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들의 눈으로 보면 이 그림은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성 마태에 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천사에 대한 부분이다.
<Saint Matthew and the Angle>, 1602, Kaiser Friedrich Museum, Berlin(Destroyed)
<성 마태와 천사> 첫 번째 버전에서 성 마태에 대한 느낌은 ‘전혀 성스럽지 않고 육체노동이 익숙한 것 같아 보이는 나이 든 남자’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야 할 성인의 모습이 상당히 남루해 보인다.
교회의 성직자들이 기대한 마태의 모습은 분명 ‘성령이 충만한 성인으로서의 근엄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 속의 마태는 머리숱이 거의 없는 잔뜩 나이 든 남자이다.
맨 발에 다리를 겹쳐 꼬고 앉아 있는 꾸부정한 자세가 어딘가 불편한 듯 보이고, 나이에 맞지 않게 근육이 잡힌 팔뚝과 종아리가 가난한 육체 노동자인 듯 보인다. 게다가 펜을 들고 무언가를 쓰려하고 있지만, 상당히 힘들어하는 것 같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천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태의 손을 잡고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마태가 아직 글을 제대로 깨치지 못해 쩔쩔매는 것을 도와주는 것 같이 느끼게도 한다. 아무리 보아도 신성한 복음서를 쓰고 있는 성령이 충만한 성인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을 성직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바로 천사의 모습과 자세, 표정에 대한 것이다.
그림에서 천사는 매혹적인 젊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풍만한 몸에 걸친 옷의 천이 너무 얇아 그녀의 배꼽까지 비치는데 옷이 벌어져 있어 왼쪽 다리와 상반신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마태에게 너무 밀착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짓고 있는 표정조차 세속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마태에게 복음서의 영감을 주려는 것인지 마태를 유혹하고 희롱하려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하늘나라의 천사가 지상으로 강림하여 복음서를 쓰고 있는 마태에게 신성한 영감을 주는 순간을, 젊고 예쁜 여자 천사가 하늘거리는 얇은 옷을 살짝 걸치고 나타나, 살짝 벌린 입과 풀린 듯 살짝 감긴 눈으로 나이 든 마태의 손을 지그시 잡는 순간으로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카라바조의 평소 행실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려져 있었고, 세속적으로 본다면 이것보다 더 큰 영감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성스럽고 엄숙해야 할 교회의 입장에서 이러한 표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한 반응이 ‘성스럽지 못하고 너무 세속적이다’ 또는 ‘불경스럽다’라고 하는 것에는 여자 천사에 대한 이러한 논란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첫 번째로 그린 이 <성 마태와 천사>의 인수가 거절된 후 바로 다신 그린 <성 마태의 영감>에서 천사가 남자로 바뀐 것을 보면, 카라바조 또한 이런 논란을 의식한 것 같다.
이 그림은 초기 카라바조의 화풍을 살필 수 있는 <이집트 피신 중의 휴식>(Rest on the Flight into Egypt, 1597, Doria Pamphilj Gallery, Rome)과 비교될 수 있다.
의뢰자의 의도와 성향에 대해 카라바조 또한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라바조는 성스러워야 할 제단화를, 그것도 교회의 중인 제단에 걸릴 제단화를 왜 이렇게 그린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그림을 그린 카라바조 자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 카라바조는 애초부터 성 마태를 성스럽게 묘사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세금 징수원인 세리로서 넉넉한 삶을 살았을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를 따라나섰고, 한 평생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다가 끝내 순교하였기에, 성인이기 이전에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으로서의 마태를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한 것 같다.
이러한 탄생의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성 마태를 주제로 카라바조가 1602년에 제작한 두 개의 작품 <성 마태와 천사>와 <성 마태의 영감>는 사실상 하나의 세트로 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작품에서 성 마태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성 마태와 천사>의 첫 번째 버전에서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상당히 나이 든 남자’로 묘사된 마태와 <성 마태의 영감>에서 ‘머리 위에 후광(halo)까지 두른 공인된 성인’으로 묘사된 마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는 표준적인 관습과 이상적인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을 비현실적이고 허구적으로 그리기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생하고 친근한 모습의 모델을 통해 매우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리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림을 의뢰한 교회의 관계자들은, 그림이 채플의 중앙제단에 걸릴 것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자아내고 그림 속의 성인처럼 해야겠다는 감탄이 우러나도록 하는 이상적인 성자의 모습을 원하였다.
종교화의 특징은 특정 종교적 사건에 대해 이상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보는 이에게 신앙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성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종교화를 그릴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사물과 인물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사건의 분석과 신앙적 추론을 통해 행위를 재구성하여, 사실이라 믿는 것과 가장 가깝게 그린 위대한 화가이다.
구성 면에서 이 그림은 카라바조만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대단히 역동적인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성 마태는 길거리에서 막 들어온 듯 안정되지 못한 육체노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천사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앉아 있는 자세가 기울어져 있어 불안정해 보인다. 이러한 구성 면에서의 카라바조의 역동성은 교회 측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두 번째 작품인 <성 마태와 천사>에서도 볼 수 있다.
카라바조의 이러한 구성과 표현방법은 그의 삶만큼이나 파격적이다. 그러나 그가 그린 작품들은 늘 찬사를 받았으며 종교 지도자들과 귀족, 교회의 후원이 끊이질 않았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카라바조가 살아가던 사회가 비록 종교적인 관습에 묶여있긴 하였지만, 천재에게 있어서는, 예술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는 열려 있었던 것 같다.
그 시대가 예술에 있어서도 종교적 취향과 후원자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한 천재에게 허락되었던 ‘예술적 자율성’이 카라바조의 위대한 예술품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사조를 열게 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