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와 베를렌 그리고 인어공주 이야기

랭보와 베를렌 그리고 인어공주 이야기


베를렌과 랭보, 그들의 관계를 이성의 냉철함이나 언어의 가면을 덧씌우지 말고 오직 견자見者로써 바라봐야겠다. 오늘 하루는 그들의 문학적 성(性)이 가졌던 형이상학적인 애정과 생물학적 성(性)이 지배했던 육체적인 애정을, 가슴의 창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살펴봐야겠다.


그와의 소통을 위해 신혼이라는 달콤한 일상조차 내려두어야 했던 베를렌에게, 랭보는 연인이자 어떻게든 알아가야만 하는 신비로운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궁금하다. 베를렌이 랭보에게서 진정으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십 대의 미소년 랭보를 문학적 연인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베를렌은 점차 그와의 완전한 소통을 갈구하게 된다. 베를렌에게 있어 완전한 소통이란 정신적 소통을 넘어서 육체적 소통까지 이룬,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더 이상 이루어야 할 소통이 남아있지 않는 ‘지독한 소통’의 상태였던 것 같다.

물론 그 소통을 허락한 랭보 또한 정신적이면서도 육체적인 소통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의 영혼이 문학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소통이란 주제에 대해 얘길 하다 보면, 인어공주 이야기를 통해 랭보와 베를렌의 관계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정신적 소통에 못지않게 육체적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인어공주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꼬리를 버리고 인간의 하체를 얻는다는 것은 육체적 소통에 대한 갈구를 의미하는 것이고 육체적 소통을 이루어야만 비로써 완전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어공주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어공주는 언어를 잃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하나를 얻으니 하나 또는 더 많은 것이 떠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인어공주는 언어가 가진 소통의 능력을 목소리를 잃은 다음에야 알게 되었으니 언제나 늦은 깨달음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동반하게 된다.


결국 언어를 잃은 불완전한 소통은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치닫게 한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불완전한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법이다. 실제 인어공주가 왕자 사이에 육체적 소통이 있었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중요치 않다. 만약 그것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어가 없이 이루어진 불완전한 소통을 왕자는 그저 하룻밤의 유희라고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언어를 잃은 대가로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의 불완전한 사랑은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었고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사랑은 물거품 같은 것이라고 아무리 얘길해봐야 소용없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게 되고,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존재이다.


인어공주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다리가 없는 불완전성과 목소리가 없는 불완전성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비극을 낳게 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세상은 ‘만약’이란 단어를 받아들이기엔 소갈머리가 너무 좁은 계집아이 같은 곳이다.


랭보와 베를렌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동성애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긴 완전한 소통과 문학적 사랑만을 이룬 정신적 소통 중에서, 그들의 소통은 남자와 남자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래서 어차피 세상의 비난을 받게 되어 있었기에, 어느 것이 더 큰 비극이 되었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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