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단 하나, 시람만이 오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순간이 가장 위험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호텔 루프탑에 서면 프랑크푸르트의 심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럽중앙은행의 단단한 실루엣.
유리와 철골로 겹겹이 솟은 압도적인 마천루.
낮에는 정장을 입은 금융 엘리트들이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채우고,
저녁이면 그 은빛 수직의 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비단처럼 내려앉는다.
돈과 시간이 가장 치열하게 교차하는 도시.
바로 그 금융가 한복판에, 나의 서비스 아파트가 있었다.
2016년, 나는 이곳에 내 미래를 심었다.
가만히 있어도 수익이 쌓이는 완벽한 시스템,
모든 직장인이 꿈꾸는 '경제적 자유'가 손에 잡힐 듯했다.
포근한 침대와 루프탑, 24시간 컨시어지까지.
내가 설계한 것은 호텔 같은 집이 아니라,
타지에서 외로워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집 같은 호텔’이었다.
그런데 2020년 3월, 도시가 숨을 멈췄다.
비행기가 멈췄고, 화려하던 박람회 전광판이 꺼졌다.
오픈을 불과 며칠 앞둔 나의 아파트 앞에는 사람 대신 차가운 적막만이 고였다.
중세의 흑사병이 실크로드를 따라 느릿하게 대륙을 잠식했다면,
현대의 바이러스는 항공망이라는 혈관을 타고 단 몇 주 만에 우리의 일상을 도려냈다.
독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상점은 문을 닫았고 학교는 폐쇄됐다.
지난 2년간 '보안'을 이유로 지루한 논쟁만 벌이던 재택근무용 노트북을,
어제까지 안 된다던 직장인들이 하루아침에 줄을 서서 받아 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십 년간 요지부동이던 시스템이 단 며칠 만에 '뉴 노멀'로 재편된 것이다.
사회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누군가 확진이라도 되면 ‘마녀사냥’처럼 그 이름이 오르내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바이러스보다 더 차가웠다.
어느 날 밤,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긴박한 연락을 받았다.
내일이면 봉쇄될 사무실, 격리될 동료들. 나는 망설임 없이 차를 돌려 적막한 사무실로 향했다.
주인 없는 책상 위에서 동료들의 노트북을 하나하나 챙겼다.
내일 당장 생계가 걸린 업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나는 어둠을 뚫고 집집마다 노트북을 배달했다.
비상등을 켜고 텅 빈 아우토반을 달리며 동료들의 안부를 확인하던 그 밤,
내 가슴속엔 기묘한 사명감이 일렁였다.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을 지키는 기둥이 된 기분.
하지만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나의 호텔 로비는 서늘했다.
웃음소리로 북적여야 할 그곳엔 온기 대신 텅 빈 고요만이 감돌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나, 단 하나 '사람'만이 오지 못한 공간.
그 적막의 한가운데서, 나는 문득 아버지를 떠올렸다.
평생 여행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길 위에서 타인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안으셨던 나의 아버지.
2년간의 논쟁을 잠재운 노트북보다, 결국 사람의 온기가 닿아야 비로소 공간은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을.
나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이 차가운 로비에 홀로 서서야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 다음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