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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May 19.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일의 속도와 정확성

미술수업 - 배치와 묘사

오늘 미술 수업에서 캔버스에 그린 얼굴이 사진 속 사람과 유달리 많이 달랐다. 인상이 일그러졌지만 어디가 틀렸는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죠. 사람 인상은 눈 코 입 모양보다 배치와 공간, 눈코입 각각의 모양이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떨어뜨려놓고 보면 눈코입이 예쁘지 않은 사람 찾기가 더 어려워요. “


 강사분의 이 말은 집에서 따로 그림 연습하면서도 느꼈던 부분이다. 같은 눈코입이라도 약간의 간격만으로 조화가 깨지고, 배우의 얼굴도 눈간격의 미세한 차이만으로 그 빛을 잃는다. 지난번은 3시간을 눈 모양 세부묘사에 매달리다 포기했다. 그렇지만 강의 영상들을 보면 눈썹과 얼굴 윤곽만 선으로 그어도 '아, 그 사람이다' 느껴진다.


 내 일처리 방식도 가끔 쓸데없는 디테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정작 빠르고 효과 있게 진도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완료를 했음에도 그 결과가 미미하여 낭패스러울 때가 있다. 공간으로 문제를 파악하여 해결. 우선순위와 문제 정의의 중요성이 수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강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였다.

" OO님이 유화 그릴 때 보여주는 붓터치는 확실히 감각이 있어요. 툭툭 그어진 선들인데 어찌 보면 많은 그림을 그린 뒤에야 얻게 되는 붓터치 이기도 하거든요. 위에서 얘기한 위치와 세부묘사를 기본기로 확실히 닦아두었으면 하는데, 보통 그 뒤에 다시 지금의 감각으로 돌아오지 못하더라고요. 앞으로도 현재의 장점을 가져갔으면 하는데 수업 내용에 고민이 되는 지점이에요."


 이 말을 듣고 '속도와 정확성'이 먼저 떠올랐다. 대부분의 회사업무가 요구하는 것은 '속도와 정확성'이다. 이를 우리는 ‘일을 잘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매일 반복 중에도 발전시킨 업무처리, 다져간 기본기 위에 가능하다. 이를 체득하고 있는 동료들을 볼 때면 경탄한다. 나로서는 체질적으로 안 되는 것일까 의심이 들 정도로 체득하지 못한 영역이다. 향후 2년은 일부러라도 이 부채를 해결하고자 업무를 조정하였고 집중하는 중이다.


 반면 내가 동료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얻는 부분은 분석적/비판적 사고다. 과제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어디서부터 누구에 의해 흘러온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가해야 하는지, 회사 내부를 떠나 바라본 시장에서의 가치는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를 따져본다. 그러면 꼭 해야 할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가 드러나고 타 업무와 어떻게 연계된 과제인지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은 경영진이 가질 고민이지 업무 담당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은 보통 아니다. 그리고 생각이 이어져 일과 삶을 뒤섞어 버리기에 개인에게도 득 보다 실이 더 크다.


 결과적으로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금은 일부러 분석적/비판적 사고를 무시하고 속도와 정확성을 얻는데 노력하고 있다. 계획한 2년 뒤에 내게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할 수 있을까? 그 시점에 시장은 어느 쪽에 더 가중치를 부여할까?


 오늘도 미술 수업에서 생각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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