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설과 추석에 여전히 차례를 지낸다.
언젠가부터 비난의 대상이 돼버린 문화이지만
내게는 사촌과 만나 놀 수 있던 날, 나이 먹고는 일 년에 두 번 부모님과 도란도란 둘러앉아 얘기 나누는 특별한 날이다.
2년 전 설에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나 떠나고 나면 제사는 1년에 한 번만 지내고... 챙기면 돼"
그 새 어머니는 가로막으며 얘기하셨다.
"애들 제사 안 지낼 거야. 절에 위패만 올려줘."
울타리 너머에 고여있던 시간이 왈칵 쏟아 넘쳤다.
나와 부모님의 시간은 나란하지 않구나. 시간은 가는구나.
아버지는 어쩌면 매년 차례상 앞에 엎드려 남겨진 시간을 세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들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년의 삶이란 무엇일까? 더 이상 변화시킬 것이 남지 않은 힘없는 마음일지, 해방되고 여유로운 마음일지 짐작 가지 않는다.
자녀들이 잘 성장하여 가정을 꾸려 모이는 날의 기쁨과 손자, 손녀를 보며 느끼는 흐뭇함이 당신의 온전한 삶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빼곡한 1년의 하루를 채우는 기쁨에는 턱없이 부족할 듯하다.
아버지는 성실하지만 무뚝뚝하게 대화 없이, 함께 놀아준 기억이 없는 분이다.
그랬던 분이 나이 들며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아버지는 마땅한 취미거리 없이 지내오신 분이다.
하지만 집에 찾아뵐 때면 어린 손주들이 마음껏 놀 수 있게 침대 아래까지 늘 꼼꼼하게 치워두신다.
갑작스레 내가 아버지 앞에서 수다스러워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나이,
그 즈음에 아버지가 참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