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증상] 압도감

by 프랭크


기다란 그림자 막대 하나가 내 앞에 드리워 있다.

그 끝을 바라보니 나무의 밑동이 보인다.

올려다본다.

굵은 가지가 부채꼴로 펼쳐져 있다.

그 끝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그 끝에서 또다시 가지는 끝없이 반복하여 펼쳐져 있다.


올려다보기 어려워 뒤를 돌아본다.

부풀어 오른 가지들이 까맣게 뒤엉켜 내 바로 뒤에 절벽같이 아득한 검은 구멍으로 드리워져 있다.


압도감,


매일 링크드인을 켜면 가지는 그만큼 늘어난다.

이메일함의 구독한 뉴스레터를 보면 새로운 가지는 또 자라난다.


하지만 오늘을 위해 또 정보를 수집한다.

매일 SNS를 켜고, 새로운 기술을 볼 때마다 가지는 화살처럼 뻗쳐오른다.


짓눌린다.

덮쳐와서 곧 나를 집어삼킬 만큼 드리워진다.

나무 아래서 잔뜩 웅크린 채 개미처럼 껍질을 부여잡는다.


쏟아지는 기술과 빠르게 공유되는 글과 해석들. 그것을 빠르게 소화해 내는 사람들.


매일 자라나는 가지 하나하나씩을 언제 오를 수 있을까.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바닥의 물은 매일 차오르며 오를 것을 강요하는데 어디로 갈지 모른다.




오전 9시,


급한 마음과는 달리 시작은 미루어진다.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 좌우로 왔다 갔다만 한다.

혹시 나무를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높이에서 맴돈다.


그 사이 나무의 밑동은 물에 잠겨 사라진다.

조금은 올라가야 살아남는다.




오후 2시,


압도감은 시작이 아닌 일하는 하루의 중간에도 발현한다.


일은 하지만 이미 생각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한 갈래 길은 업무에 머문다.

다른 갈래 길은 멀리서 나를 조망한다.

나는 온종일 사소한 일, 사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일만 만지고 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내게 주어질 미래, 텅 빈 미래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미래는 다른 길의 나에게 일의 의미를 묻는다.


결국에 두 일은 만날 것이라고

그리고 끝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라고 점차 물길을 끌어간다.




오후 5시,


서서히 풀려난다. 머리가 맑아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날 해야 했던 일은 마치지 못한 채 이것저것만 뒤져본 채 진도를 나가지 못한 상태다.

'오늘의 할 일' 5가지 목록 중 2가지만 마친 상태다.


익숙하다. 어제와 같다.

그리고 이제 목요일이다. 내일 한주가 끝난다.


아쉬운 마음으로 파편같이 남은 작은 일들을 마무리한다.

포기해서 그런지, 마음이 차분해서인지 조각들이 빠르게 주워 담긴다.




오후 10시,


하루를 회고한다. 나는 집중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새벽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하지만 매듭을 잘 짓지 못한다. 마무리를 위해 시간을 퍼붓다 보면 점차 시간 감각을 잃는다.


결국 끝은 흐지부지하게 막을 내린다.


고단하다. 손에 남은 것이 없어 손이 시리다.

압도감의 다음은 자책이다. 이것마저 익숙한 자신을 한번 더 자책한다.




우연히 <나는 내가 고장 난 줄 알았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ADHD를 겪는 작가의 고백을 담은 책이다. 나는 그 병명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책 속에 묘사된 '압도감'이라는 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병의 유무를 떠나, 내가 겪는 이 막막함의 정체를 밝혀줄 설명이 거기에 있었다.


작가는 압도감을 단순한 무능력으로 다루지 않을 것을 전한다. 정의를 바꾸어 뇌의 과부하이자, 복합적인 신호로 바라보라고 전한다.


배고픔이나 수면 부족 같은 생존의 욕구를 무시한 채 달렸을 때, 모든 선택지가 중요해 보여 '분석 마비'에 걸렸을 때, 그리고 완벽하게 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시작을 막아설 때. 그 안에서 현실의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 실인' 상태일 때.


이 모든 엇박자가 뭉쳐 거대한 공포가 되어 덮치는 것이라 한다. 게으름이 아니라, 잘하고 싶어 긴장한 뇌가 퓨즈를 끊어버린 상태. 그것이 내 압도감의 실체였다.


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으로 '뇌의 모드 전환'을 이야기한다. 생각(내정 상태)의 방에서 걸어 나와, 당장 몸을 움직이는 행동(과제 수행)으로 넘어가라는 것이다. 불안을 다루는 심리학에서도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문제를 쪼개고, 당장 하나만 하라."


하지만 안다. 내게는 그 단순함이 가장 어렵다. 이 일은 저 일과 연결되어 있고, 저 일은 또 다른 가지와 얽혀 있다. 하나를 건드리면 숲 전체를 흔들어야 할 것 같은 강박. 그 거미줄 같은 생각 속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나의 머릿속이었다.


그때, 작가가 건넨 또 다른 문장이 나를 잡아끌었다.

"자신의 역량에 정직해져라."


어떤 이유로든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들,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고, 내 그릇이 찰랑거리지 않을 만큼만 담으라는 조언.




오전 0시,


맞다.

그렇게 작은 일 하나를 손에 넣으면,

생각보다 그 나무의 크기는 수십 배 작게 쪼그라든다.


시야에 들어온 키가 작아진 나무 덕에 초록빛 잎을 달고 있는 가지는 두 가지 정도밖에 없었음을 깨닫는다.

오늘 아침 그 많은 가지 중 두 가지 정도만 기억할만한 얘기였구나를 깨닫게 된다.


여러 번의 비슷했던 경험들이 그제야 떠오른다.


잊지 않기 위해 기억에 한번 더 접어 넣는다.

잊을까 싶어 마주한 나무에도 새겨 넣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