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오늘은 새해가 밝은지 나흘 째가 되는 날이자 해가 바뀐 후에 첫 번째로 맞이하는 월요일이다. 프랑스의 겨울 날씨란 게 그리 차갑지는 않지만 차창을 스쳐가는 한적한 국도변의 풍경은 형언키 어려울 만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혹시 저기쯤에서 차를 세운다면 두툼한 외투 깃을 잔뜩 세워 올리고서야 차 밖으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다.
1960년 1월 4일 오후 1시 55분경, 자동차 한 대가 파리의 근교 프티 빌블르뱅 마을 근처의 국도 5번 가에 늘어선 겨울 플라타너스 나무를 들이받고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1월의 안개 때문에 미끄러워진 도로 바닥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그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였었는지 간에 이 사고로 인해 운전자는 중상을 입었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동승자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운전자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대표였던 미셸 갈리마르(Michel Gallimard)였고 동승자는 1913년 11월 7일 알제리 몽도비(Mondovi)에서 출생한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였다. 카뮈의 주머니에는 파리의 전철 티켓이 들어 있었고 사고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검은색의 가방에는 미완의 원고 <<최초의 인간>>이 들어있었다.
이 사고가 있기 전, 그의 유작이 된 <<최초의 인간>>을 구상하던 카뮈는 1959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그의 가족과 함께 루르마랭에서 보내고 있었고 미셸 갈리마르의 가족이 그들의 휴가에 합류하였다. 루르마랭에서 그들의 휴가는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카뮈는 1960년 1월 2일에 기차 편으로 가족과 함께 파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파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미셸 갈리마르가 카뮈에게 자신의 자동차로 함께 파리로 가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카뮈는 1월 2일, 아비뇽 역에서 그의 가족들을 먼저 기차 편으로 떠나보냈다. 다음 날인 1월 3일,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의 부인에게, 할 일이 아직 많아서 일주일만 있다가 돌아올 거라며 집 열쇠를 맡긴 후 카뮈는 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자동차로 루르마랭을 출발하였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루르마랭에서 파리까지는 아주 먼 길이었다.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던 카뮈 일행은 오랑주에서 점심을 먹고 마콩 근처에 있는 샤퐁의 한 호텔에서 밤을 났다. 운명의 날인 1월 4일, 자동차로 한참을 달린 카뮈 일행은 센 강가의 상스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출발에 앞서 미셸의 갈리마르의 아내 자닌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카뮈에게 앞좌석을 양보하였다. 그곳에서는 파리가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5번 국도를 달리던 자동차는 빌블르뱅 근처에 이르러 사고를 당하였고 카뮈는, 담장을 넘은 넝쿨장미가 의지할 곳 없이 허공에 축 늘어지듯, 영혼의 붉은빛을 향해 그의 몸이 던져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카뮈를 검안한 의사의 소견에 의하면, 카뮈는 작은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말 그대로 눈 깜빡일 사이에, 그 사고가 있었던 그날의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삶을 영위했던 1960년 이전으로 생각의 시곗바늘을 돌려본다.
"어린아이의 죽음보다 더 분노할 만한 일은 없고,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것은 없다."
이 문장은 카뮈의 입을 통해 뱉어진 단어의 조합이다.
자동차란 게 흔치 않던 시기였음을 아무런 이견 없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왜 그 많은 죽음의 원인 중에 하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죽음을 가장 부조리하다고 했는지,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혹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될 자신의 운명을, 가장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자신의 운명을, 카뮈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자동차 사고로 인한 죽음에 ‘가장 부조리한’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죽음 또한 부조리한 것이라는 ‘죽음의 부조리성’을 내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이 가진 부조리함에 대한 카뮈의 생각 위에 조금의 살을 덧붙인다.
“인간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삶은 종국에는 허무함으로 귀결된다. 세상의 모든 허무한 것은 부조리한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그 자체로 부조리한 것이다.”
결국 부조리하지 않은 죽음이란 건 존재하지 않으니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 세상은 늘 부조리한 곳인 것이다.
카뮈는 자신이 말한, 또는 예견한 가장 부조리한 방법으로 이 부조리한 세상을 떠나갔다. 어쩌면 부조리를 얘기하던 카뮈였기에, 그의 죽음이 다른 수많은 죽음보다 더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죽음은 ‘참으로 부조리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간에 모든 죽음이 부조리한 것이라면 인간의 삶은 부조리란 섬을 향해가는 필연적인 항해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혹시 그 부조리함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것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진정 인간의 삶이란 게 벗어날 수 없는 부조리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일까.
이왕 카뮈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이니 카뮈 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좋겠다. “카뮈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은, 카뮈라면 반항을 통해, 죽음을 피할 순 없다 하더라도 죽음으로 향하는 삶의 허무에 대해, 비록 허무한 떠남을 예견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부여하려 했으리란 것에서 생각의 걸음이 서성거린다.
'반항'이 가진 부정적 요소가 인간 삶의 부조리한 상황에 끼어든다면 인간의 삶은 더욱 부조리해질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말부터 카뮈는 이 점에 대해 사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미완성 유작이자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통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고, 사랑의 의미를 이해한 반항만이 참다울 수 있음을 얘기하려 한 것 같다.
떠날 때가 되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성장소설이기도 한 그의 유작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그의 삶을 돌이켜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열네 살, 소설 속 열네 살의 어느 파릇한 한 때에 성장을 멈춰버린 카뮈는 그가 사랑하던 루르마랭의 파란 하늘을 천장 삼아 누웠다.
언젠간 떠나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부조리한 운명이다. 카뮈는 조금 더 서둘러 그의 길을 찾아갔을 뿐이다. 헤르만 헷세의 작품 <<유리알 유희>>에서 최고의 유희 명인인 요제프 크네이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 순간 문득, 그는 이 부조리한 세상을 부조리하게 떠나간 것이다. 그게 그가 가야 할 부조리한 길이었다.
하지만 궁금하다. 카뮈 그에게, 삶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삶이란 헛되고도 부조리한 것일 뿐일까. 그 부조리함을 참여와 토론을 통한 반항에서 풀어내려 하던 그가 결국 찾아낸 것이 사랑이라면, 그는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보았던 것일까.
혹시 그날, 5번 국도를 달리던 그 차의 창 밖을 바라보며 ‘유리알 유희’에 빠진 카뮈는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쳤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