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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Jul 09.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감상과 창작

AI시대에 남겨질 것들

 그 날은 수업 시간에 강사 분이 다른 수강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AI 시대가 와서 광고용 음악이나 사진, 일러스트도 모두 대체되고 있네요. 얼마 전에 공모전 수상사례 기사도 보셨을 거구요. 이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하게 될까요?"


 미술 전공의 강사분도 일종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게, 무엇이 남게 되는 것일까?


전시회 vs 미술수업


 미술 감상은 수동적이다. 우리 뇌에는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볼 때 활성화 되는 영역이 있는데 보상과 쾌감을 처리하는 중요한 부위라고 한다. 시각적 자극을 수용하며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일종의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반면, 창작 과정은 능동적이다. 그리기는 집중력과 주의력이 요구되어 전두엽을 활성화 하며 창의적 사고와 수행 계획 수립을 가능하게 한다. 작업을 완료한 성취감은 만족스러운 전시감상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을 준다. 

 또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떠올린 이미지를 그려가는 붓질 속에 과거의 경험이나 감정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기억 관련한 뇌의 부위가 활성화 된다. 동시에 붓질이라는 물리적 행위는 신체를 감각하는 운동피질 또한 자극 된다.

 결국 우리는 나의 서사를 인식하고 실재함을 확신한다. 보다 발전한 기술이 만들어 낼 음악과 영상도 미술활동 과정의 체감은 대체하지 못할 것이다.


남는 것들: 체감과 내적동기


 그러나 생계활동은 '체감'의 활동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내 경우도 정식 수업은 한 주에 3시간만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우리는 모두 필요성으로 스트레스 아래서도 생계활동을 이어간다. 반면 미술수업과 같은 체감활동은 보장되지 않고 쉽사리 꾸준함을 잊는다.


  결국 '내적동기'의 발견이 필수다.

 

 내적동기가 있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의미를 획득한 많은 작품들처럼 시대를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보통 우리는 감각하되 표현할 언어를 갖고 있지 않다. 그 좌절은 매우 크기에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상징적으로 피 묻은 고깃덩어리로 언급하고는 한다. 


 그 불가능함의 체험이 '체감'이다.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 또한 '체감'이다.  무엇이 남게 될까? 개인의 시간, 우리의 시간, 지금의 시간을 연결짓는 서사를 발견하는 것이다. 소위 회사에서도 나와 동료와 시장의 시간을 연결지어 어려웠던 일이 조금씩 풀려나갈 때 언어가 되지 못한 무엇을 우리는 체감하고는 한다. 


 내일은 동료를 둘러봐야겠다. 시간을 되짚어봐야겠다. 온전히 하루를 체감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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