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인했다

“내일 오시면, 이것도 없습니다.”

by 신주


부동산 계약서 앞에 서면, 사람은 숫자보다 먼저 자신의 ‘생’을 계산하게 된다.


시행사 상담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몇 층인지, 창밖으로 어떤 풍경이 걸리는지,

아침의 볕과 저녁의 노을이 그 방을 어떻게 채우는지...

그 미세한 차이가 곧 냉정한 수익률로 환산되는 찰나였다.


총 6층, 345개의 객실.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절반 이상의 도면 위에는 붉은 '예약 완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개뿐.

5층과 6층, 스카이라인을 품은 가장 작은 원룸이었다.


거대 자본가들이 이미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월급쟁이인 나의 속도는 늘 한 발짝 늦었다.


“오늘 결정하지 않으시면, 내일은 이것조차 없습니다.”


상담 직원의 담담한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뒤를 돌아보니 대기자들이 초조하게 줄을 서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굳어버린 순간, 20년 전의 기억 하나가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1997년의 그 뜨거웠던 여름이었다.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나의 세상은 완벽해 보였다.

에이전시가 준비해 준 비자와 항공권, 아늑한 아파트와 어학원까지.

하지만 그 완벽함은 채 석 달을 버티지 못했다.


IMF. 신문 속의 건조한 세 글자가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실존이 되었다.

월세 기한은 다가오는데, 지원금이 끊긴 통장은 무서우리만큼 조용했다.

나는 좁고 눅눅한 공중전화박스 안으로 숨어들었다.

동전 대신 콜렉트콜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더 이상… 너 유학 지원 못 해.

미안하다. 한국으로 돌아와라.”


그날, 나는 돌아가는 길 대신 독일에 남는 길을 택했다.

온실 속의 장미에서 비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들판의 잡초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 절박한 순간.


그날의 서러움과 오기가 계약서 앞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복잡한 계산기는 치워버렸다. 대신 내 안의 지독한 직관을 믿기로 했다.


실패하면 뼈아픈 배움이 될 것이고, 성공하면 찬란한 성장이 될 것이다.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다.

나는 펜을 쥐었다. 구매의향서 위에 나의 이름 석 자를 꾹꾹 눌러 적었다.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울먹이던 스무 살의 소녀는,

그날 마침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건 수익률 계산이 아니었다.

결정의 순간, 여기까지 모진 풍파를 견디며 걸어온 '나'를 온전히 믿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고 화려한 오픈식을 준비하던 그 찰나,

세상 전체가 거짓말처럼 멈춰 섰다.



- 다음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