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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Jul 16.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본래 원했던 것

광원과 좁은 틈, 해와 나뭇잎 사이


 미술 수업 시간이었다. 노상 카페 바닥위의 햇빛을 그려보고 있다. 강사는 왜 바닥에 동그란 빛의 상이 맺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의 좁은 틈은 빛의 광원을 반대쪽에 동일하게 나타나도록 하는 역할을 해요. 카메라처럼 빛이 좁은 틈을 통과하면서 상을 맺게 되는 원리처럼 생각하시면 돼요.”

 그 말을 들으며 부쩍 오래 전 자신을 뒤적여보는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정년을 앞둔 사람들,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한 동료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 모두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을 생각했던 것인지, 어떤 종류의 재미를 앞으로 찾아봐야 할지.


 나도 광원에 가까웠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멀리 떨어졌었지만 좁은 틈에 다가가려고 애써 걸었던 시간, 틈에 다다라 현기증이 날 정도로 꾸역꾸역 머리를 밀어넣었던 시간, 뒤를 돌아봤지만 다시 고개를 돌려야 했던 시간들.

 그러나 어느 순간,  좁은 틈을 지난다. 너무나 순조롭게 틈새에서 밀려나와 벽 앞에 선다. 그제서야 그 위에 비친 광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 광원이 무엇이었는지, 출발점에 무엇이 있었는지 본인 외에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서로 나눈다.


 후회. 조금이라도 가까웠을 때 광원을 살펴봤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바닥에 비친 빛의 점들은 하나가 아니었다. 작은 원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겹치거나 흐뿌려져 있었다. 또다른 상념. 어쩌면 광원은 하나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상념에서 나와 사진 속 그림자 사이의 밝은 형태를 따라 채워나갔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돌바닥에 찍힌 흰 점들은 빛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의 눈처럼 보일 뿐이었다. 방법을 고민하며 인터넷을 찾아보니 여러 글에서 동일한 조언을 하고 있었다. '배경이 어두울수록 빛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는 말이었다.

 나보다 훨씬 앞서 줄줄이
 틈새로 흘러간 어둠을 상상했다. 벽에 닿아 짓뭉개져단단하게 굳어버려 긁어낼 수 없는 어둠들.

 하지만 그 어둠이 없었다면 광원에 대한 의문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날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평소보다 이르게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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