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월요일 다음이 화요일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 사람들이 화요일을 좋아할까?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이다. 그다음은 토요일이겠지? 토요일과 일요일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빼고, 이렇다고 한다. 상식적이다.
그런데, 화요일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 요일이라고? 월요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 화요일. 굳이 그 화요일에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어령 교수를 만나서 책을 낸 기자가 있다. 왜 화요일이었을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Mitch Albom)이 자신이 나온 대학인 브랜다이스 대학 사회학 교수 모리 슈워츠 교수가 루게릭 병을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의 시발.미치 앨봄이 세계적인 에세이스트이면서 소설가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정확히는 기억에 없다. 언젠가 《8년의 동행》을 읽었던 것 같다. 왜냐고? 책장에 꽂혀있는데, 그렇다고 읽었을까? 책장에 있는 책은 읽으면 꽂아둔 책 들이니까 읽긴 읽은 것 같다. 언제, 두 권을 다시 읽어야겠다. 충분히 그럴만한 책들이다.
작가 미치가 대학 때 친하게 지낸 모리 교수를 다시 찾게 된 것은 미치가 느낀 '결핍'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살다 보면 느끼는 부족함. 그것을 채우기 위해 스승을 찾아가고. 그 멋진 순간들이 14번에 걸친 만남으로 기록된다. 형식이 대학 강의계획서(syllabus) 같다. 그 책 역시 주로 죽음에 관한 책이지만, 미치 스스로 밝힌 것처럼, 자기는 '죽음에 대해 쓰는 작가가 아니라 삶에 대해 쓰는 작가'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삶이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말고 지금 하는 것.' 이게 스승 모리가 남긴 교훈이라고 한다.
죽음이라. 그렇지.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함께 하는 것임을 우린 잊고 싶을 것 같다. 죽음은 결코 삶의 일부라기보다 함께하는데, 잠시 잊히거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때, 잊히거나 보이지 않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기에 때론 정면으로 죽음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살면서 주변 사람들 부고를 통해 이를 인지하면서도, 그럴 기회를 우린 상가집 가서 술 한 잔과 수다로 스스로 까먹고 오는지 모른다. 난, 아닐 거라고 잠시 잊는 거겠지. 다음 차례가 당신일 수도 있는데.
금요일도 아니고 화요일에 꽂힌 이유는 이 책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때문이다. 인터뷰 전문기자 김지수가 화요일마다 16번에 걸쳐 만났다고 하니, 4달에 걸친 만남일까? 저자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책이지만, 이어령 교수가 굳이 틀렸다고 지적할 것 같지도 않기에, 이게 이어령 교수가 죽기 전에 남긴 강의노트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역시, 이 책도 죽음이 트리거가 된다. 그러니, 마지막 수업이겠지. 더 할 수 없는 수업. 결국, 이어령 교수도 세상에 없으니, 그 수업을 이을 교수는 없지만 책이 남았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돈 생각은 '스승'이란 단어였다. 스승이라. 영어로 선생(teacher) 하면 감이 떨어지고, 멘토(mentor)가 맞는 것 같다. 교수(professor)라고 하면 다 스승이란 생각이 들까? 대학교수를 보통 스승이나 은사로 표현을 많이 하는데, 정말 자기 삶에 멘토 같은 대학교수가 얼마나 될까? 유교문화 때문인지 우리 단어에 거품이 많이 낀 것 같다. 대학원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굳이 느끼질 못할 단어 같은 은사나 스승이란 용어. 핵심은 살면서 인생의' 스승'이란 표현이 어울릴만한 정말 어른이 정말 있었는지! 우리 주변에 말이다.
화요일마다 스승과 제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나눈 대화록. 감동적이었다. 책에서 이어령 교수는 "애야 밥 먹어라"를 죽음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했는데, 정말 적절한 묘사다. 이어령 교수의 천재성이야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냥 살아가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면 밥 먹으러 집에 돌아가게 된다. 이거다. 집에 돌아가게 된다. 이때, 집이란? 우린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예수가 아니라서, 부활할 수 없으니. 누군가는 내세를 믿겠지만. 역시나,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
이어령 교수는 이미 자기 죽음 이전에 누구보다 사랑했던 자기 딸 이민아 목사와 그 딸의 아들의 죽음을 이미 겪는다. 그래서, 영성을 믿게 되는데, 경험하지 않고 믿었으면 좋으련만 이게 말같이 쉽던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2021》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기도 한다. "오래전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이게, 먼저 딸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건만. 어쩜, 인간 이어령은 이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뛰어난 지성이 먼저라서 한 박자 감성이 늦음을, 그것을 나중에 알아차리는.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인간 이어령이 높은 학식에도 감성은 뒷북치는 듯한 느낌은 이 책에서도 나온다. 이어령이 공개 강연에서 자기 죽음을 이야기할 때, 한 여학생이 추위에 떨며 주차장에서 기다리면서 돌아가시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그때 그랬단다. 어떻게 내가 죽음을 피할 수 있냐고 언성을 높였다는데, 실재 죽음을 앞둔 그가 그 여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가슴에 남는다고. 울고 떠나던 그 여학생에 죽음을 앞둔 이어령이 하고 싶은 말. 그땐 그랬어야 했다는 말.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이거다. 인간 이어령이 진짜 원했던 말. "나 절대로 안 죽어."
어느 날 밤에, 어머니 예후가 좋지 않아 살아계실 날들을 감안하던 날, 침상에서 주무시던 어머니가 숨 쉬는지 확인해 본 적이 있었다. 호흡이 있는지, 심장은 뛰는지. 그때, 눈을 감은 채 울 엄마가 했던 말이다. "걱정하지 마. 엄마 안 죽어"라고 그러셨었는데, 그런 엄마도 지금 이곳에 없다. 이게, 마지막 교훈이다. 그래서 신이 "얘야 밥 먹어라"라 하면, 알았어! 엄마! 하고 씩씩하게 답하고 맛있게 밥 먹으러 집에 들어가야겠다. '언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