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밭의 귀인

밑바닥을 아는 사람만이 뻗을 수 있는 손

by 신주


4월의 변덕스러운 독일 비가 그치자,

난민촌 컨테이너 사이로 끈적한 햇볕이 비집고 들어찼다.


젖어 있던 공기가 마르며,

부엌에서 빵 굽는 온기와 알싸한 향신료 냄새가 뒤섞여 춤을 추듯 피어올랐다.


처음엔 낯설어 자꾸만 헛기침을 삼키게 했던 그 서먹한 공기.

시간이 흐르며 그 향기를 품은 이웃들의 치열한 생명력은 내 날 선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나도 모르는 사이 깊숙이 안착해 있었다.


아침이면 난민 학교 책상 앞에 앉아 딱딱한 독일어 문법을 머릿속에 밀어 넣었다.

칠판에 적힌 ‘데어(der), 데스(des), 뎀(dem), 덴(den)’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성벽 같았다.


하지만 진짜 공부는 학교 밖, 이 시끌벅적한 울타리 안에서 완성되었다.


이라크에서 온 이웃의 거친 손마디에서 ‘Arbeit(노동)’를 배웠고,

맨발로 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Lachen(웃다)’의 울림을 들었다.


서로의 모국어는 달랐지만,

우리는 독일어라는 공용어의 다리를 놓으며 비로소 서로의 안녕을 묻기 시작했다.


문법책 속의 죽은 단어들이 난민촌의 사람 냄새를 머금자, 비로소 내 혀 위에서 뜨겁게 살아 움직였다.


어느덧 사람들은 내 서툰 문장을 기꺼이 기다려 주었고,

나 역시 그들의 눈빛만으로도 다음 단어를 짐작할 만큼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여름, 대학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기 위한 언어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자신감이 차오르고 꿈이 선명해지던 그 찰나, 벼락같은 단어 하나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아차, 비자.’


순간 난민촌의 달콤했던 평화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허물어진 잔해 사이로 서걱거리는 공포의 모래알들만 가슴팍을 사정없이 긁어댔다.


이웃들의 다정한 환대에 취해, 나는 내 삶이 시한부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이곳은 허락 없이는 단 하루도 머물 수 없는 유예된 영토라는 것을.


내 꿈을 지탱하던 지반이 사실은 딛는 족족 무너져 내리는 갯벌처럼 위태롭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뼈아프게 마주했다.


비자를 연장하려면 세 가지 증명이 필요했다.

머물 곳, 배울 곳, 그리고 나를 책임질 누군가의 '돈'.


노동이 금지된 이방인의 통장에는 반드시 '보호자'의 이름으로 찍힌 송금 내역이 박제되어 있어야 했다.

내 쓸모는 법 앞에 지워진 채, 누군가의 선의를 빌려 생존을 증명해야 했던 유예된 삶의 증거였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낡은 통장을 펼쳤다.

마지막 숫자가 찍힌 날짜를 손가락으로 짚어보았다. 10개월 전이었다.

잉크는 이미 바래 있었고, 빈칸들은 나를 조롱하듯 허옇게 비어 있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작은 전등 하나가 주황색 빛을 게워내며 방 안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

그 평화로운 리듬 사이에서 오직 내 심장 소리만이 터질 듯 요동치며 이질적인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손바닥의 식은땀이 통장 겉면을 축축하게 적셨다.


그때, 곁에서 낮은 인기척이 났다. 그녀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젖은 손바닥에 엉겨 붙어 있던 통장을 투박하게 낚아챘다.


‘바스락, 바스락.’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내 마른 입술을 긁는 듯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그녀가,

마치 오늘 딴 딸기의 개수를 세듯 담담하게 입을 뗐다.


“내가 해줄게.”

찰나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의 입술에서 내 운명을 뒤바꿀 한 마디가 떨어졌다.


“내 이름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가 어떤 무게의 돈으로 세 아이의 내일을 지탱하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달 낱장으로 들어오는 보조금을 쪼개고 또 쪼개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남겨둔 것.


그것은 단순한 화폐가 아니라,

그녀가 하루하루를 버티며 갈아 넣은 작은 '생령‘ 같은 것이었다.


그 귀한 생의 조각들이 이제 이 고독한 이방인의 가장 견고한 방패가 되어,

내 마른 통장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적힌 송금 영수증을 품에 안고,

서류 준비를 마친 어느 아침이었다.


외국인청의 공기에서는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회색 벽면 위로 형광등이 ‘지지직’거리며 창백한 빛을 뿌렸고,

복도에는 국적 모를 침묵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술을 깨물거나 바닥의 먼지만 응시했다.

옆에 앉은 아이가 칭얼거리자,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입술 위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댔다.


‘쉬-.’

작은 목소리 하나도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위태로운 고요였다.

그 파편들이 내 목구멍에 걸려 숨이 막혀왔다.


“다음.”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쓱, 쓱.’ 서류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담당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기계적으로 두드렸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내 생사를 쥔 그의 무표정이 거대한 절벽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투명한 가림막 너머로 종이 한 장이 밀려 나왔다.


‘체류 연장 허가.’


순간, 폐부 깊숙한 곳에 갇혀 있던 공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삶의 끈이 비로소 느슨해지는 기분이었다.

어깨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 후우.”


“Danke…“

내뱉은 감사는 차가운 사무실의 공기보다 훨씬 더 뜨겁고 눅눅했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토록 나를 옥죄던 1년이라는 시간이,

이 얇은 종이 한 장에 담겨 다시 내 손바닥 위로 돌아왔다.


종이의 모서리가 손가락 끝을 찌를 듯 날카로웠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여전히 복도에는 간절한 얼굴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그 사이를 걸어 나오는데,

문 바로 옆에 엄마 손을 꼭 쥐고 앉아 있던 조그만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나를 보더니 ‘배시시’ 눈웃음을 쳤다.

그 찰나의 미소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지옥 같은 회색 복도에서,

방금 유일하게 ‘사선을 넘어 돌아온’ 사람의 얼굴을 보았노라고.


건물 밖으로 발을 내디뗐다

달궈진 광장의 공기가 훅 끼쳐왔지만,

내 폐부 깊숙한 곳에는 방금 베어 문 얼음 같은 안도가 서늘하게 고여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뜨거운 광장 한복판에 멈춰 서 있었다.


손에 쥔 종이는 바스락거리며 떨리고 있었고,

가슴속에서는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심장이 여전히 짐승처럼 거칠게 고동치고 있었다


딸기밭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

새벽이슬에 젖은 흙을 밟으며 붉은 것들을 따던 투박한 손.

그 손이 내 생의 가장 시퍼런 절벽 끝에서 나를 낚아채 올린 귀인이었다.


밑바닥까지 추락해 본 사람만이 안다.

말하지 않아도 누가 지금 허공을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손을 뻗어야 그를 지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무너져 내리던 내 삶의 텅 빈 밑바닥에 자신의 전부를 밀어 넣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헐거운 생의 틈새를, 그녀의 뜨거운 진심이 빽빽하게 괴어준 것이었다.


나는 그 단단한 사랑을 디딤돌 삼아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향해, 가장 정직한 한 걸음을 내디뗐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귀인은,
뜻밖에도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의 생을 떼어
나를 일으켜 세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