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군데의 디지털 공간 덕분에 때와 시간을 잊은 채로 여러 사람들이 꾸민 글밭을 돌아다닐 수 있는 '덤'을 얻고 있다.
우연한 기회가 닿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때론 번잡함에 꺼려질 때도 있긴 하지만 눈 동냥질과 생각 동냥질에 한 술이나마 가슴의 허기를 면하기도 하니, 반길만한 일인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캠퍼스에 적을 두고 살아가던 시절, 사상과 지식의 수준에 대한 검증일 수도 있는 언어의 낚싯바늘에 말 미끼를 적당히 꿰어 던져가며, 몇 줄의 글을 두고 토론과 비판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간의 자투리를 현재의 공간으로 일부라도 옮겨온 것 같아, 혼자서 괜히 울컥해지는 때도 있다. 아재가 되면 원래 지난 것들이 모두 그리워지기기도 하거니와 혼자서도 잘 놀아야 하는 법이니, 그래도 괜찮다.
가끔은 채 익지 못한 이의 격한 아집과 허술한 용어, 어슬픈 해석과 실망스러운 글줄에 눈살을 찌푸리다보면, 어쩌면 글이란 게 스스로 쌓아 올린 자존감의 담벼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담장 뒷편으로 숨어버린 이에게, 나름 조심스럽게 들려준 얘기란 게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나를 향해 날아올 수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하여 일면식 없는 이와 나누는 목소리 없는 대화란 것이, 어쩌면 비정상적인 해석과 편견에 빠지게 할 수 있겠다는 실망간이 들기고 한다.
이 부분은 분명 큰 아쉬움이기도 하다. 글 좋은 이들의 감성이란 게, 마치 늦겨울 또는 초봄의 얇은 얼음장 위를 걷고 싶은 호기심 많은 덩치 큰 사내아이의 여린 그것과도 같아서, 스스로 그 막을 깨어 버리고 차가운 물 밑으로 숨어버리려는 치기 어린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향기로운 글과 생각, 잘 다듬어진 인문학적 지식 또한 찾아볼 수 있어 책을 뒤적거리기보다도 더 좋아지는 적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글밭을 거닐며, 글과 마음을 교류하고, 제약 없이 여기저기 흩어 쌓아 놓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마음과 동공을 열어 받아 들이다가 보면, 이곳이 어느 하루 자유로이 찾아온 로코코 양식의 살롱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이탈리아 영화 <The Great Beauty>가 떠오른다고 하면, 과장이 심한 것일까.
고수이든 그렇지 않든, 전문 글쟁이건 아니건, 자신의 삶에서, 자기의 가슴에서, 영혼과 심장의 심연에서 뽑아내고 있는 글의 타래는 신선하고 풋풋한 내음을, 때론 곰삭은 콤콤한 내음을, 디지털 공간에 품어내고 있다.
세상에게는 귀를 닫고 마음의 눈을 열어, 액정화면의 불빛에 배어나는 그 향기를 쫓아다니다가 보면, 봄 같고 가을 같은, 여름 같고 겨울 같은, 변덕스럽지만 사랑스러운 글의 들밭에서 가야할 길을 잊기 일쑤이다.
그 들판의 향이 커피 향일까, 달콤한 브라우니 향일까. 어쩌면 그 들판이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글과 삶의 얘기가 때 없이 찾아오는 이곳이, 글의 살롱이라는 것 밖에 달리 뭐라 할 수 있을까.