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에 빠진 랭보와 베를렌
1.
이것은 문학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그와 그에 관한 얘기이다. 그 둘은 어느 시간의 짧지 않은 한 때와, 어느 공간의 좁지 않은 부분을 함께 나누었고, 같은 침대에서 뒹굴었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같이 밥을 먹으며 낄낄 떠들어댔고 같은 화장실에서 찌꺼기를 배설하였다. 때론 같이 술에 취해 휘청거렸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조막만 한 에스프레소 커피잔을 앞에 두고 창 밖에 떨어지는 파리의 빗물을 울컥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육체적 쾌락을 함께 탐닉하였으며, 문학적 쾌감을 서로에게 쏟아내었고 문학적 논쟁으로 싸움질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였지만 날카로운 입술의 파편으로 서로의 영혼을 할퀴어대었다.
이 이야기에는 그런 그들을 이해하고 두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음을, 그들을 향한 눈빛에 편향된 애정이 서려 있음을 애써 가리려 하지 않겠다. 그래서 랭보와 베를렌의 관계를 부정적인 눈빛으로 깔아보고 있는 이라면, 글줄 좀 읽었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이 세상 통념의 범주에 갇혀 있는 그 또는 그녀라면, 여기에서 글 읽기를 멈추는 것을 권유한다. 천재는 세상의 모든 이성적 판단에서 면제되는 것이니깐.
2.
베를렌, 그가 랭보의 시를 만난 날, 운명의 그날, 그의 영혼 깊숙이 숨어 살아가던 문학적 외인성(外人性)은 이성이라는 차갑고 날카로운 통념의 길에서 그를 내려서게 만들었다. 그날 그가 지나가야만 했던 숲 속의 오솔길에서 만난 것은, 눈물 날 것 같이 파란 하늘이었거나 몸을 웅크려 피해야만 하는 광폭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생각하고 사랑을 나누던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파리라는 도시는 천하지만 나름의 고결한 공간적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변덕스러운 속성을 도도한 매력으로 품은 파리는 문학적 갈증과 삶의 경계에서 내면의 본능에 기대어 길을 찾아야만 했던 그를, 위태로운 외줄 위에 세웠을 것이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이다. 천재 베를렌은 랭보라는 무명의 어린 시인에게서, 자신과는 다른 시적(詩的)인 천재성을 발견하였다. 랭보의 매력적인 시를 만난 날, 베를렌의 영혼은 문학적 애정을 넘어 감성적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연이어 발생한 물리적 강한 끌림에 그의 사랑의 행보는, 거침없는 파도처럼 그칠 줄을 모르고 랭보를 향해 밀려가게 되었다.
랭보는 베를렌의 초청으로 언제든 황홀함과 타락을 나눌 준비가 되어있는 악마의 도시 파리에 도착한다. 세심하면서 주저함 없이 대담한 십 대의 미소년 랭보를 만난 그때, 베를렌의 영혼은 완전한 일식에 빠져버린다. 그날, 그 둘 사이에서 일어난 일식에 대해, 누가 태양이었고 누가 달이었는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질 않다.
천문학적 자료 어느 곳에서도 그날의 물리적 일식에 대한 자료를 찾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베를렌의 이성이 랭보에게 완전히 잠식당하여 이성의 빛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베를렌과 랭보, 이 두 남자는 문학적으로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서로를 탐닉하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소통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3.
뭔가 나눌 것이 있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급격히 가까워지게 하는 법이다. 문학적 애정이 육체적 애정으로 발전하는 것은(이것에 대해서는 발전이라 보지 않고 타락이라 보는 시야도 있다) 어색한 얘기만은 아니다. 하지만 베를렌과 랭보, 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였던 애정에 관해서는 좀 더 극적인 요소가 결합된다.
그들이 남긴 남자와 남자 사이의 집착적인 애정 행각은, 그리고 그것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파국은, 그들을 사랑하는 후일의 문학인들에게 영원한 얘깃 거리가 되었고, 실제 그들 사이에 있었을 팩트(facts)라는 것에, 왠지 그랬을 것 같은 추측과 상상이 살을 붙여 제법 커다란 덩치로 불어나게 된 것이다. 그것에 문학과 휴머니티가 적당히 가미되어 새로운 글이 되기도 하고 영화의 소재로 각색되고 있는 것이다.
왜 태양과 달은, 서로가 서로를 가리는 관계에 있는 것일까. 그들을 숭배하는 인간을 두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너무나도 짧지만, 그들을 그들 자신 권능을 확인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서로가 서로를 가리는 것은, 달과 태양이 그리하는 것처럼, 짧을수록 좋은 것 같다. 그래야만 상처를 덜 남기게 되니.
하지만 랭보와 베를렌은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나 보다. 그들의 다툼은, 그들의 서로에 대한 권능의 주장은, 인간의 시간으로는 너무나도 길었기에, 끊어진 다리를 향해 돌진하는 기관차처럼, 멈추지 못한 채 결국에는 파국이라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파리는 뉴욕과 멀지 않다. JFK 공항에서 에어 프랑스에 올라 7시간의 비행이면 샤를 드골 공항에 발을 디딜 수 있다. 그렇게 지금까지 파리를 찾았던 것이 10여 차례는 되는 것 같다.
랭보와 베를렌의 추억이 있는 파리가 그립다. 그들이 애정을 나누던 파리의 돌길이, 좁은 골목길이 아스라한 날이다. 짐을 꾸려 공항으로 다시 나가볼까. 파리의 하늘에선 지금도 태양이 달을, 달이 태양을 가리고 있을 것만 같다. 너무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질 않는 법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