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의 그 해, 여름이 저물어가던 계절의 끝 무렵에 오대산의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오르던 날의 일이다.
막상 배낭을 짊어지고 출발하려니 걸음을 붙잡아 늘어지던 일 몇 가지를 해결해야만 했고, 결국 예정보다 늦어진 출발은 정상인 비로봉에서 삼사십 분 덜 오른 허리 굽은 산 능선에서 깊은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인 한 둘이 겨우 지나다닐만한 좁은 등산로에는 메고 오른 텐트 하나 펼칠만한 공간이 없었고, 계절로는 아직 여름이라곤 하지만 계곡을 타고 오른 골바람과, 거칠 것 하나 없이 불어오는 하늘 바람은 밤새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 차가움의 정도는 혹여 높은 산 능선에서 늦은 여름의 하룻밤을 지새워 본 이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배낭에서 끄집어낸 가을 점퍼 한 장으로는 그 차가운에 맞설 수 없었기에 펼치지 못한 텐트와 비막이 천조각을 궁여지책 삼아 온몸에 칭칭 감은 채로 선잠을 꼬박거리고 있었다.
체온을 지키려고 애벌레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머리 위에 펼쳐진 검청빛 밤하늘에 무수하게 박힌 별들과 레이스 커튼처럼 하늘하늘 쳐진 밤 구름,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아득한 검은 우주에게 눈과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그 느낌이란 건 차마 말에 담아 표현하기에 어렵지만 그보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그 날카로운 긴 밤을 대체 어떻게 난지도 모르게, 어느 사이 새벽 동이 발아래에 겹겹이 펼쳐져 있던 산자락 사이에서 떠올랐다는 것이다.
언제였는지,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게, 구름 장막 사이 별을 세며 꿈과 현실의 앞뒤를 오가며 깜빡깜빡 조는 사이, 그 밤은 그렇게 스물 하나 사내의 곁을 지나간 것이다.
그날 이후, 다시는 그날의 초롱한 별빛과 밤의 뽀얀 구름, 아득한 검은 우주를 볼 수 없었지만 그 밤이 떠오르는 날이면 잉카의 어느 산 능선에 혼자 올라, 깊은 밤을 비박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에 대해선 알 길 없지만, 그날 그 오대산 능선에 남겨둔 추억의 실타래에서 가늘게 뽑힌 실 한 끝이, 아마 잉카의 어느 계곡을 불어가던 바람을 따라, 그 산 능선에 불쑥 오른 것은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따름이다.
나에게 그 산 능선은 언젠가 꼭 찾아야 할, 설사 이것이 또 다른 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어떻게든 올라야만 할 곳임에 분명하다. 아직 손 끝에서 팽팽하게 진동하고 있는, 풀려나간 이 실을 따라나선다면 분명 그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며, 풀려버린 실을 다시 감 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 산 능선이 어디인지를 마음의 커다란 지도에서 꼭 집어 헤아려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