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지난다

반환점을 지난다



1.

허 여기까지이다

이젠 돌아가야만 하나 보다


출발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도

어느덧 반환점에 도착했다고

지나가던 바람이 속삭인다


지난 길을 돌아보면

고개 돌려 외면해야 했던 것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어차피 기억 잃은 저 길은

이젠 낯설고 어색해진

멀고 먼 길일뿐이다



2.

아직 남아 있다 한다

그러니 지나온 길에게

더 이상 의미를 두지 말아야겠다


걸음 돌릴 준비는 진즉에 마쳤다

돌아간다는 것이

애써 지나온 길을 다시 걷는다는

잔인한 짓일랑은 아니기에

반환점은 새로운 시작점인 게다



3.

시작을 알고 있는 이 반환점은

지나온 저 길의 목적지였지만

시작을 알 수 있는 이 길은

새로운 길의 출발지인 게다


가다 보면 저기 어디쯤에서

새로운 반환점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지금 몰라도 좋다

애써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때가 되면 그곳은

가슴이 알아차릴 것이고

그곳에서 나아가야 할 길은

영혼이 찾아낼 것이다


해 뜨길 뜬 눈으로 기다려

새 길에 새 걸음을 나서야 할 때이다



4.

반환점이란 게 전환점이라 해도 좋겠다. 가다가다 어느 한 점에서 걸음을 돌리면 그곳이 바로 반환점이 된다. 180도를 돌리든 90도를 돌리든, 44도를 돌리든 77도를 돌리든, 얼마만큼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든, 반환점은 머리와 가슴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방향을 바꾸도록 하는 곳이다.

돌린다는 것이, 지나온 어느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출발할 때 돌아올 것을 기약하지 않았으니, 그곳은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기억 없는 출발점은 어차피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돌아간다. 돌아갈 곳을 정하진 않았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걸음 돌려 걷고 있는 이 길이 오늘 하루의, 어쩌면 남은 삶 동안의, 출발을 기억할 수 있는 첫 길이자 마지막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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