 충족해서 꽤나 잘 나갔던 도시였다는 얘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고. 생각해 보니 도시라는 게 사람 얘기 빼면 시체 아니던가. 듣는 시체 기분 나쁘겠지만 나빠도 시체인데 뭔 상관이람.

다시 포인트 얘기를 하면 그래 그 '포인트'다. 묵호의 포인트는 논골담길이다. 논골담? 무슨 뜻일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논골담이 '논두렁'의 사투리란다. 같은 뜻이지만 논골담과 논두렁의 어감 차이가 상당하다. 논두렁? 이 비탈길에 무슨 논두렁? 논이 있을 수가 없는데. 묵호가 오징어와 명태가 많이 나는 항구였는데 그 생선들을 어디서 말렸겠는가.


당연히 햇빛 잘 들고 바람 잘 통하는 언덕 그곳에 덕장이 필요했겠지. 그래서 덕장이 있는 그곳이 '바람의 언덕'였을 것이고 그 언덕에 오징어와 명태를 무수히 날랐으니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논두렁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골목에 장화 그림이 있었던 것이다. 장화의 용도가 비 오는 날 주로 싣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장화가 다르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보다, 멀리 동해와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 이런 사연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이곳에 왔는데 느낀 감회가 남다르다.

아마, 이곳 묵호도 한 달 정도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야 속 깊은 얘기를 체감하련만 그저 1박 하는 뜨내기 입장에선 눈으로나마 많이 보고 느끼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하나하나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동해시가 없었다. 1980년에 삼척의 북평읍과 명주군의 묵호읍이 합쳐져 얻은 이름이 동해라고 한다. 그럼 묵호는? 먹물을 담아놓은 호수라는 뜻의 묵호(墨湖)는 조선시대에는 <오이진(烏耳津)>이라고 했다나! 까마귀가 많고 사람 귀를 닮은 나루터? 누가 써놓은 글을 보니 묵호등대에서 내려다보는 묵호항이 사람의 귀를 닮았다던데, 어라 그러고 보니 그렇게도 보인다.


어쨌거나 오늘의 주인공은 묵호 논골담길인데 그곳에 가기 전에 잠시 묵호어시장에 들렀다. 논골담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묵호항에 있는 그곳. 나중에야 알게 확실하게 알았지만 그곳에서 산 횟감이 바가지를 쓴 것 같아 씁쓸하다. 하지만 이 또한 여행이 주는 풍미라면 또 그럴만했다. 일부 사람들이 속이고 속고. 그래서 알게 되는 것은 어항에서 횟감을 사는 행위들이 굳이 추억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때론 눈으로만 봐도 좋은 게 있듯이. 이게 묵호어시장에 대한 전체 인상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산 회감으로 회는 못 먹고 끝나가는 여름을 추억하려 물회라도 먹었으니 그저 감사... 아, 속이 쓰리다!!

논골담길은 3개가 있는데 어디부터 시작해도 다 연결된다. 만약 도로 밑에서 시작해도 걷다 보면 묵호등대와 바람의 언덕을 오를 수 있다. 골목길만 보면 그렇고 골목골목에 그려져 있는 벽화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묵호항이나 너른 동해를 보게 되는데 전체 규모는 그리 큰 듯하지 않다. 그저 산책 수준 정도. 그런 그곳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나 같은 사람부터 아침 일찍 등대 근처 슈퍼마켓 문을 여는 노부부까지. 시작은 논골담 3길부터 시작했는데 별 뜻은 없었다. 등대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묵호등대고 그래서 이미 떠오른 해를 보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들른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골목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열심히 일을 하신다. 비탈길 골목에서 무슨 일을? 비탈길 한편에 위치한 쪽 밭이라고 해야 할까 아주 작은 텃밭에서 일을 하신다. 아침부터 움직이시는 그분들을 마주칠 때 가볍게 인사를 드리는데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아니다. 어떤 분은 웃음으로 어떤 분은 말로써 같이 인사 나누는데 그냥 흡족하다. 도시 생활에선 보이지 않던 내 모습이지만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 신선한 바닷바람이 나를 그렇게 시킨 것 같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이곳도 그렇다.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논골담길 쪽은 고단한 묵호의 삶들이 보다 생생하게 전달된다면 묵호등대 쪽은 밝고 활기차 보인다.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쪽은 여름 한철이지만 하룻밤 잠자리가 20여만 원이나 하는 민박집과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놓은 카페들이 중심이다. 여기선 감히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를 쓰면 안 될 것 같다.


아침 그 시각에 벌써 가게를 열어놔서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주인이 안 보인다. 낮게 깔리는 음악이 주인을 대신했을 리는 없을 테고. 요즘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그냥 커피를 마시는가 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만큼 세상이 바뀌었다. 아, 그래도 그 한가함은 지불할 가치가 있다. 더 일찍 일어났다면 동해 일출도 볼 수 있었겠는데 게을러서... 사실, 피곤해서 그런 것이지만. 어제 너무 늦어서 바닷가에서 바라보기만 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주변 경치가 충분하다. 별다를 것 같지 않고. 어젯밤 산책 삼아 걸은 도째비골 해랑 전망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아침에 보는데 뜨는 햇빛에 반사돼서 더 멋있게 보인다. 어젯밤엔 바닷가에 알록달록 형광등이 제법 주변과 어울리는 해랑 전망대였는데. 걷는 내내 옆에서는 폭죽을 끊임없이 쏘아 올렸던 어젯밤. 그렇지 여름 다들 휴가 온 것이리라.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반대쪽 논골담길이 마음을 꽉 채우고 있다. 왜 그랬을까?  


이곳에 여행 삼아 그냥 바람 쐬러 온 것이기에 심각해지기 싫지만, 묵호등대 아래 올망졸망 꾸며진 카페들과 민박집들이 주는 아우라도 훌륭했지만, 자꾸 늙은 화장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아침부터 골목길 좁은 텃밭을 가꾸는 어르신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아님, 과거에 살던 달동네가 요즘은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변해서? 그저 지나가는 과객이니 굳이 논골담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과대 감정이입이 필요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잘 늙는 게 뭘까 생각이 들었다.

그거야 그때 가서 생각할 것이지만 나이 들수록 짙은 화장으로 어르신들이 지난 젊음을 대신하려 한 것은 아닐는지 생각이 든다. 세월 따라 늙은 듯한 논골담길, 이곳을 아무리 예쁘게 치장해도 지나온 세월을 다 감출 수 없듯이, 일부 보이는 폐가들이 어쩔 수 없는 이곳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화장하는 게 좋다. 이제야 짙은 루주를 칠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늙은 화장. 화장해서 더 돋보이는 늙음이라면 망설이지 말아야겠다. 늙을수록 진한 화장이 그래서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N50tNOnlRKk&ab_channel=Heize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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