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족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하게 된다. 카프카를 체코의 작가로 봐야 할지, 독일의 작가로 봐야 할지, 아니면 유대인 작가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문득 의문이 든다. 체코에 삶의 토대를 두고 살아간 유대인이면서 독일어 기반의 교육을 받아 독일어로 작품을 남겼으니 카프카에게 있어 국가라는 것은 경계 흐릿한 울타리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남겨진 기록에서 객관이란 외투를 걸친 몇 가지 사실들을 빌려 서술한다면 카프카는 ‘체코 태생의 유대계 범독일권 작가’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통해 그의 불안정한 태생적, 지리적, 언어적 정체성을 폭넓게 정리할 수 있다.
그는 어느 곳에나 속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은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던 부조리한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카프카에게 있어 프라하는, 독일어로 공부를 하며 성장하였고 독일어로 글을 쓴 유대인인 그를 외롭고 고독하게 만든 도시였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카프카는 프라하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자신의 뿌리를 굳게 박아 넣지 못한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었다.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부유했는 카프카의 정체성은 그가 남긴 작품속에서도 굵은 줄기를 이루고 있다. 속하긴 하지만 속하지 못하는 카프카의 정체성은 또한 가장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인 집에서도 다르지 못했다. 그의 작품을 탐닉하다가 보면 살붙이들의 공동 공간인 집에서조차 그를 향했던 낯선 이방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가족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카프카의 정체성은 늘 선명한 경계를 세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은 그곳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속한다는 것'이라는 그의 말을 빌리면, 카프카는 현실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말한 존재라는 것이 실존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현실의 카프카는 존재하지만 실존하지 않는 어떤 개체인 셈이었다.
아무튼 제대로 된 자신의 울타리를 세우지 못한 카프카에게 고독과 글쓰기는 연약한 자의 술과 담배, 허풍처럼 일상의 위안이자 삶의 한 부분이 되었던 것 같다.
실존하지 못하는 날의 불연속적인 반복은 경계 없이 넘나드는 현실과 꿈을, 선을 그어 나누어 구분하려는 것에서조차 의미를 찾지 못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여러 날의 깊은 밤을 그렇게 자신의 불안한 숨소리에 놀라 불쑥 깨어나다 보면, 새벽의 어둠 속에서 눈에 띄는 첫 형상은 적당한 경계 지대를 찾아 비박하고 있는 자신이 된다.
카프카의 작품은 그 경계지대에서 비박을 하며 지내던 날, 잠자리에서 깨어난 아주 이른 시간에 찾아온 꿈과 현실이라는 검고 뿌연 세상을 펜으로 풀어낸 얘기들이기도 하다.
어떤 울타리도 없고 아무런 경계가 없는, 마치 무한히 넓은 세상과,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시간에 던져진 듯한 이물스러운 느낌은 카프카 또한 낯설고 두려웠을 것이다. 서로 다르지만 어딘가에서는 연결되어 있을 것만 같은 꿈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세상과, 범인의 눈에는 숨어 지내던 세상의 시간을, 카프카는 영혼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헤아리게 되었던 것 같다.
작가에게 인습이나 관습, 전통이라 얘기되는 것들은 작품의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탈피해야만 하는 빈 껍데기일 수도 있다. 카프카는 삶이라 얘기되는 일반화된 일상의 그것들을 어느 순간인가 넘어 서 버렸을 것이다.
그로써 카프카는 세상을 벗어난 것도 같고 벗어나지 않은 것도 같은 경계 지대에 자신의 비박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이지만 볼 수 없었던 것과 들리지만 들리지 않았던 것, 느낄 수 있지만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 문을 활짝 열고 깨어 있는 그곳이 카프카의 문학적 비박지였을 것이다.
카프카의 글이란 게 그 비박지에 웅크리고 앉아 꿈과 현실을 같은 공간과 동일한 평면 위에 풀어낸 것이니, 현실의 세상에서 올려다보면 선잠 겨우 깬 이의 잠꼬대 같아 보이고, 꿈의 세상에서 내려다보면 세속에 담근 발을 버둥거린 것으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