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매장에서 나오는 이 쓸쓸한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대학생 때 구월동 신세계 백화점에 아빠와 갔어요. 그때 타임이라는 매장에 들어갔고 쭈뼛거리며 세일 코너에 있던 아이보리색 바지를 입어봤어요. 그런 태는 처음 봤어요. 선이 달라요. 그 옷은 너무 세련됐고 맵시가 있었고 내가 원래 입고 있던 상의.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 바지 앞에 있으니 상의가 너무 초라해 보였어요.
나는 그 바지가 갖고 싶었어요. 아마 아빠는 무리해서라도 사주었을 거예요. 근데 죄를 짓는 기분이었어요. 세일해서 십만원대였을 거예요. 나는 아쉬워하며 놓고 나왔어요. 그 매장 점원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백화점 매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 찝찝하고 쓸쓸한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난 몰랐던 것 같아요. 난 그때까지도 서민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요. 의미를 모르니 내가 서민이라는 것도 몰랐고요.
아마 아빠는 무리해서라도 사주었을 거예요. 근데 죄를 짓는 기분이었어요.
왜 이렇게 무거운 기분이 드는 건지, 몰랐어요.
그때는 벤츠의 삼각별 마크도 몰랐어요. 지나가다가 자동차에 그런 쇠 장식이 붙어있길래 독특하구나 하고 지나갔어요. 마치 어떤 조형물을 보듯이. 그 마크가 비추는 가격표는 모르고 지나갔고 생각조차 없었죠.
주안역 지하상가에는 만원 이만원 삼만원 사만원 가격대를 내밀며 들어와도 된다고 하는 상가들이 많았어요. 암시하는 것이죠. 너를 좀 아래로 누르는 것 같은 가격이 아니다. 가격 때문에 마지못해 “좀 더 보고 올게요” 같은 말을 에둘러대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그런 가게에서 만 원, 이만 원짜리 보물을 찾는 게 좋았고 마침내 찾으면 뿌듯했어요. 대학 졸업 연도 인턴 기간에 입었던 노란색 원피스가 생각나요. 하늘거리는 소재의 만원짜리 원피스였어요. 나시 원피스. 치마는 플레어라인으로 떨어졌어요. 그 옷을 입으면 얼굴에 빛이 나는 것 같았어요. 나는 스물세 살이었고 그땐 인지하지 못했던 젊음이 생글생글 영글어있었어요.
그 보물은 한 번 빨고 나자 망가져버렸어요. 바느질이 튿어지거나 옷이 틀어지면서. 왜 한 번 빨고 나니 옷이 망가지는 걸까. 그때 난 만원짜리라서 그랬다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냥 그 현상을 받아들인 거죠.
지금은 내가 왜 구월동의 백화점에서 쓸쓸한 기분이 들었는지, 작아졌는지, 서민이 무엇인지, 삼각별 마크에 대해서도 왜 그 원피스가 망가졌는지도 전부 알아요. 알게 됐어요.
인지하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 이상의 암시와 내포된 의미들을 읽고 싶지 않아도 읽어버리죠. 내가 의식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총체적인 안색을 봐요. 감각적으로 매치했는지, 소재감과 실루엣.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기 시작해요.
가끔 이름표와 가격표 어떤 태그. 꼬리표를 붙이거나 정의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았던 그때가 나는 그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