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렌과 랭보, 서로를 연인이자 신앙으로 갈구한 남자들

베를렌과 랭보, 서로를 연인이자 신앙으로 갈구한 남자들

랭보와 베를렌, 그 두 남자의 관계는 완전하지 못한 소통을 기반으로 하였다. 그들의 족적을 면밀히 살펴보게 되면 문학적 소통과 육체적 소통으로는 결코 완성할 수 없었던 무엇인가가,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통만이 사랑으로 가는 길이라는 믿음은 그들의 관계를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는 적어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위해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완전한 소통이 아닐 수도 있게 된다.


어쨌거나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불완전한 소통이란 것이, 다리의 부재나 언어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랭보와 베를렌, 이들 간 소통의 불완전성은 무엇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남자 랭보를 연인으로 사랑한 또 다른 남자 베를렌, 사랑하는 왕자에게 인간 여자로서 안기고 싶었던 인어공주,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불완전한 소통을 원인으로 하는 비극이지만, 하나는 아름다운 동화로 남겨졌고 다른 하나는 추문으로 비치게 된다.

동성애란 점에서 본다면 사포를 떠올릴 수 있다. 사포는 그녀의 문학에서 사람, 특히 여자의 여러 가지 복합한 감상을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베를렌은 사포를 ‘미의 여신’이라 칭송하기도 했을 만큼 그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사포의 영향만으로 베를렌이 동성애에 빠졌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분명 아주 복잡하고, 다루기 힘든 초차원적인 문제일 수 있다. 꼼꼼하게 잘 살펴보면 베를렌과 랭보는, 다른 감상으로 가득 찬 서로 다른 문학의 웅덩이를 두레박질하여, 서로 다른 감상의 시어를 건져 올리면서,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동성이지만 이성적인 역할을 나누려고 한 것 같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기록을 바탕으로 그 배경을 살펴보면 사포의 동성애는, 당시 그리스 귀족들 사이에서 그리 이질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랭보와 베를렌이 살아가던 시대로 오면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완전히 달라진다. 천 년이 훨씬 넘은 긴 기간 동안을 기독교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살아온 유럽의 사회는, 엄격해진 성적 윤리의식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는 어찌 되었건 간에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니 랭보와 베를렌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터부시 되는 것에 대한 커다란 도전과도 같았을 것이다.


사실 유럽의 기독교 기반의 중세 도시라 하더라도, 남녀 간의 성적 윤리의식이 그리 잘 지켜져 온 것은 아니었지만, 동성애에 대해서 만큼은 신의 섭리란 것을 엄격하게 들이대었기에, 당시 동성애는 마치 음지에서 자라난 악의 싹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베를렌과 랭보는 그 악의 싹이 피워낸 꽃에서 맺은 악의 과실로 담근 독주를 들이켠 셈이니 그들 또한 악의 자식들로 비치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베를렌과 랭보가 살아가던 파리, 자유의 공기를 호흡하고, 자유의 커피를 마시고, 자유의 시를 짓던 그들을, 지금 한국의 어느 창가에 앉아, 창 밖의 어둠을 연인 삼아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잣대로 잰다는 것은 너무 큰 오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서긴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오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자료를 바탕으로 더 분석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사색을 글 속에 덧칠해 넣는다면,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줄일 수는 있게 될까.

애초부터 인간이, 부족함 없이 완전하게 잘 갖추어진 존재로 태어났더라면, 베를렌과 랭보의 불완전한 소통에서 추하고 썩은 악취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그 악취의 이질감을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인어공주를 들먹거리면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완전하지 못한 내가 그들을 변호하려는, 그 변명을 통해 나를 위안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만약 그들의 불완전한 사랑의 결과물이 비극과 문학적 사생아를 낳았다면, 그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그것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태생적 비밀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하다. 혹시 베를렌의 집착이, 문학적 연인에 대한 플라토닉한 사랑에만 남았었다면, 이들의 관계가 비극의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검은 기차에 몸을 오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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