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혹은 검은 까마귀

카프카 혹은 검은 까마귀


혹자는 체코를 ‘거리의 비둘기만큼 들판의 까마귀가 흔한 곳’이라 한다. 흔하다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차례 하늘길과 찻길을 통해 찾았었던 프라하에서 까마귀의 기억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체코에서, 프라하에서 까마귀를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 찾기는 체코의 들판을 뒤진다. 십여 년 전, 독일과 국경을 가까이에 하고 있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Wrocław) 시에서 브로츠와프 대학이 주관한 1박 2일의 컨퍼런스를 마치고 체코의 프라하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었다.

그날 오후 내내 그리고 밤 깊은 시간까지 차창 너머를 장식하던 체코의 낮은 들판 구릉에서는 누렇게 익어가는 홉이 이리저리 바람에 쓸려 다니고 있었다. 고흐의 밀밭 같은 그 들판의 풍경에 선잠을 깜빡거리다가 무언가의 춤질 같은 가물가물한 움직임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현상으로는 존재했던 것이지만 분명한 형체를 더듬어 내기는 어렵기만 하다.

(Vincent_Van_Gogh)Wheatfield_with_Crows.jpg Wheatfield with Crows, Vincent van Gogh (Van Gogh Museum, 50.2 cm × 103 cm, July 1890)


갈빛의 크레마 뽀얗게 덮인 갓 내린 커피의 향이 열린 창을 넘어 그곳, 바람 부는 체코의 들판으로 향한다. 다시 찾으니 알 것 같다. 그것은 까마귀였다. 금세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그때는 멀기만 하였지만 그것은 까마귀가 무리 지어 일으킨 군무였던 것이다. 이제 까마귀는 체코 들판의 검은 점박이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그의 패밀리 네임인 카프카(Kafka)는 체코어로는 카프카(Kavka), 곧 ‘검은 까마귀’라는 뜻을 갖고 있다. 체코, 카프카 그리고 검은 까마귀, 이 개체들 사이엔 풀리지 않을 인연의 끈이 단단하게 매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 들판에 무리 지어 떠다니던 까마귀 반점이란 게 혹시 꿈의 잔재는 아니었을까.”

“그날 까마귀의 비행은 제 몸 숨길 곳을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카프카의 작품에 나타난 주인공과, 카프카 자신일 수도 있는, 체코 들판에서 마주쳤던 까마귀의 연관 관계에서 뭔가 짙은 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현상이었던 기억 속의 검은 까마귀와, 존재했지만 실존을 찾아 헤매었던 본질인 카프카는, 체코의 바람 부는 넓은 들판에서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찾으려는 노력이 삶에 과부하를 걸어 버린, 불안정한 존재로 그날 나를 따라 프라하로 들어왔던 것이다.


한 두 가지 자잘한 사건으로 밤이 늦어서야 프라하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긴 이동에 여행 가방만큼이나 무거워진 몸을 일으키다가 검은 어둠을 겨우 밝힌 길 건너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던가.”


의심 많은 지식은 그곳에서 바람의 흔적을 찾으려 하지만 그곳에는 웅크린 검은 점박이 외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을 알게 된다.

늦게 알게 되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9시간이 넘도록 시달렸던 찻길에서 날개가 위축되어 버린 검은 까마귀 자체이기도, 일상에 지쳐 돌아온 검은 슈트의 카프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날, 그 긴 시간 동안, 검은 까마귀 카프카는 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사람의 기억 장소에는 실체가 희미한 현상만이 지식이란 이름표를 달아 남겨지는 것 같다. 또한 지혜란 것은 그 지식에서 건져낸 묵은 현상을, 가물가물 희미해진 언젠가의 실체를 실마리로, 채색이나 변형을 거쳐 구성해 낸 현재의 본질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카프카는 현재의 본질인 것일까. 그날의 들판을 날아다니던, 그래서 아직 나를 쫓아오고 있는 까마귀의 검은 현상인 것일까. 내가 카프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서 지혜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일까.


by Dr. Franz KO(고일석, Professor, Dongguk University(former))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베를렌과 랭보, 서로를 연인이자 신앙으로 갈구한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