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고백>>을 통해 본 카프카의 작품세계
<<어느 개의 고백>>을 통해 본 카프카의 작품세계
1.
새벽, 서재의 창을 열자 그 시절, 풋풋했던 이십 대의 싱그러운 향기가 창문턱을 넘어선다. 구하기 어려웠던 책일수록 그 활자에 스며있는 향기는 더욱 깊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어느 개 철학자의 고백’이 프란츠, 그를 깨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습성을 가진 이라면 유달리 애착이 가는 책 한 두 권쯤은 있기 마련이다. 단기 4292년인 서기 1959년에 출판된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어느 개의 연구)>>이 나에겐 바로 그것이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을 서재 한 편에 꽂혀있는 이 책은 아주 오래전,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살아가던 시절에 찾았던 한 헌 책방의 구석 선반에서 건져 올린 것이다. 지금처럼 잘 발달된 검색 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에는 노발리스나 카프카 같이 대중성 떨어지는 작가들의 글이 활자로 두드려 박혀 있는 종이를 만날라치면 발품과 손품을 부지런히 팔아야만 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어느 개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기억되고 있는 카프카의 이 미완성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어느 개의 연구(Forschung eines Hundes)>>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어 원문을 보자면 Forschung의 의미가 ‘연구, 탐구, 조사, 답사, 탐험’이니 연구란 번역에 더 힘이 실리겠지만, 주인공인 개의 ‘섬세한 살펴보기와 조사를 통한 내면의 고백’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연구’라고 번역하기보다는 ‘고백’이라는 번역이 좀 더 자연스럽고 문학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오래 해 본 이라면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혹시 모를 시시비비를 피하려면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 ‘어느 개의 연구’란 번역이 가장 일반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이러한 점으로 인해 동일한 작품에 대해, 대중적인 번역가의 번역과 대학교수가 번역한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언어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은, 아무리 원문에 충실하려 한들 글 속에 담긴 작가의 세세한 감정이며 느낌을 완벽하게 살려내기는 힘들 뿐만이 아니라, 문화와 사회적 배경이 새겨져 있는 예민한 표현들을 제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작품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이라면, 작품 자체에 더욱 충실하고 싶은 이라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생애와 그의 다른 작품들, 작품이 집필된 사대의 사회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학습과 이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기록으로 보자면 <<어느 개의 고백>>은 1921년서부터 1922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1931년 출간된 <<만리장성의 축조>>에 실린 것이다. 숫자로 살펴보자면 1924년 카프카의 사망 이후 7년이 지나서 출간된 것이니,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적어도 출간에 있어서는 그의 자의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자판 위에 나열되고 그 위에 잉크가 묻혀서 종이에 검게 박혀 나온 셈이다.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다소 인지도가 낮은 이 미완성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 1959년이니 당시 한국 지식인층의 독서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서조차 책 좀 읽는다는 이들만이 귀동냥, 책 동냥으로 접할 수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그것도 미완성작인 <<개의 고백>>을, 30여 년 이란 시간을 앞서서 출간한 것은 분명 어떤 사연이 있었을 터라는 것 정도는 짐작이 가지만, 알 수 없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귀를 닫아 버렸다.
그냥 젊은 날의 그 어느 날, 먼지 풀풀 날리는 그 헌 책방의 나무 선반 위에서 <프란쓰 카프카>란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그 프란츠 카프카를 처음 만났던 것만이 지금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일 뿐이다.
1959년 아니면 1960년의 명동에서 담배연기 뽀얀 다방 한 구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세로로 내려 찍힌 검은 문자의 흐름에 눈빛을 반짝거렸을 젊은 대학생을 떠올린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오늘 그는, 어딘가 다른 하늘 아래에서 흰머리가 성성한 노년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의 손을 떠나 나의 서재로 옮겨 온 것인지, 그리고 그는 아직도 젊은 시절의 손에 잡았던 프란쓰 카프카의 이 책, <<개의 고백>>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2.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실존과 철학의 경계가 흐려지기 일쑤이다. 이러한 점은 카프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카프카의 작품은 초현실적 상황을 인간이 직면한 현실을 기반으로 상징적이고도 우회적으로 묘사하였기에 세월의 테를 더 둘러야만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인격을 지닌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한 ‘동물이지만 사람이기도 한’ 주인공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변신>>이나 <<여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어느 개의 연구>>에서 읽을 수 있는 사건의 전개와 심리적 상황의 묘사는 세월의 곰삭음을 통해 비로써 그 맛을 제대로 알게 만드는 것 같다.
프란츠 카프카를 '실존주의 작가' 또는 '실존주의 사상가'라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개의 고백>>이나 <<변신>>과 같은 작품들을 탐독하다 보면, 주인공에게 부여된 부조리한 상황과 죽음, 그것의 암시적인 전개 과정에서 카프카의 폭넓은 실존적 사상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변신을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 세계들은 또 다른 의문을 낳게 만들기도 한다. 왜 하필 변신의 피조물이 개나 벌레일까. 변신이란 게 어쩌면 가면과 같이 용기 없는 자신을 가리려는 허술한 막은 아닐까. 또한 이것이 카프카가 죽은 후에나 그의 작품을 인정받게 되는 어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대개 작품에 나타나게 되는 작가의 사상은 그 또는 그녀가 살아간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형성되기 마련인데 카프카가 작품에 담아낸 그것들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던 것 같다.
카프카가 살아가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아직 젊었던 그로써는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프라하라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적 환경과 그 속에서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받아야만 했던 그의 태생적 뿌리에서,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인지적이고 미인지적인 카프카의 굴레를 추측해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개, 벌레, 사회 시스템의 거대한 굴레에서 인간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카프카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깊은 사색에 잠겨 들게 된다.
다시 이 책의 뒷장을 펼쳐본다. 1959년 기해년,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300원이란 책값의 부담에도 첫 발행연도에만 최소 3판이 인쇄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1950년대, 한국의 지성인들에게 프란쓰 카프카의 작품은 그 책값 이상의 가치를 지녔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분명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도 덧붙여 본다.
어느 개의 고백의 마지막 문구에서 사유가 멈추어 선다.
“자유! 물론 현재 허용되고 있는 자유는 가냘프고 연약한 식물과도 같은 자유이긴 하다. 그렇지만 어떤 자유이든 간에 하여튼 그것은 일종의 소유물이라는 것에, 변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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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일석 (Dr. Franz KO)/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