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자유로운 철학자, 스피노자를 생각한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철학자, 스피노자를 생각한다



1.

길을 가다 보면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출발했던 그곳이 바로 옆에 있음에 놀라게 되는 때가 있다. 스피노자, 그가 다시 나의 곁에 서있다. 그를 알게 된 후 수많은 시간의 토막을 흘려보냈건만, 그랬다고 믿어왔건만, 그가 아직도 거기에 그대로 서있다니,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중얼거림일지라도 몇 마디 입 밖으로 뱉어 내어야만 그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것들이 풀려날 것 같다.


그를 알게 되었던 스물의 그 시절엔, 그가 심으려 했던 것이 사과나무이었건 배나무이었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말을 그가 남긴 것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건,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사과나무란 게 혹시 인류 멸망의 표식은 아닌지, 이것저것 뒤섞여버린 지식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행인 것은, 그가 심었다는 사과나무를 찾았다는 이를 아직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 다행스러운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날, 나의 사과나무 한 그루를 가슴에 심었다.


그래서 나는 얘길 할 수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오늘 난 결코 사과나무 따윈 심지 않을 것이다.”

사실은 이미 심어 두었기에, 나에게 사과나무는 한 그루면 너무 충분하기에, 과수원을 차릴 생각이 아니라면 사과나무는 더 이상 심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믿음’과도 비슷한 문구를 지어 내어 스스로를 세뇌하였다.

“내가 사과나무를 심지 않는 한 지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스피노자는 자신에게 엉켜 있던 사과나무의 가지에서 풀려날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설치기 궤변을 통해 그 시절의 나는 불쌍하기 그지없어 보였던 스피노자를 사과나무에서 해방시켰고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피식 멋쩍은 웃음을 잠시 짓는 사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나의 정신적 자유를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분명 스물의 삶의 궤적을 틀어 놓은 커다란 나침반이었다. 다락방에서 안경알을 깎는 노동 속에서도 기필코 지켜야만 했던 ‘그의 자유’는 물빛 파란 한 젊은 영혼을 먹먹한 바다의 가운데로 이끌어 던져 놓았던 것이다.



2.

늘 그렇듯 세월은 너무 쉬이 흘러가는 법이다. 자유로울 수 없다고 여겼던 환경 속을 어찌어찌 버텨가던 어느 날, 몸에 걸쳤던 것들을 벗어 내려놓았다. 그러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거라고 그때는 여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은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것을 쫓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지금의 나에게 묻곤 한다. 그래도 몇 가지 다행스러운 것도 있다. 그 덕분에 얻은 시간을 듬뿍 쪼개어 내어 스피노자 그를 좀 더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던 곤궁하기 그지없었던 그 시절의 내가 추종했던 것은 스피노자의 사상이기도 하였지만 그의 고집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안경알을 깎으면서도 교수직을 거부할 수 있었던 그의 신념과, 박재된 신학을 거부하며 기존 교회가 쌓아 놓은 사상에 강건하게 맞설 수 있었던 그의 용기는 적어도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얘기한 것처럼 ‘철학의 그리스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실에 바탕을 둔 이성적 사유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찾으려는 젊은이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하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이정표를 세울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칸칸이 네모 칸을 나누어 하루라는 시간을 토막토막 그 안에 채워 넣은 종이 달력이 한 달이란 짧고도 긴 단위의 끝 무렵에 도달한 어느 하루의 저녁 무렵, 쭈빗쭈빗 불을 밝히고 있는 창밖의 노란 가로등 불빛과 눈길을 나누며 책을 뒤적이다가 현관문을 가만히 밀어 열고 앞뜰로 나선다. 하늘에서 물기가 떨어지는 것을 서재에서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축축한 저녁의 공기는 온도계가 가리키는 숫자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진정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처럼 가슴과 영혼을 적시는 눅눅한 약물 같은 것일까. 스피노자의 자유와 나의 자유 사이에는 대체 어떤 끈이 매어져 있기에, 나는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진정한 ‘사유의 자유’를 얻게 된다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될까. 지금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걸까.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하는 속이 좁기 그지없는 놈이지만 그렇다고 대가를 요구하는 모든 놈이 자유를 안겨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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