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늘 길 위에 있었다

멈춘 여행 앞에서, 나는 아버지를 다시 떠올렸다.

by 신주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여행은 장소를 보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다. “


나의 유년기는 그 말의 배경음악 속에서 흘러갔다.

빛바랜 앨범 속 나는 언제나 커다란 관광버스 옆에 서 있었다.

이름 모를 도시에서 온 낯선 이들의 웃음소리에 섞여,

나는 지도 위의 선보다 사람의 온기를 먼저 배우며 자랐다.


아버지는 공기의 흐름을 읽는 분이었다.

버스 안의 적막이 무거워지기 전 농담을 던졌고,

여행객의 불만이 터지기 전 그들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졌다.

그런 아버지가 열여덟의 나에게 덜컥 무거운 티켓을 건네셨다.


“호주, 뉴질랜드 9박 10일. 이번 팀은 네가 맡아라.”


설렘은 찰나였고, 책임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아버지의 버스 옆에서 보낸 세월 덕분일까.

나는 금세 손님들의 표정을 읽었고, 로컬 가이드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일정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최연소 가이드라는 자부심이 차오르던 그때,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고요하던 숲 속 호텔이 일순간 비명과 소란에 휩싸였다.


수영장에서 손님 한 분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이다.

평화롭던 푸른 숲은 경찰차의 붉은 경광등으로 번뜩였다.

열여덟 소녀 가이드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떨리는 손으로 한국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는 시리도록 침착했다.


“당황하지 마라. 경찰 대응 잘하고, 남은 손님들 끝까지 잘 모시고 와라. 나머지는 이 아비가 책임진다.”


그 담담한 한마디가 무너지던 나를 붙들었다.

그날 밤, 아무도 들어가길 꺼리던 차가운 호텔 방에 나는 혼자 들어갔다.

고인이 남긴 젖은 옷가지와 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정리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여행이란 근사한 풍경을 파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생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임을.


2020년, 세상이 멈췄다.


비행기는 날개를 접었고, 내가 정성껏 준비한 호텔은 텅 빈 동굴처럼 변했다.

적막이 고인 로비를 서성이며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이 공간은 대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 질문의 끝에서 만난 얼굴은 역시나 아버지였다.


나는 1년을 버텼다.

아니,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책임감’으로 내 공간을 지켜냈다.


2021년 봄, 프랑크푸르트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을 때 방들은 무서운 속도로 채워졌다.

금융가 엘리트부터 유럽을 유랑하는 여행자들까지.


그들은 단순히 '체크인'을 하는 게 아니라 고단한 하루의 '도착'을 알렸고,

‘체크아웃'이 아니라 아쉬운 '이별'을 고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파는 것은 하룻밤의 숙박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이 무사히 머물다 갈 수 있는 '안식'이라는 것을.


아버지는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났고, 나는 공간 안에서 사람을 만난다.


방법은 달랐지만, 우리가 가리키는 방향은 같았다.



결국 모든 공간은
사람의 이야기로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나의 아버지,
그 길 위의 거인에게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